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지니아 울프는 왜 강으로 걸어갔을까
1주일 간의 불면은 나를 최악 중의 최악으로 이끌기에 충분했다. 한달 전부터 우울증 증상이 점차 나타나기 시작해서 웰부트린 150mg을 추가했다. 그럼에도 증상이 남아있어서 300mg으로 증량한 것이 2주 전쯤이었다.
기록지를 봐야 더 정확하겠지만 느낌상 환절기에, 특히 가을에서 겨울로 진입할 때 우울증이 시작됐다. 이름하야 “계절성 동반” 제1형 양극성 장애 되시겠다. 이 시기에 생긴 우울증을 제대로 잡지 못한다면 겨울에는 심각한 수준의 우울증이 온다. 실제로 세번의 폐쇄병동 입원 중 두 번이 겨울에 있었다.
양극성 장애 환자에게서 조증만큼이나 아니 그보다 더 친숙한 것이 우울증이다. 조증은 사실 그렇게 많은 기간을 차지하지 않는다. 혼재성 양상이나 급성 순환형이 아닌 이상 분명한 조증/경조증 시기 이후에 그보다 더 긴 우울증 시기가 오기 때문이다. 양극성 장애에서 조증이 사고칠 위험(?)이 높기 때문에, 특히 타해의 위험성이 높아지기 때문에 위험하다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실제로는 우울증 시기가 환자에게는 더 위험한 시기다. 왜냐하면 양극성 장애 환자들이 주로 자살하는 시기가 이 시기이며, 일반 인구에 비해 15배나 높은 자살률, 양극성 장애 환자의 3명중 1명은 평생 1회 이상의 자살시도를 한다는 사실 또한 이런 위험성을 극대화한다.
그동안 불면증은 내게 다소 거리가 있었던 증상이다. 어쩌다 며칠 못자는 것, 조증의 전조 증상으로서의 불면증은 있었지만 심각한 수준의 불면증은 없었다. 그러다 이번에 재활의학과에서 처방받은 진통제로 인해 생긴 불면증이 최근에 생긴 우울증상과 겹치면서 시너지 효과를 내버렸다.
정말 피곤해서 예전 같으면 눕자마자 실신할 것 같은데 정작 누우면 잠이 쉽게 오지 않는다. 클래식 음악 소리에 귀를 기울이다 잠들고 일어나면 2시간 남짓 지나 있다. 새벽 4~6시에 잠이 깨면 다시 잠들지 못한다. 피가 바짝바짝 마르는 느낌. 머리 속을 누군가 누르고 있는 듯한 느낌. 잔뜩 부풀어 오른 풍선의 한쪽을 꽉 잡아서 반대쪽이 터질 듯한 상황. 잠에서 깨어나거나 잠 들지 못해 괴로운 시간 동안 떠다니는 생각들. 언제까지 이러고 살아야 할까. 글써야 하는데 하나도 못 썼네. 오늘 뭐하지? 아니, 내가 뭐라도 할 수 있을까? 이렇게 사는 게 무슨 의미가 있지?
1주일 내내 죽음에 대한 생각이 머리속을 떠나지 않았다. 지난주 금요일에서야 재활의학과 약이 불면증의 원인일 거라는 생각에 약을 중단했지만 이미 부족해져버린 수면 시간과 그로 인한 문제들, 증상들을 되돌리기엔 모자랐다. 이틀을 버티다 결국 오늘 병원에 갔다.
내가 다니고 있는 정신과는 의원급에서는 보기 드물게 4명의 의사가 있다. 하필 오늘은 원래 진료받는 의사 선생님이 휴일이어서 예전에 담당했던 의사 선생님께 진료를 받았다. 재활의학과 약이 원인인 것 같다고 약의 이름을 알려드렸더니 두 개중 하나의 약이 불면증을 유발할 수 있다는 말을 해주셨다. 내가 약을 증량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기도 하고 지금 유지하는 약물 수준이 괜찮기 때문에 따로 약을 추가하지는 않았다. 대신 영양제와 진정제를 섞은 주사를 맞았다. 예전에도 잠을 못자거나 급성 조증이 오려고 할 때마다 맞았던 거라 그 효과를 기대하며 병원 침대에 누웠다. 그리고… 효과는 탁월했다.
한 30분? 1시간 정도는 약간 피곤한 상태에서 누워 있었다. 그러다 어느 정도 약이 체내에 들어왔을 때부터 서서히 정신이 풀어지기 시작하더니 – 날카로운 신경이 가라앉고 이리저리 떠다니던 생각들이 사라지는 것 – 어느 순간 잠들었다. 다 끝났다는 말에 일어나서 시계를 보니 2시간 반이 지나 있었다.
