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질환과 의지의 상관관계
정신질환자로 산지 어언 5년째. 그동안 참 많은 일이 있었다. 난생 처음 겪는, 그리고 대다수의 사람들이 경험해보지 못하는 상황에 처하면서 나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도 당황스럽고 힘든 날들이 많았다.
양극성 장애 그 자체로도 충분히 힘든 문제였지만 이와 맞먹을 정도로 고통스러웠던 것은 정신질환에 대한 대중의 편견과 무지였다. 내가 심리학을 전공하던 2011년에 비해 지금은 조금, 아주 조금 나아졌지만 그럼에도 아직 한국 사회에서는 정신질환이 의지와 노력의 문제이며 정신질환자를 환자가 아니라 부적격자로 취급하고 있다.
거의 전부라도 해도 좋을 만큼, 많은 정신질환자들이 호소하는 어려움 중 하나가 주변의 이해 부족이다. 특히 주변 사람들이 아무렇지 않게 던지는 말 한마디가 우리에게는 견디기 힘든 짐 같을 때가 많다.
'네가 의지가 부족해서 그래'
'노력하면 다 괜찮아 질거야'
'언제 낫는데? 뭐가 그렇게 오래 걸려?'
'뭘 그거 가지고 그래?'
이전에 썼던 글에서도 말했지만 정신질환자에게는 힘내라는 말도 독이 될 때가 있다. 우리는 지금 충분히 힘내고 있는데 여기서 도대체 얼만큼 더 힘을 내야 하는 걸까 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차라리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곁에 있어주는 것이 훨씬 더 도움이 된다.
과연 정신질환자들은 의지가 부족해서 병에 걸린걸까. 노력하면 정신질환도 나을 수 있을까. 정신질환은 완치가 가능할까. 정신질환자가 겪는 것들이 정말 아무것도 아닌걸까.
현대 과학 기술의 발전, 그리고 의학의 발달은 인류를 무지로부터 해방시키는데 큰 역할을 했다. 특히 정신질환은 더 많은 수혜를 받았다고 생각한다. 100년 전만 하더라도 정신질환은 귀신들림이나 미친 것으로 간주되어 환자들은 감옥보다 더 열악한 환경에 수용되어야 했다. 비과학적이고 주술에 가까운 행위들이 치료법으로 버젓이 사용되었고 현재에도 일부 종교(특히 기독교에서)에서는 기도나 다른 종교적 행위들로 정신질환을 치료하려고 한다.
이렇듯 정신질환은 오랫동안 오해되어 왔고 질병이 아닌 '악'에 가깝다고 여겨졌다. 최근에는 정신질환이 뇌의 문제이며 치료의 대상이라는 것이 명백해졌고 걸음마 단계이기는 하지만 원인과 치료에 대해 과거보다 유의미한 진보가 이뤄졌다. 그저 미친 것 혹은 악마에 사로잡혔다고 생각했던 현상이 실은 어떤 질환에 의해서 그런 것이며 이것을 치료할 수 있다는 진리의 빛이 그간의 미신과 무지에서 인류를 구원했다고 하면 너무 과장된 표현일까?
하지만 안타깝게도 과학과 의학의 진보가 사회 전체의 진보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앞서 말했듯 정신질환이 뇌의 질환임에도 불구하고 그와 무관한 사항들을 정신질환과 연관짓고 정신질환자들에게 무리한 요구를 하는 상황은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고 언제쯤 사라질지 알 수 없다.
나를 포함한 2,30대 사이에서 노력과 의지는 다른 세대에 비해, 특히 기성세대에 비해 한물 간 단어로 여겨진다. 노력과 의지로 할 수 없는 것들이 많다는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알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일자리 자체가 없는 상황에서는 아무리 노력하고 의지력을 발휘해봤자 아무 소용이 없다. 그런 탓에 우리는 상황과 그 상황의 해결을 노력과 의지의 문제로 보는 시선을 경멸한다. 이런 태도는 사회 구조적인 문제이거나 딱히 개인의 책임이 아닌 상황에 대해 과도하게 개인의 탓으로 돌리는 부당한 대우를 거부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요소로 작용한다.
정신질환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정신질환자들은 의지드립, 의지로 병이 낫는다거나 의지가 부족해서 병에 걸렸다는 식의 주장을 혐오한다. 그리고 이런 말은 정신질환자들 사이에서 금기시 되고 있다. 그런데 과연 의지는 정신질환과 무관한 단어일까?
분명히 정신질환의 발병과 치료에 있어서 의지는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한다. 환자가 무언가 잘못했기 때문에 정신질환에 걸린 것은 절대로 아니다. 현재 정신질환마다 차이가 있지만 대체적으로 정신질환의 발병에는 생물학적 요인과 환경적 요인이 작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여기서 자세히 다룰 수는 없지만 이 요인들의 상당수는 개인의 노력 여하에 따라 달라질 수 없는 것들이다. 나 또한 살다보니 어쩌다 정신질환이 생겼고 원인을 따져보니 딱히 내가 뭘 잘못해서 그런게 아니었다.
발병만큼 치료 또한 개인의 의지와는 무관하다. 양극성 장애만 하더라도 가장 최선의 치료법인 약물치료도 사실상 치료라기보다는 증상의 완화나 악화의 방지의 용도에 불과하다. 양극성 장애를 비롯해 많은 정신질환이 만성적인 질환에 속하고 이것은 쉽게 낫지 않으면서 장기간 지속되는 질병이라는 말이다. 실제로 양극성 장애에 대해 현재로서는 완치가 불가능하다는 것이 전문가들 사이에서 암묵적인 결론으로 통하고 있다. 약물 치료를 받지 않는 것을 완치라고 볼 때 양극성 장애의 경우 약을 중단하는 순간 재발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따라서 완치의 개념 자체가 없고 증상의 정도 또한 약에 달려 있다면 이것을 환자의 의지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고 볼 수 없다. 그렇지만 나는 단호하게 말한다. 의지로 치료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치료에는 의지가 필요하다고.
