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틀려서 참 다행이야
몇 달전, 집 근처의 가로수 밑에 모종들이 심겨졌다. 날이 조금씩 더워지는 시기에 꽃을 심다니, 비가 제대로 오지 않으면 다 말라죽을텐데 뭐하자고 심는건지 의아했다. 모종을 심는 분들도 이 중에서 얼마나 살겠냐고, 우리들이야 돈 받고 하는 거니까 상관없는데 라고 하셨다.
아니나 다를까. 얼마 지나지 않아서 많은 모종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럼 그렇지, 하며 혀를 차다가 내 예상이 맞았다는 것에 마음이 불편했다. 꽃의 미래를 점치면서도 내심 내가 틀리길 바랬기 때문이다.
며칠 전, 비가 부슬부슬 내리던 날 우산을 쓰고 노브랜드로 장을 보러 갔다. 비가 1주일 내내 오고 있어서 길 곳곳에 웅덩이가 생겼다. 웅덩이를 요리조리 피하면서 무심코 가로수 밑을 봤다.
그런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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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죽었을 거라 생각했던 모종들이 어느새 자라 꽃을 피웠다. 거의 방치되었을 - 물 주는 모습을 못봤으니까 - 모종들이 피워낸 꽃은 그 자체로 감동이었다. 빗방울을 머금은 꽃잎과 이파리에서 싱그러움이 물씬 느껴졌다.
장을 보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나는 내 예상이 틀렸다는 것에 기뻤다. 그리고 무사히 자라준 꽃들에게 감사했다. 혹시나 모종이 잘 자라도록 물을 주고 관리를 해 준 사람이 있다면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
흔히 미래는 알 수 없다고 한다. 불확실성이 지배하는 미래를 놓고 이러쿵저러쿵하는 건 아무 소용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어떻게든 예상해보려는 게 인간의 속성이다. 나 또한 꽃의 미래를 예상했고 이것에는 나름의 근거가 있었다. 하지만 내 예상은 반만 맞았다. 상당수의 모종은 죽었지만 그래도 꽤 많은 수의 모종이 살아남아 아름다운 꽃을 피웠으니까.
미래에 대한 생각으로 복잡했던 머리가 꽃들 덕분에 한결 개운해졌다. 꽃들이 이렇게 말하는 듯 했다. 자기들이 심겨질 때는 그 누구도 이렇게 될 줄은 몰랐을 거라고, 그렇지만 우리는 지금 여기에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