그러고 집에와서 밥도 안먹고 세시간을 더 잤다. 일어나니 세상이 좀 달라보였다고 하면 지나친 말일까. 지난 1주일이 안개와 늪 속에 갇혀 있었다고 한다면 지금은 흐리긴 하지만 컴컴하진 않은 진흙 바닥에 있는 느낌이다. 평상시보다는 여전히 안 좋은 상태지만 그래도 나은 상황인 것이다.
버스를 타고 집에 오는 길에 문득 버지니아 울프가 생각났다. 그녀는 정신병적 양상이 동반된 양극성 장애를 앓았고 평생을 고통받았다. 그녀가 평소 좋아했던 우즈강에 걸어들어가 생을 마감한 것은 당시의 암울한 상황도 영향을 미쳤지만 근본적으로는 양극성 장애로 인한 고통을 더 이상 견디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주머니에 돌을 가득 채워 강물 속으로 걸어가기 전에 그녀가 남겼던 유서는 “사랑하는 여보, 나는 내가 뭔가 다시 미쳐 가고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로 시작해서 “나는 당신의 인생을 더 이상 망치고 싶지 않습니다”로 끝이 난다. 여기서 “다시”라는 말이 마음 깊이 다가왔다. 양극성 장애 환자는 시시포스처럼 평생을 증상의 악화와 완화 사이에서 왔다갔다 한다. 완치의 개념이 없는, 만성질환이기 때문에 지금 괜찮다고 해서 내일도 괜찮다는 보장이 없다. 냉탕과 온탕을 왔다갔다 하면서 남는 건 극도의 회의감과 절망감이다. 언제까지 이 짓을 반복해야 하는지, 매번 증상이 악화될 때마다 무너지는 일상과 그것을 복구하려고 애쓰는 것은 마치 시시포스가 다시 굴러떨어질 것을 알면서도 돌을 산 꼭대기로 올려야 했던 것과 같다. 그래서 나는 버스 창가 너머로 하나 둘 떨어지는 낙엽을 보며 버지니아 울프의 심정을, 유서를 남기고 주머니에 돌을 가득 채워 물 속으로 걸어들어간 그녀의 행동을 이해한다. 어쩌면 이 고통은 죽음 이후에서야 끝나는 것이기에.
이전 글들에서 내가 나쓰메 소세키를 좋아한다고 했었다. <유리문 안에서>라는 산문집을 틈나는대로 볼 정도로 좋아하는데 이전에는 그냥 나처럼 회의적이고 염세적인, 뭔가 모를 동질감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오늘에서야 그 ‘뭔가 모를’ 동질감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내가 그렇듯 그 또한 반복되는, 그럴 수밖에 없는 고통 속에서 살았으며 이런 반복은 죽음을 통해서만 해결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죽음이 삶보다 고귀하다고, 그것이 삶보다 더 편하다고 생각했고 이는 나 또한 동의하는 바다.
나는 요즘 보통 사람으로 산다는 것에 대해 생각하곤 한다. 내가 누렸었지만 이제는 누리지 못하는 것들에 대하여 부러움이 없다면 거짓이겠지만 그냥 있는 그대로의 사실들을 나열해 본다. 양극성 장애가 시작하기 전, 그때의 인생행로대로 걸어갔다면 지금쯤 나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 어쩌면 대학원에 있거나 직장에 다녔겠지, 출근과 퇴근이 뭔지 알았을테고, 통장에 들어오는 월급을 바라보며 일 했을지도 모르는 그런 삶.
<효과적인 치료전략 선택하기>라는 책에서는 제1형 양극성장애의 경우 첫 6개월 이내에 조증 삽화를 겪은 환자의 20%만이 이전 수준의 고용 상태로 돌아갈 수 있으며 약 90%의 사람에게서 심각한 기능 손상이 일어난다고 말한다. 실제로 경험한 바에 의하면 이전 기능 수준에 비해 – 영역에 따라 다르지만 – 30~80% 정도 수준으로 떨어졌고 이것으로 인해 일상 생활뿐만 아니라 직업적인 면에서도 큰 타격을 입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든 손상된 기능들을 회복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미래가 쉽게 그려지지 않는다.
오늘은 보다 편하게 잠을 잘 수 있을까. 때때로, 아니 생각보다 자주 잠들면서 지금 눈을 감으면 내일의 해를 보지 않았으면 할 때가 있다. 부디 언젠가는 그러길 간절히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