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조금 살 것 같다. 오늘? 어제라고 해야할지도 모를 하루는 꽤나 괜찮았던 하루였다. 8시간 반이라는, 정말 드물게 밤잠을 오래잤다. 연속적으로 7시간 넘어서 잔 건 처음이 아닌가 싶다. 일어나서 꽤 잘잔 거 같은 느낌에 한 번 놀라고, 시계 보고 놀라고, 8시간 반 잔거에 놀랐다. 기분도 나름 안정적이었고 자살 사고나 기타 부정적 사고는 거의 없었다. 정신도 꽤 말짱했고.
2.
얼마전 <효과적인 치료전략 선택하기>라는 책에서 양극성 장애 환자들이 흡연에 관한 이슈가 있다는 내용을 읽었다. 딱 한 줄로 그냥 그런 게 있어~ 라는 식으로 적혀 있길래 양극성 장애 환자이면서 흡연자이기 때문이기도 하고 원체 호기심이 많은지라 무슨 내용인지 엊그제 폭풍 검색을 했다.
3.
Riss 사이트에 가서 양극성 장애, 흡연 등등의 키워드로 검색을 했으나...... 한 두개의 논문 밖에 없었다. 그래도 찾은 논문에서 나름 유용한 정보를 얻었다. 찾느라 기운 빠져서 대충 읽었지만 대략적인 내용은 양극성 장애 환자들의 상당수(아마 7~80%의 비율이었던 거 같다)가 흡연을 하고 있으며 이는 자가치료의 한 부분으로 보인다, 또한 양극성 장애 환자들이 흡연을 하는 다른 이유로는 뇌의 구조적 문제 - 도파민? 신경전달물질? 하튼 뇌와 관련된 내용이었는데 기억이 잘 안난다 - 때문이다, 기존의 연구에서 밝혀진 바에 따르면 양극성 장애 환자의 는 일반 인구에 비해 흡연율이 높을 뿐만 아니라 금연 성공률도 낮은데 그 이유는 니코틴이 기분조절에 미치는 영향 때문이다, 심지어 일부 환자들은 금연 이후에 기분 조절 문제로 다시 흡연할 것을 권장 받았다... 등등 흥미로운 내용이 많았다. 내가 흡연을 하는 걸 정당화하려는 건 아니지만 개인적인 경험을 통해 흡연을 하고 나서 기분이 안정되는 느낌을 상당히 많이 받았기 때문에 어쩌면 그런 이유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 여튼 복잡하고 신기한 뇌, 그리고 내 뇌.
4.
Riss의 검색으로는 성에 차지 않는다! 그리하여 나는 구글링을 시전했다. 영알못 주제에 구글링은 사치인 것 같았지만 이 김에 영어를 배우게 될지도 몰라! 라며 되도 않는 영어를 적었다. bipolar disorder, Cigarette smoking 등등 관련 검색어를 치는데, 뭐가 이렇게 많은지 논문 말고도 온갖 내용이 다 뜨길래 고민하다가 NCBI라는 사이트를 알게 됐다. 미국 사이트인데 "미국 국립생물공학정보센터 ( NCBI, National Center for Biotechnology Information )는 미국 보건성 산하 국립의학도서관의 운영 분야 중 하나" 라고 한다. 이거슨 신천지...! 검색어를 입력하니 수천개의 논문이 뜬다. 상세 검색을 사용할 줄 몰라서 고민하다가 다시 구글에다 이 사이트 안에서 검색(site:)을 사용해 논문을 찾았다. 관련 있어 보이는 논문들을 추리는데 하도 많아서 시간이 많이 걸렸다.
5.
그러다 어제는 문득 이차성 파킨슨증, 코드로는 G211, 기타 약물-유발 이차성 파킨슨증(Other drug-induced secondary parkinsonism)이 생각났다. 지금 다니고 있는 병원에서 생긴(?) 진단이었는데 막연히 약물 부작용으로 느꼈던 것을 의사 선생님이 진단으로 딱 정의해주셨다. 그리고 여기에 해당하는 약물도 처방해주셨고(한 가지 의문인 건 그전에 다니던 대학병원에서는 해당 부작용에 대해 지속적으로 보고하였음에도 별다른 조치가 없었고 그냥 부작용이에요~ 하고 말았다는 것. 지금 의사 선생님은 이런 저런 부작용에 대해 잘 설명해주시고 조치를 취해야 한다면 적절하게 개입도 해주시는데 이걸 보면 의사랑 병원 잘 만나는 게 정말 큰 행운이라는 생각이 든다) 부작용을 줄일 수 있는 약물로 바꿔가는 도중에 파킨슨증 증상은 서서히 사라졌다. 그래서 지금은 그런 부작용이 거의 없다.
