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Sail of Argo

흐르는 강물처럼

자살을 웃어넘기기

by Argo

자살 생각이 났다. 한동안 뜸 했었는데 예고도 없이 불쑥 찾아온, 너무 익숙해서 없으면 뭔가 이상한, 이제는 뗄래야 뗄 수 없는 자살 사고.




조울증에서 자살은 매우 흔한 증상 중 하나다. 연구 마다 다르긴 하지만 대다수의 조울증 환자들이 일생에서 1번 이상의 자살을 시도하고 빈번한 자살 사고 혹은 자살 충동으로 괴로워한다. 다른 정신질환에 비해 조울증에서의 자살 시도 및 사고는 유의미하게 높은 편이고 실제로 자살에 성공(?)하는 비율도 상당하다. 우리는 어쩌면 자살이라는 뫼비우스의 띠에 갇혀있는지도 모르겠다.


우울증 시기에서의 자살 사고는 대게 이유가 있다. 구체적인 원인, 예를 들어 주변인과의 갈등이나 일의 실패, 육체적 정신적 고통으로 인한 경우, 그리고 구체적인 원인은 없으나 전반적인 무기력함과 권태감, 허무함 등의 '분위기'에 사로잡혀 자연스럽게 자살 사고가 수면 위로 떠오르는 경우다. 어떤 때는 각각 나타나기도 하지만 두 가지가 동시에 나타나면서 복합적인 상황을 연출하기도 한다. 물론 복합적인 경우가 가장 골치 아프다.


오늘, 아니 어제의 자살 사고는 우울증 시기와는 다른, '보통' - 이걸 보통이라고 하기엔 좀 그렇지만 우울증일 때의 자살사고와 구분하여 나는 보통의 자살사고라고 부른다 - 의 자살 사고였다. 우울기도 아니고 조증기도 아닌 시기 - 약 우울기나 경조증 보다는 경미한 상태 - 에 주로 나타난다. 불만족스럽지 않은, 꽤나 괜찮은 생활을 유지하고 있는 상태에서 그냥, 문득, 뜬금없이 떠오르는 자살 사고가 보통 시기의 자살사고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내 말을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흔히 자살, 자살에 대한 생각은 뚜렷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도 틀린 건 아니다. 생활고에 시달려 자살을 선택하는 사람, 사업 실패나 기타 다른 이유로 자살하는 사람들의 경우가 그런 경우니까. 하지만 조울증은 자살을 포함한 많은 영역에서 일반적인 경우와 다르다. 때문에 자살이라는 중요한 문제를 다룰 때도 일반적인 접근과는 달리해야 한다.


내 경우에는 우울기에서의 자살 사고를 대처할 때 철학치료나 로고테라피, 인지행동치료적인 기법을 사용한다. 지금 드는 자살 사고가 어디에서 오는지 살펴 본다. 어떤 사건이 주된 원인이라면 그 사건이 정말로 자살을 생각할 정도의 일인가, 혹시 내가 그 사건을 바라보는 관점, 생각 때문에 그런 건 아닌지 점검한다. 막연한 - 어떤 원인이 있다고 인지해도 대게 엉성한 상태에서 알고 있는 것이지 명확한 인과관계를 인식하고 있는 건 아니다 - 자살 사고를 구체화시키고 그 사고의 일련 과정을 살펴보는 것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 생각이 바뀌면 감정도 바뀐다. 자살 사고라는 게 추진력을 얻으려면 단순한 '사고'만 있어서는 안된다. '사고'와 함께 '감정' 또한 뒷받침 되어야 한다. 자살 사고를 가속화시키는 건 감정이 있을 때다. 운전을 하기 위해서 시동을 켜야 하듯, 자살이라는 차가 움직이기 위해서는 '사고'를 통해 엔진을 점화시키고 지속적인 연료의 투입, '감정'이 있어야 한다. 인지행동치료적 접근은 시동을 끄는 역할을 한다. 그래서 자살 사고의 구체화와 확산을 막는다. 여기에는 단순히 사고 실험에만 머무르지 않고 일상 생활의 전반적인 점검도 포함된다. 운동은 얼마나 했는지, 잠은 얼마나 잤는지, 약은 잘 먹고 있는지, 추가적인 약물 치료가 필요하지 않은 지 등을 점검한다. 그래서 어느 부분에서 문제가 생겼다면 즉각적인 조치를 취한다.


