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극성 장애에 대한 오해들
이전에는 조울증이라 불리던 양극성 장애는 기분 장애로 분류되는 정신질환 중 하나이다. 옛 이름인 조울증은 조증과 우울증이 결합된 것으로 대중으로 하여금 이 질환은 감정의 영역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부각시킨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양극성 장애라고 하면 어리둥절해 하지만 - 느낌이 딱 안 오는 그런 느낌 - 조울증이라고 다시 말하면 그때서야 조금 '아는 척'을 한다. 이 아는 척의 처음과 끝은 거의 동일한데 조울증 = 감정 기복이라는 인식이 전부인 경우가 많다. 그래서 종종 '나(혹은 타인)는 감정 기복이 심한데 이거 조울증 아니냐'는 질문을 들을 때가 있다.
양극성 장애라는 이름을 해석해 보면 양극, 조증과 우울증을 시계추와 같이 왔다갔다한다는 의미다. 조울증이라는 명칭과 크게 다를 것 없어 보이지만 기존과는 다른 관점에서 질환을 바라본다는 차이가 있다. 여기에는 양극성 장애가 단순히 감정의 문제만이 아니라는 인식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기분 장애라고 하면 감정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기 쉽고 실제로도 일정 부분 그런 증상이 있는 것도 맞다. 하지만 이것이 전부는 아니다. 기분장애와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뇌의 영역인 '편도체' - 감정을 담당한다 -는 시상하부를 비롯해 해마, 이마앞겉질 등 다양한 영역과 연결되어 있는데 이 영역들은 기억과 집중력, 의사결정, 신체적 반응 등을 포괄한다. 이 말은 기분 장애가 단순히 감정의 문제를 넘어서 인지적, 행동적 문제까지 포괄하는 장애라는 뜻이다.
실제로 우울증과 양극성 장애의 진단 기준에는 감정에 대한 문항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인지적, 행동적 문제를 판가름 하는 문항도 상당수를 차지한다. 이를 테면, 수면 문제와 식욕, 성욕, 외부 활동의 정도, 행동의 느려짐이나 빨라짐, 집중력 문제 등 우리가 쉽게 떠올리지 못하는 부분들도 증상에 해당한다.
내가 직접 경험한 증상들도 그렇다. 조증 시기에서 짜증과 공격성이 높아지고 충동적이 되지만 동시에 행동이 빨라지고 사고 또한 그렇다. 그래서 말하는 속도가 생각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해 말이 엄청 빨라지면서 중간 중간 말을 건너 뛴다. 수면이 극적으로 감소하면서 하루 종일 잠을 안자도 괜찮고 오히려 힘이 넘친다. 잠이 안 오기도 하지만 잠을 자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기도 한다. 과장된 자기감,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고 자신감에 차 있다. 하지만 이런 상태가 쭉 유지 되지 않는다. 우울증의 나락으로 떨어지면 이 모든 것이 정반대가 된다(우울증의 양상에 따라 일부분은 조증의 증상과 겹치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단순히 감정 기복이 있다는 것만으로 양극성 장애에 대한 걱정을 한다는 건 환자 입장에서 당황스러운 일이다. 일반적으로 우울증과 양극성 장애에서 말하는 감정 기복은 정도와 기간에 있어 뚜렷한 기준이 있고 보통 수준을 넘어선다. 경미한 증상도 양극성 장애로 진단될 수 있지만 대체로는 직업적으로나 대인 관계, 생활에 문제를 일으키는 정도여야 하며 이 조차도 진단 기준 중 하나를 만족할 뿐이다. 단순히 감정의 문제만 심하다면 이것은 양극성 장애라기보다는 '경계선 성격장애'일 수도 있다(물론 두 질환이 공존하는 경우도 있다). 감정 기복과 충동성의 측면에서 양극성 장애와 경계선 성격장애는 상당 부분 증상을 공유하고 있다. 하지만 이 둘은 결정적인 차이가 있는데, 이런 증상의 원인이 '관계'와 관련이 있는가다. 양극성 장애의 경우 증상은 삽화적, 즉 기간의 양상을 띠며 특정 관계의 영향에 따라 변동되지 않는다. 관해 상태나 안정기에서는 안정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다. 하지만 경계선 성격 장애의 경우 증상이 관계의 영향을 받으며 타인과 자신을 평가하고 관계를 유지하는 등의 만성적인 대인관계 문제와 갈등이 존재한다.
양극성 장애가 단순히 감정의 문제라고 생각하는 것은 환자와 질환에 대한 몰이해를 불러일으킨다. 대게 감정을 다스리지 못한다는 것을 나약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양극성 장애에 대한 편협한 인식은 환자를 감정 하나 조절 못하는 나약한 사람으로 낙인 찍거나 노력하면 고칠 수 있다는 식의 오해를 하게 만든다. 거듭 이야기 하지만 양극성 장애는 정신질환이며 환자가 딱히 나약해서, 의지가 없어서 그런 것이 아니다. 그저 뇌의 질환일 뿐이고 위에 암이 생기면 위암이라고 하는 것과 같다. 그러니 앞으로는 기분 장애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그거 그냥 기분에 문제 있는 거 아니냐고, 고작 그런 걸로 뭘 그러냐는 식의 언행을 해서는 안 된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많은 영역에서 생각하기 힘든 증상을 겪으며 살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