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브런치에 글을 쓸 때면 늘 긴장하게 된다. '작가'로 인정받아야만 글을 쓸 수 있기 때문에 타이핑을 하는 손에 힘이 들어간다. 원체 완벽주의적 성향도 있고 세심한 편이라 일을 할 때 드는 에너지가 상당한 편이다. 그래서 브런치에 글을 쓴다고 하면 종이에 끄적이는 글들 - 이를테면 일기라든가 - 에 비해 힘이 든다.
2.
요즘 몇 가지 단어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사랑, 나이값, 정의 그런것들. 예전에는 알고 있다고 생각했거나 그 정의가 비교적 명료했던 개념들이 지금에서와서는 흐릿해지고 모호해지는 상황에 처했다. 혼란스러움. 사랑과 사랑이 아닌 것은 무엇일까. 나이에 맞게 행동한다는 것은? 근데 그 나이에 맞게 행동한다는 기준은 어디에서 온 거지? 정의, 절대적 기준으로써의 정의란 존재할까. 진실이란 없고 그냥 주장만 남아 있는 건 아닐까. 그런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3.
엊그제 소설의 한 대목이 생각나서 산책을 끝내고 모니터 앞에 앉았다. 조금 써 내려가다가 그 당시에 생각했던 내용과 번뜩임이 사라져 버렸다. 답답하다. 시작은 했으나 엉켜버린 소설처럼 미래에 대한 고민과 현재에 대한 생각이 엉켜서 불안정한 나날들이 이어지고 있다.
4.
그래도 뭔가 하다보면 뭐라도 되겠지 - . 이게 요즘 자주 되뇌이는 말이다. 가만히 앉아서 고민만 하면 될 일은 없으니까 지금 당장 관심이 있는 일을 조금이라도 해보고자 노력중이다. 편집디자인과 1인 출판사에 관심이 생겨서 며칠 전에 <편집자의 일>을 읽었고, 지금은 <편집가가 하는 일>을 읽고 있다. 글을 쓰는 것에 나름의 재능이 있는 건 알고 있었지만 편집에도 재능이 있는 건 최근에 알았다. 할아버지 회고록을 제작하면서 알게된 건데 이래서 경험이 중요하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편집자의 일>은 인터뷰라 그런건지 '아~ 그렇구나' 혹은 흥미롭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편집가가 하는 일>은 편집하는 일로 오랜 시간을 보낸 사람'들' - 파트별로 세세하게 집필한 저자들의 글이 모여 있다 - 의 생생하고 실제적인 조언으로 가득해서 좀 더 묵직하고 현실적인 도움이 되고 있다.
5.
꽉 막힌 기분. 나사 풀고 나오는 대로 여기에 글을 쓰기로 해놓고 열심히 검열하면서 쓰고 있다. 논리성과 개연성을 따지면서 말이다. 어느 성격이든 두드러지게 단점만 있거나 반대로 장점만 있는 건 아니다. 나의 이 완벽주의적인 성격 또한 나름의 장단점이 존재한다. 그런데 지금은 이게 좀 거슬린다.
6.
코로나 이후로 살이 5kg 정도 쪘다. 그 동안 낮밤이 바뀐 것도 있고 - 새벽 4~6시에 자는 게 일상이었다 - 헬스장에 못가면서 활동량이 줄은 것 때문도 있다. 살을 찌기는 쉬운데 살이 빠지는 건 정말정말정말 아주 매우 힘들다. 2년 전에는 10kg 더 나갔었는데 어떻게 살을 뺐는지 신기하게 느껴졌다. 먹는 걸 줄여야 하는데 바뀐 수면 패턴에서는 조금 어려운 과제다. 활동량을 더 늘리고 어떻게든 해 봐야지. 그런데 비가 자주오다보니 산책도 잘 못가서... 홈트를 해야하나 싶다.
7.
손목 상태를 봐가면서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과 카뮈의 <이방인>을 필사하고 있다. 스토아 철학 냄새가 물씬 풍기는 명상록을 필사하다보면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아우렐리우스가 스토아 철학자이기에 이런 글을 쓴 것인지, 아니면 그런 사람이 되기 위해 명심하자는 의미에서 이런 글을 쓴 건 아닌지 하는 생각 말이다. 그리고 이방인에서는 뫼르소의 변호사가 법정에서 던진 질문이 머리속에서 맴돌고 있다.
도대체 피고는 어머니 장례를 치른 것으로 기소된 것입니까,
아니면 살인죄로 기소된 것입니까?
8.
삶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라는 이방인의 문장 또한 곱씹고 있다. 예전에 종교의 세계에서 하나의 구성품으로 존재했을 때는 삶의 의미, 인간의 목적에 대한 나름의 뚜렷함이 있었다. 신을 위하여, 신의 영광을 위하여 그런 말들. 마음 속의 불편함이 그때도 어느 정도 있었지만 침묵 속에서 그런 명제들을 받아들이려고 노력했던 시간들. 그렇지만 신이 없는 세계에서 독립된 개체로 살아가고 있는 지금은 무의미의 의미가 나를 둘러싸고 있다. 인간이 신을 만들고 종교를 만든 건 두려움 때문이다. 자연으로부터, 그리고 무의미함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창조한 것이다. 인생에 의미도 목적도 없다. 다만 인간이 인생에 부여하는 의미, 목적이 있을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