어쩌면 이 말이 모순처럼 들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경험한 바에 의하면 의지가 필요한 부분이 반드시 존재한다. 치료 자체는 의지의 영역이 아니지만 치료를 위해 환자가 해야 하는 행동은 의지와 연결되어 있다. 예를 들어 약물치료의 경우 병원에 가고 약을 제대로 먹는 것은 환자의 의지에 달려 있다. 약을 먹기 위해 알람을 하고 잊지 않고 제대로 챙겨 먹는 일은 크든 작든 개인의 의지로 할 수 있다. 약물치료를 시작한지 5년이 넘었지만 나는 지금도 알람을 해놓고 약을 챙겨먹는다. 매일 제대로 먹었는지 앱으로 관리한다. 수면시간과 감정 상태 또한 잊지 않고 기록한다. 이 모든 것은 의지와 연관이 있다.
앞서 말했듯 정신질환에 있어 치료는 완치의 개념이 아니다. 부족해 보일지는 모르지만 증상의 완화 또는 악화의 방지가 치료의 목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상당수의 정신질환자들이 치료를 포기하거나 거부하는데 이 비율은 다른 질환에 비해 더 많은 편이다. 진단 자체를 인정하지 않기도 하고 약물 치료를 거부하는 하는데 사회적인 낙인 문제와 약물치료에 대한 거부감 뿐만 아니라 질환이 만성적이라 치료 기간이 길고 치료의 경과가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중도에 지쳐서 포기하는 사례가 많다.
때문에 그 어떤 질환보다 정신질환의 치료에 있어 동기부여가 중요하다. 왜 치료를 받아야 하는지에 대해 명확한 인식이 없다면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느낌의 치료과정을 환자가 견디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치료의 의미를 모르는 환자는 애써서 약을 챙겨 먹어야 할 필요를 느끼지 못할 것이다. 단기간에 약의 효능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복용을 중단하기 쉬울 것이고 그밖에 치료에 도움이 되는 일들 - 운동이나 생활 관리 등 - 을 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정신질환 치료에 있어 의지 또한 필요하며 동시에 의지만큼, 어쩌면 의지보다 더 필수적인 것이 치료에 대한 동기부여라고 생각한다.
빅터 프랭클의 저서 <죽음의 수용소에서>에는 유명한 니체의 말이 나온다.
"왜 살아야 하는지 아는 사람은 그 어떤 상황에서도 견뎌낼 수 있다"
나는 이 말을 이렇게 바꾸고 싶다.
"왜 치료받아야 하는지 아는 사람은 그 어떤 증상과 치료도 견뎌낼 수 있다"고.
그리고 이 말은 곧 니체의 말, "왜 살아야 하는지"와 연관되어 있다. 자신이 왜 살아야 하는지 아는 사람은 동시에 왜 치료받아야 하는지 또한 알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어떤 증상이 나타나더라도 치료에 대한 의지를 꺾지 않을 것이다. 의미가 있는 곳에 의지가 있다. 개인적으로도 삶에 대한 의미에 따라 치료에 대한 반응과 태도가 달라졌다. 살아야 하는 이유가 있고 그렇기에 치료를 받아야 한다는 마음이 있을 때는 아무리 상황이 어려워도 어떻게든 견딜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런 이유가 희미해질 때는 모든 것이 덧없어 보이고 치료가 무의미해 보였다.
나는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이 앞으로 정신질환자들에게 의지력 따위를 운운하며 괴롭히지 않기를 바란다. 동시에 정신질환자들이 치료에 있어 개인이 책임져야 할 영역, 자신의 의지가 필요한 부분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으면 한다. 무엇보다 빠른 시일 내에 정신질환에 효과적인 약이 개발되길 간절히 바란다.
+치료와 관련된 또 다른 생각.
범죄자가 정신질환인 경우에 이것을 이유로 형을 감경받는 사례가 많다. 정신질환자로서 이것은 명백히 잘못됐다고 본다. 범죄자가 정신질환이 있으면서 치료를 제대로 받았음에도 그런 행위를 했다면 일정 부분 감안할 수는 있다. 하지만 치료를 위해 노력하지 않았다면 일반인과 같은 형량을 받아야 한다. 치료를 받고 안받고는 개인의 선택이자 자유다. 하지만 치료를 받지 않아서 생기는 문제 또한 개인의 책임이다. 이것은 마치 음주운전자가 처벌받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술을 마시고 안 마시고는 운전자의 선택이다. 하지만 술을 마시고 운전하는 순간 운전자는 범법자가 된다. 정신질환이 있다고 해서 단순히 그것을 감경 사유로 삼는 것은 정신질환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낙인을 강화하는 나쁜 신호가 될 수 있다. 잊을만 하면 언론에 보도되는 정신질환자의 범죄나 정신질환을 이유로 감경받는 사례를 볼 때마다 마음이 조마조마하다. 정신질환자라는 것을 과도하게 부각해서 보도하는 언론도 문제지만 이런 사안에 대해서 법원이 보다 엄격하게 판단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신질환과 정신질환자를 합리적이고 균형적인 시선으로 바라봤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