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야간 비행>
라비에르는 파비앵의 손을 생각했다. 아직도 몇 분 동안 자신의 운명을 조종간에 맡기고 있을 그의 손을. 어루만지던 그 손. 어느 가슴 위에 놓인 신의 손처럼 그 가슴에 동요를 일으키던 손. 어느 얼굴 위에 놓여 그 표정을 달라지게 하던 손. 기적을 일으키던 그 손을.
파비앵은 장엄한 구름바다를 떠돌고 있지만, 그 아래에는 영원이 가로놓여 있다. 자기 혼자만 살고 있는 성좌 사이에서 그는 길을 잃고 헤매고 있다.
그는 여전히 자신의 손 안에 세상을 쥐고 가슴에 대고 균형을 잡고 있다. 그는 인간의 풍요가 만들어 낸 그 무거운 비행기를 자신의 조종간으로 움켜쥐고, 절망적으로 이 별에서 저 별로 곧 돌려줘야 할 쓸모없는 보물을 싣고 다니고 있다…….
라비에르는 무전국 하나가 아직도 파비앵의 소리를 듣고 있다는 것을 생각해 본다. 하나의 음파, 가녀린 주파수 하나만이 파비앵을 이 세계에 연결하고 있다. 신음 소리도, 비명도 들리지 않는다. 하지만 그것은 절망이 만들어 낼 수 있는 가장 순수한 소리다.
-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야간 비행>
<어린 왕자>로 유명한 생텍쥐페리. 이 소설도 조종사였던 그의 경험이 어느 정도 반영되어 있지만, <야간 비행>은 이보다 더 농밀한 깊이로 그 경험이 스며들어 있다. 라비에르라는 인물도 자신의 상관이 모델이라고 하니까.
소설의 분위기는 다소 무겁다. <어린 왕자>가 감동적이고 나름 동화적인 분위기가 있는데 비해 여기에는 삶, 의무, 책임, 의지 등 다소 '무거운 주제'들의 무게가 독자들을 짓누른다.
나는 항상 위에 인용한 부분을 읽을 때면 멈칫멈칫하게 된다. 답답하고 먹먹하고 슬프다. 이성적이고 딱딱해보이기만 하는 라비에르의 속마음은 누구보다 따듯했다. 단지 자신이 짊어진 책임감을, 완수해야 할 과업을 위해 감추고 있을 뿐.
앙드레 지드는 이 소설의 서문에서 "나는 이 가슴 떨리는 이야기에서 무엇보다 그의 고귀함에 마음이 간다. 우리는 인간의 나약함, 포기, 타락 같은 것들을 익히 알고 있으며, 오늘날의 문학은 그런 것들을 들추어내는 일에만 지나치게 능란하다. 하지만 무엇보다 우리에게 보여 주어야 할 것은 긴장된 의지에서 얻게 되는 바로 그 자기 초월이다." 라고 썼다. 내가 이 소설을 두고두고 읽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라비에르가 보여주는 영웅적 면모, 과업을 완수하려는 의지를 가진 인간의 열정에 감탄한다. 그러나 그는 냉혹한 심장을 가진 완벽한 모습의 영웅이 아니다. 오히려 <다크 나이트>에 나오는 배트맨에 가깝다. 내면에는 연민과 번민이 꿈틀거리지만 자신에게 주어진 책임을 감당하기 위해 상실과 슬픔을 뒤로 하고 전진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