또한 철학적 접근, 정확히는 스토아 학파의 주장을 떠올리는 것도 도움이 된다. 인지치료의 사상적 기반이 스토아학파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 인지행동치료적 접근과 공통점이 있다. "스스로 비참하다고 여기는 마음이 스스로 불행하게 만드는 원천이다"라는 세네카의 말이나, "인생에서 아직 육신이 굴복하지 않고 있는데 영혼이 먼저 굴복한다는 것은 치욕이다"라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말을 지속적으로 자신에게 들려주다보면 위안과 함께 현재의 상황을 한 발짝 떨어져 관찰할 수 있다.


하지만 초기 대응에 실패하거나 - 인지행동치료적 접근은 자살 사고가 시작되었을 때 가장 효과적이다 - 이미 자살사고가 강력해졌을 때는 인지행동치료만으로는 부족하다. 한참 운전을 하고 나서 시동을 껐을 때 엔진이 뜨겁듯 이미 자살사고가 오래도록 지속되었고 그로 인해 '감정' 또한 달아오른 다음에는 자살사고를 멈췄다고 해도 끝난 게 아니다. 뚝배기에 담긴 국이 시간이 지나도 끓어오르듯, 남아있는 감정은 다시금 자살 사고를 불러일으킬 가능성이 있다. 때로는 이 감정이 매우 격렬해 사고 실험을 시도하기도 전에 속수무책으로 정신을 점령하기도 한다. 이럴 때 필요한 게 빅터 프랭클의 로고테라피다.


프랭클의 로고테라피는 말 그대로 '의미'에 중점을 두고 있다. 환자에게 자신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하고 그 의미를 스스로 발견하면 삶에 대한 의지가 생겨난다고 본다. 이 삶에 대한 의지는 '그 어떤 상황에서도' 견뎌낼 수 있는 힘이 된다. 니체가 말한 것처럼 "왜 살아야 하는 지를 아는 사람은 그 어떤 상황도 견뎌낼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삶에 대한 의지, 자신의 삶에 의미가 있다는 '생각'은 삶에 대한 '충동'을 불러일으킨다. 이 삶에 대한 충동은 자살 충동과 다투기 시작하고 이런 갈등 속에서 삶의 의미가 더욱 공고해 진다. 때문에 나는 심각한 자살 충동에서 벗어났을 때 내 인생의 의미와 삶에 대한 의지가 더욱 강해지는 경험을 한다. 삶에 대한 감사가 더해지고 일상이 새롭게 느껴진다.


그렇다면 보통의 자살사고, 행복하다고 혹은 비교적 만족스럽다고 느끼는 순간에 찾아오는 자살 사고는 어떻게 대처할 수 있을까? 사실 위에 나온 방법들을 보통의 자살사고에 쓰기는 어렵다. 상황적인 이유에서도 오는 게 아니고 딱히 구체적인 원인도 없다. 이것은 조울증 특유의 증상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에 기존의 대처법은 잘 먹히지 않는다. 그렇기에 나는 '웃어 넘기기'라는 방법을 사용한다. 마치 정원에 새 한 마리가 잠깐 내려 앉았다가 훌쩍 날아가버리는 것처럼 자살사고가 찾아왔을 때 '어 또 왔네? 안녕? 오랜만이야. 저번처럼 또 왔다가 가려는 구나?'라고 여기는 것이다. 웃어 넘길 수 있는 사소한 농담처럼 대하다보면 어느새 자살 사고는 흘러가 버리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게 된다. 굳이 심각하게 생각할 필요도 진지하게 대할 필요도 없다. 상대방의 농담이나 가벼운 말에 진지하게 대응하는 것처럼 민망한 일이 없듯, 보통의 자살사고를 진지하게 대하려고 하면 그만큼 심력 소모만 될 뿐이다. 물론, 이러한 상황이 가볍다고 말할 수는 없다. 개중에는 정말 심각한 경우도 있고 도움이 필요한 경우도 있다. 때문에 다른 조울증 환자나 모두에게 내 방법과 접근이 맞다고 할 수는 없다. 개개인의 판단이 중요하다.




조울증 초기에 나는 조울증에 대해 '심각하고 진지하게' 대응했다. 사전에 알고 있던 지식들에 더해 나름대로의 공부와 연구를 통해 조울증에 대한 대응법을 고안했다. 일반적인 조울증의 증상과 내 조울증의 특이성에 대한 데이터를 모아 나만의 조울증 지도를 그렸다. 이런 나의 태도가 조울증 치료와 재활에 매우 큰 도움이 되었다는 건 분명하다. 하지만 지나치게 조울증에 대한 심각하고 진지한 대응은 정신적인 피로와 극도의 긴장 상태를 가져왔다. 혹시라도 잘못되면 어떻게 할까 전전긍긍했고 다른 진료과의 약을 먹을 때 마다 상호작용으로 인한 부작용을 걱정했다. 세상이 두렵게만 느껴졌고 조울증에 대해 알아갈수록 힘과 함께 두려움이 생겼다. 아는 것이 힘이다 라는 말과 함께 아는 것이 병이다 라는 말이 공존했던 것이다.


