고 신영복 선생님의 <나무야 나무야>를 필사하며
유명 정치인의 자살이 장안의 화제다. 그의 죽음 앞에서 참 많은 감정이 오갔다. 남겨진 피해자의 아픔, 그녀가 짊어 져야할 고통과 삶의 무게에 마음이 무거웠다.
저녁 잠을 자고 일어나 야식 같은 저녁을 먹고 부슬부슬 내리는 비를 맞으며 산책을 했다. 분노와 안타까움, 슬픔, 연민이 뒤섞인 감정에 괴로웠다. 피해자에게 공감하지 못하는 그들의 분노를 이해하기 힘들었고 나 또한 다른 이유지만 결국은 동일한 분노의 감정을 느끼고 있음에 갈피를 잡지 못했다.
담배를 피우며 이리저리 흔들리는 내면의 소용돌이를 바라보다 문득 고 신영복 선생님의 글들이 떠올랐다. 고등학생 때 책 표지가 닳도록 읽고 필사했던 <나무야 나무야>의 문장들이 하나 둘 눈 앞에 맴돌기 시작했다. 나는 산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손때가 묻고 모서리가 해진 책을 펼쳤다.
따듯한 이성. 산책을 나가기 전에 30분 남짓 엄마와 대화를 했다. <부부의 세계>에 빠져 정주행 중인 엄마는 이 드라마에서 드러나는 심리학적인 요소들, 특히 '원가족' 문제에 대해 이야기했다. 나의 원가족과 엄마의 원가족에 대해 서로 말을 주고 받으면서 엄마는 내가 냉정하고 이성적이면서도 한편으로는 마음이 따듯하다고 했다. 과연 내가 그러한 사람인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그러길 희망하며 살고 있을 뿐.
모두에게 미안하다며 삶을 등진 그 사람에 대해 공이 많으니 그 정도 과는 괜찮다는 반응을 봤다. 나는 그것이 그들이 말하는 공정과 정의인지 묻고 싶다. 한국 사회에서 '진선진미'를 바라는 건 너무 큰 사치인 걸까. 목표와 과정의 올바름을 추구하는게 너무 이상적인 걸까.
조작된 간첩 사건으로 20년 20일을 복역했던 신영복 선생님. 내가 만약 그 세월을 감옥에서 보냈다면 어떤 사람이 되었을까. 억울한 누명을 쓴 것에 대해 분노하며 세상을 원망했겠지. 그리고 그런 감정들은 글에 고스란히 드러났을 것이다. 신영복 선생님의 글을 읽다보면 이 분이 옥살이를 했었다는 사실을 잊게 된다. 부드러움. 외유내강의 전형이랄까. 부드러우면서도 설득력이 있고 감화시키는 힘이 있다. 종종 삶이 지치고 세상사에 환멸을 느낄 때 신영복 선생님의 글을 읽는다. 읽다보면 응어리진 마음이 한결 풀리는 느낌이 든다.
필사를 마치고 나니 손목이 조금 뻐근했지만 가벼워진 마음의 무게가 더 크게 와 닿았다. 이래서 내가 필사를 못 끊지, 라며 책을 덮었다. 나는 언제쯤 신영복 선생님처럼 부드럽지만 힘이 있는 글을 쓸 수 있을까. "감정과 과거를 다스릴 줄 알아야 진정으로 강한 사람"이라던 영화 - 액트 오브 밸러 - 의 대사처럼 감정과 과거를 다스리려고 노력중인데 그게 잘 안된다.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노력하다 보면 언젠가는 되겠지. 끝없는 '자기 훈육'을 강조했던 스캇 펙의 말이 떠오른다. <아직도 가야할 길>을 다시 읽을 때가 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