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Sail of Argo

오늘도 살아줘서 고마워

by Argo

언젠가 - 그리고 꽤 자주 - 양극성 장애 환자에게 "힘내라"라는 말은 일종의 폭력이 될 수 있다고 썼다. 지금도 최대한의 힘을 발휘하며 살고 있는데 여기서 얼마나 더 많은 힘을 내야하는지, 화자의 의도는 그것이 아닐지라도 환자에게는 큰 부담과 압력으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 아마도 - "힘내라"는 말 대신 침묵하는 게 더 좋다고 했다. 하지만 인간은 말하는 존재라, 어쩔 수 없이 뭔가 말해야 하고 또 그러고 싶은 충동이 있다는 걸 알기에 그나마 적절한 말은 무엇일까를 오랫동안 고민해왔다. 그리고 마침내 생각해 낸 것이 "오늘도 살아줘서 고맙다"는 문장이었다.


양극성 장애 환자로 살면서 겪는 어려움 중 하나는 자기 존재에 대한 불신 혹은 무가치함이다. 자신의 상태를 끊임없이 점검하고 의심하는 과정 없이는 양극성 장애의 재발을 막기가 어렵다. 때문에 사소한 변화라도 재발의 징조가 아닐까 노심초사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의심 속에서 자신이 신뢰할 만하고 한 개인으로 존재한다는 것이 과연 나와 타인에게 바람직한 일인지 자문하게 된다.


대부분의 환자들은 보호자 - 보통 가족 - 에게 양가감정을 느낀다. 보호자의 돌봄에 대한 감사와 고마움, 그리고 때때로 환자의 자유와 의사를 제한해야 하는 상황에서 겪는 갈등으로 인한 부정적인 감정들이 그것이다. 특히 환자는 - 보호자도 마찬가지이지만 - 죄책감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다. '내가 나약해서 보호자도 힘이 드는 거다' '내가 정신질환에 걸리지 않았다면 모두 행복했을텐데' 같이 자신을 책망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보호자 뿐만 아니라 환자 또한 하루하루 버티며 산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하고 소중한 일인지를 잊어버리기 쉽다. 정신질환은 관리를 조금이라도 게을리하면 귀신같이 알고 존재감을 드러낸다. 그래서 늘 관리에 집중하다보면 이런 행동이 자연스러워지고 그 가치와 노력 또한 자연스럽게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여겨지게 된다.


오늘도 살아줘서 고맙다는 말은 이런 문제들을 아우를 수 있다. 우리는 누군가에게 감사를 표할 때 분명하고 구체적인 행위를 대상으로 한다. 보통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고맙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 이런 전제 하에 양극성 장애 환자가 일상을 유지하고 버티며 사는 것에 대해 감사한다는 것은 환자의 노력을 인정하고 환자 스스로가 가치있다는 생각을 하도록 돕는다.


양극성 장애 환자를 비롯한 정신질환자들은 타인이 이해하기 힘든 세계 속에서 혼자 고군분투한다는 느낌 가운데 살아간다. 이런 상황에서 환자에게 감사한다는 말은 자기가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일깨워주기도 한다. 내가 타인과 연결되어 있고 어떤 행위를 함으로써 - 행위는 곧 존재한다는 사실과 가치 있는 존재라는 것을 의미한다 - 존재를 인정받는 것만큼 인간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것은 드물다. 정신질환자들은 이런 상황이 거의 없다고 할만큼 척박한 환경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살아줘서 고맙다"는 말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가치있는 사람이라는 인식을 - 조금이라도 - 심어줄 수 있다.


그리고 이 말은 굳이 양극성 장애 환자가 아니라도 다른 사람에게 꼭 해야할 말이다. 우리는 너무나 자주 타인의 존재에 대한 감사를 잊고 산다. 그러다 문득 어느 순간에서야 당연한 것이 당연하지 않다는 사실을 너무나 늦게 깨닫는다. 살아줘서 고맙다, 곁에 있어 고맙다는 말이 필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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