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다는 말
예전에 읽다만 - 그런 책이 한두 권이 아니지만 - <라틴어 수업>에 로마인들이 편지에 쓰는 인사말이 나왔었다.
Si vales bene, valeo.
당신이 잘 있으면, 나는 잘 있습니다.
Si vales bene est, ego valeo.
당신이 잘 계신다면 잘 되었네요, 나는 잘 지냅니다.
우리가 흔히 하듯 "잘 지내나요?"라고 묻는 게 아니라 상대방의 안녕과 나의 안녕이 연결되어 있는 듯한 느낌을 주는 이 인사말이 인상 깊었다.
코로나가 등장한지 벌써 1년이 다되어 간다. 직간접적인 영향을 받아 우리네 삶의 형태가 이전과는 판이하게 달라졌다. 어쩌면 다시는 예전처럼 살 수 없을지도 모른다. 이불 밖은 위험해!라는 말이 현실이 될 줄 누가 알았을까.
장기간 지속된 코로나는 감염의 위험 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위험까지 가져왔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유롭게 활동하지 못해 우울감이나 스트레스를 호소하고 있다. 이런 시기에는 잘 지내고 있냐는 말을 하기가 머쓱하다. 서로가 서로의 사정을 쉽게 짐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근 3주만에 브런치에 글을 쓰고 있는 지금 민망하게도 나는 나의 안녕을 말하려고 한다. 나 혼자 잘 지내는 것 같아서 눈치가 보이지만, 정말로 나는 그 어느 때보다 - 양극성 장애 발병 이후 최근 5년간 - 괜찮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
작년 말까지는 썩 좋지 않았다. 정확히는 11월 중순 즈음까지는 증상의 악화와 완화가 반복되면서 제대로 된 일상을 보내기가 힘든 적이 많았다. 그러다 선제적 조치(?) - 우울 삽화 초기에 웰부트린을 추가한 것 - 덕인지 원래였으면 지금쯤 지구의 맨틀을 뚫고 들어가야할 우울 증상이 거의 사라졌다. 매년 그랬기 때문에 이번처럼 안 우울하고 안 무기력하며 안 죽고 싶고 안 과민한 겨울이 어색하다. 그동안 겨울=우울 이라는 공식에 너무 익숙해져버린 탓이다.
어쨌거나 최근 한 달 동안 기분도 안정적이고 잠도 잘자고 할일도 할 수 있는 상태로 살고 있다. 생활 패턴이 낮과 밤이 아예 뒤바뀐, 10시 전후로 자서 오후에 일어나는 일상 속에서 꾸준히 글쓰기에 집중하고 있다.
3주만에 글을 쓰게 된 것에 약간의 죄책감(?)을 느끼고 있다. 원래는 작년 말에 양극성 장애와 관련된 브런치북을 완성하려고 했다. 하지만 상태가 상태였던지라 이 계획은 보류하게 되었고 해를 넘기면서 잠정 보류로 결정되었다.
작년에 할아버지 회고록을 완성하고 나서 내가 늘 계획했던 - 그러나 지키지 못했던 - 것은 소설쓰기와 브런치북 발행의 병행이었다. 그외에도 크고 작은 할일이 있었지만, 이 두 가지가 중심축이었다. 그렇지만 이 계획은 언제나 지켜지지 못했다. 단순히 상태가 안 좋아서 그런게 아니었다. 최근 한두 달간 면밀히 검토해 본 결과 브런치북과 소설 쓰기를 같이 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왜 그런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양극성 장애의 여파로 에너지 수준이 저하된 것도 있겠고, 인지 기능 또한 덩달아 낮아져서 여러 가지 일에 집중할 수 없다는 이유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요즘들어 느끼는 건데 소설 쓰기에 집중하다보면 브런치에 쓰는 글처럼 에세이스러운 글들을 쓰기가 힘들어진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에세이를 쓰고 나면 소설을 쓰기가 어렵다. 단순히 에너지가 딸린다는 것도 있지만 꽉 막힌 것처럼 글이 안나온다. 생각도 정지해 버리고. 그래서 소설과 에세이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했는데 올 해는 무조건 소설에 올인하기로 했다. 애초에 내가 목표로 삼았던 글쟁이는 소설 작가였으니까.
혹시나 내 글을 기다리고 있을 분들께는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온 정신이 소설에 집중되어 있다보니 서평도 양극성 장애에 대한 글도, 단순한 에세이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소설을 끝내고 나서 - 끝냈다고 여유가 생길지는 모르겠지만 - 혹은 오늘처럼 어쩌다 글을 쓰게 될 것 같다.
이렇게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증상도 많이 좋아진 상태로 '안녕'하게 살고 있다. 로마인들은 "당신이 잘 있으면, 나는 잘 지낸다"고 말했지만 나는 반대로 "나는 잘 지내고 있으니 당신도 잘 있으라"는 말을 하게 되었다. 여러모로 어수선한 연초에 이 글을 읽는 모두가 잘 지냈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