그러다가 차츰 증세가 안정적으로, 그러니까 일종의 패턴이 생기고 그것을 내가 인식하면서부터, 어느 정도 내가 관리할 수 있는 상태가 되면서 조금씩 조울증에 대해 '가볍게' 대응하게 되었다. 긴장을 조금 풀고 아직 일어나지 않은 상황에 대해서 걱정하지 않는 법을 배웠다. 불확실한 미래에 대해 걱정하다 보면 지금 이 순간을 놓치게 된다. 미래가 불확실하다는 것은 좋을수도 나쁠 수도 있다는 의미다. 때문에 알 수 없는 미래에 집중하기보다는 현재에 관심을 가지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면 된다. 내가 노력한다고 해서 반드시 좋은 결과만 나타나는 건 아니지만, 현재의 노력이 일정 부분 미래에 영향을 미치는 건 분명하다. 내가 통제할 수 있는 부분에 집중하는 것도 스토아 학파의 가르침 중 하나다. 이 시기에 접한 스토아 학파의 주장들이 내게 큰 도움이 되었다.




지금은 조울증에 대해 관심을 유지하면서도 지나친 걱정으로 발을 동동 구르지는 않는다. 그간의 경험으로 무엇이 심각한 상태인지, 전문적인 도움과 치료가 필요한 상황인지, 스스로 컨트롤 할 수 있는 상황인지 알기 때문이다. 설령 재발한다고 해도 걱정하지 않는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재발은 그때가서 적절한 치료를 통해 극복하면 될 일이고, 나에게 이런 과정을 견딜만한 힘과 의지, 삶의 의미가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전에도 소개한 적이 있지만 자살로 인해 힘들 때마다 읽는 구절이 있다. 내게 많은 도움을 줬던 <조울병 치유로 가는 길>에 나오는 내용인데 제법 길지만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에 여기에 옮겨 보려고 한다. 이 내용이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길 바란다.


만약 당신이 주기적으로 우울 삽화에 빠져들고 있다면, 삶을 끝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니다. 이런 생각을 그전부터 하고 있었을 수도 있지만, 우울 증상이 악화될 때 자살 생각은 더욱 심해진다. 그리고 불안이나 걱정이 심해질 때 자살 생각도 함께 심해진다. 어떤 사람들은 우울해질 때뿐만 아니라 평소에도 만성적으로 자살 생각을 갖고 있다. 어느 환자는 이렇게 고백했다. "나는 언젠가는 자살로 생을 마감할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것이 언제인가 하는 것만이 문제죠."
(...)

양극성 장애 환자들은 일반 인구에 비해 자살을 시도할 위험이 15배 정도나 높다고 알려져 있다. 양극성 장애 환자들 중 15%가 자살에 성공하고, 많게는 세 명 중 한 명이 평생 적어도 한 번은 자살을 시도한다는 보고가 있다. 비극적인 것은 자살 생각과 느낌이 생리적, 유전적 소인을 가진 양극성 장애 증상 중 하나라는 것이다. 자살을 시도하거나 성공한 사람들의 뇌 안에 세로토닌 농도가 낮다는 것은 이미 밝혀진 바 있다. 즉, 자살 충동은 양극성 장애의 신경생리와 연관이 있는 것이며, 한 개인의 나약함이나 도덕적인 결함으로 인한 것이 아니다.

따라서 자살하고 싶은 생각이 든다고 해서 이 때문에 동떨어진 느낌을 갖거나 부끄러워 할 필요가 없다. 실제로 양극성 장애를 겪는 모든 사람들은 살다가 어느 시점에서 자살에 대한 고민을 할 수 있다. 사실 양극성 장애가 없는 사람들도 막연한 자살 생각을 가질 수 있겠지만, 양극성 장애 환자들은 훨씬 더 자주, 더 강하게 이런 생각이 들고, 좀 더 구체적으로 이를 계획하여 행동에 옮기는 경향이 있다. 내 환자들 중 한 명은 자신의 자살 생각에 대해 이렇게 표현했다. "자살에 대한 생각은 마치 항상 켜져 있지만 주파수가 잘 맞춰져 있지 않아 뭐라고 하는지 잘 들리지는 않는 라디오와 같아요. 내가 정말로 우울해질 때는 꼭 누군가 다이얼을 돌린 것처럼 라디오 방송 소리가 커지고 분명해지죠."

- <조울병 치유로 가는 길>, 275~27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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