6.
부작용이 사라졌으니 관심이 없어질 법도 하지만 내 기질은 그게 아니었다. 마침 미국 사이트에 발을 들였겠다 어제 밤부터 조금 전까지 열심히 뒤졌다. 처음은 준비 운동 삼아 Riss에서 찾았으나... 역시 거의 없었다. 기대하지는 않았지만 다소 실망스러웠다. 실망을 안고, 그리고 미쿡은 다를 거야...! 라는 기대감을 안고 구글링을 시작... 근데 역시 미국은 달라! 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너무 많아서 이런 저런 검색어로 검색해야 할 정도로 논문이 많았다. bipolar disorder + Parkinson's disease 으로 했더니 정말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이 나왔다. 대충 해석해보니 파킨슨증에서 나타나는 정신장애에 대한 논문 + 파킨슨증과 양극성 장애 혹은 다른 정신질환 비교 등등 너무 많아서 검색어를 바꿨다. 이번엔 파킨슨증을 좀더 세분화한 Other drug-induced secondary parkinsonism으로 검색했고 찾다보니 Reversible parkinsonism, Neuroleptic‐induced 도 비슷한 뜻이라는 걸 알게 되어 이 단어들도 넣고 찾아 봤다. 그래도 너무 많길래 valproate도 넣고 별 짓을 다하다 겨우 내 의도와 비슷해보이는 논문 제목들을 찾아냈다. 근데 내 어마어마하게 짧은 영어 실력으로는 해석하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이왕 도움 받는 거 구글의 도움을 더 받았다. "한국어로 번역"을 누르니 깔끔하지는 않아도 대충 알아먹을 정도로 번역이 되었다. 덕분에 도움이 될만한 논문을 많이 찾았다. 땡큐 구글, 땡큐 NCBI, 땡큐 미쿡!
7.
이틀간 논문을 찾으면서 뼈져리게 느낀 건 한국의 학문적 뒤처짐(?)이었다. 학부 때 교수님이 농담처럼 이야기했던 게 미국에서 유행하는 심리학이 몇 년 뒤에서야 한국에서 유행한다는 거였다. 실제로 마음챙김은 미국에서 2000년대(대략 이 시기였던 걸로 기억하는데 어쨌든 한국보다는 빨랐다)에 등장했다.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지만 의학 분야, 특히 내가 관심있는 정신의학 분야에만 한정해서 본다면 이런 격차는 더욱 두드러진다. 하긴 약물을 먼저 개발한 것도 저쪽이고 그러니까 더 연구하기 쉽다는 건 알겠는데... 어쨌든 아쉽다.
8.
논문 찾으면서 내가 경험했던 부작용들이 하나 둘 떠올랐다. 지금도 부작용이 없지는 않지만 그때는 정말... 끔찍할 정도로 부작용이 많았다. 부작용을 감당하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 싶을 때가 한 두번이 아니었으니까. 지금 생각해보면 어떻게 견뎠나 싶다.
9.
며칠 전 우울 터지는 글을 썼는데 어제는 말짱(?)해져서 내가 그때 그랬었나 싶었다. 나조차도 변하는 내 상태에 놀라는데 주변 사람이나 양극성 장애에 대해 모르는 사람들은 어떨까 싶다.
10.
참, NCBI 등재 논문들은 무료로 PDF파일을 다운 받을 수 있다. Riss는 괜찮다 싶은 건 유료라 아쉬웠는데 정말 혜자스럽... 다운 받은 파일들을 변환해서 아이패드에 넣고 있다. 애플 펜슬로 뭐하지 싶었는데 논문 공부하는데 써야겠다. 리퀴드 텍스트라는 앱이 논문 공부하기 좋다길래 찾아보니 딱 내가 생각한 용도라 구매할 생각. 플렉슬도 생각해봤는데 모르는 단어 뜻 적고 연관 있는 주제나 내용 연결 짓는 거 하기엔 리퀴드 텍스트가 딱. 기능들이 내가 사고하는 방식이랑 일치해서 유용할 거 같은데... 3만 7천원이라는 가격에 심장이 아프다. 유료앱을 안써본 건 아닌데 이렇게 비싼 앱은 처음이야...... 그래도 공부할 거니까 사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