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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Hubris

결혼에 대하여

결혼은 무조건 현실입니다

by Argo

29년을 살면서 엄마와 아빠, 이 두사람의 결혼에 대해 관찰하고 고찰하고 경험했다. 인간이 다른 종에 비해 조금이나마 우월한 점이 있다면 관찰과 경험을 통해 학습할 수 있다는 것이고, 이 학습을 토대로 이전과 다른,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인간에게 학습 능력이 없다면, 현재의 눈부신 문명의 발전은 없었을 것이다(이런 말을 하는 이유는 결혼도 안해봤으면서 무슨 결혼 이야기를 하냐는 꼰대스러운 말을 차단하기 위해서다. 똥인지 된장인지 먹어봐야 아는 건 아니지 않는가).


벌써 결혼 적령기, 그러니까 친척들이 모이는 장소에 가면 여자친구는 있느냐 결혼은 언제할 꺼냐 이런 개나리 방구 같은 소리를 들을 나이가 되었다. (결혼은 혼자 합니까? 그렇게 결혼을 시키시고 싶으면 여자라도 소개시켜주시든지요)

사실 난 결혼에 대해 그리 긍정적인 입장은 아니다. 부모님을 보고, 그리고 주위의 또 다른 부모들을 보면서 이런 생각은 더 강화되고 강화되었다. 결혼은 지옥과 무덤, 혹은 그 정도는 아니더라도 지옥으로 가는 급행 열차 쯤은 된다. 뭐 가끔 행복이라는 역으로 선로가 바뀔 가능성도 있지만...


사람들은 흔히 사랑의 결과물, 사랑의 종착지로 결혼을 떠올리고, 그래서 결혼을 한다. 이런 매커니즘에 대한 여러 고찰과 분석은 다음에 하기로 하고 일단은 생각 나는데로 그냥 써보겠다. 앞에서 제목으로 썼듯이 결혼은 무조건 현실이다. 이점은 변하지 않는다. 당신이 뭐라 생각하든, 현실이 배제된 결혼은 그냥 몽상일 뿐, 당신의 호르몬이 제자리로 돌아가는 2~3년 사이에 그대의 꿈은 산산조각이 나 바닥에 떨어질 때가 올 것이다. 그때 내 주장이 무엇이었는지 알게 될 거라 생각한다. 부디 그러지 않길 바랄 뿐이다.


내가 결혼은 무조건 현실이라고 한 말에는 몇 가지 의미가 담겨있는데, 여기서 현실이라는 단어의 뜻을 정확히 할 필요가 있다. 일명 조작적 정의를 내려보자는 것이다.

내가 말하는 현실이라는 건, 보통 생각하는 물질적인 면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물론 결혼을 완전 빈손으로 할 수는 없다. 결혼식이니 뭐니 하는 건 둘째 치더라도 집이나 먹을 건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집이 있어야 2세를 위한 작업이든 쾌적한 부부의 성생활을 즐길 수 있으니 말이다.


돈이야기가 나왔으니 하는 말인데, 어느 나이드신 분이 해준 말이 떠오른다. 결혼할 때 돈을 보고 결혼하는 건 아주 멍청한 결정이라며, 돈은 있다가도 없는 것이고 없다가도 있는 것이라 하셨다. 인생사 앞으로 어떻게 될 지 모르는데(그대 자신을 보면 명확해 진다. 당신이 어렸을 때 지금의 모습이 될 거라고 상상해 본 적 있는가? 당신의 바램대로 되었냐는 거다) 단지 돈이라는 것 하나에 집착해서 결혼한다면 참... 힘들거다. 뭐 돈이 최고라면 나도 할말은 없지만.


내가 강조하고 싶은 “현실”은 결혼에 대한 생각, 태도, 자세다. 돈보다 더 중요한 것이 ‘과연 내가 결혼할 준비가 되었고, 상대방을 배우자로 맞이할 준비가 되었는가’ 이다.

사랑이라는 마약에 취해 결단을 내릴만큼 만만한 주제가 아니라는 거다. 술에 적당히 취했을 때 기분이 좋아지고 무리한 결정 - 가령 그대의 지갑을 털어 술값을 낸다든지 -을 내리고 나서 술이 깬 뒤에는 쓰린 속을 붙잡고 후회하는 것처럼, 취기가 가시고 나면 당신은 성급한 결정이었던 결혼을 후회하게 될 것이다.


어제 엄마랑 저녁을 먹고 집에 가는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엄마는 어릴 때 소아마비를 앓아서 지체장애 3급 판정을 받은 장애인이다. 비교적 젊은 시절엔 목발에 의지하지 않고 절룩이며 걸으셨지만, 지금은 목발에 의지해 걸을 수 밖에 없는 상태다. 어제는 목발 두개를 짚고 걸으셨다. 목발을 짚은 사람과 같이 걷는 다는 건, 평소의 걸음 걸이보다 한참을 느리게 걸어야 한다는 걸 뜻한다. 그리고 그 사람의 보조에 맞추면서 그 사람이 편하고 안전한 길을 걸을 수 있도록 끊임없이 주시하고 신경을 써야한다. 아, 그 목발에 걸려넘어지거나 내 발이 그 사람의 목발을 건드리지 않게 거리 확보도 꾸준히 해야하는 건 덤이다. 뭐, 사람들의 시선도 종종 받아야 하고.

어린 시절의 나는 엄마의 장애에 대해 어렴풋이 이해하고 있었고 그래서 초등학생 때는 어머니회 활동을 해야한다는 선생님에게 엄마는 3차 장애인(그때는 지체장애니 뭐니 하는 개념이 없었으니까)이라 힘들어서 안된다고 당당히 말했다. 그러다가 사춘기가 되고 엄마가 보통의, 다른 엄마들과 다르다는 걸 알게 되면서 엄마와 함께 다니는게 부끄럽기도 하고 불편했다. 그래서 학교에 오지 못하게 하고 왠만해서는 같이 다니지 않았다. 겨우 몇년 전에서야 엄마와 다니는 것이 부끄럽지 않게 되었고, 지금은 오히려 내가 엄마를 돌볼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기도 한다.

어쨋든 그런 엄마 곁을 걸으면서, 가족, 피를 나눈 사이에서도 상대방의 장애를 이해하고 감내하며 돕고 사는 게 어려운데 서로 남남인 부부 사이에서는 얼마나 어려운지 실감하게 되었다. 이건 비단 나만의 생각이 아니다. 오늘 아침 엄마에게 이 말을 했을 때 엄마도 매우 공감했다. 29년을 지켜본 바 아빠는 지금까지도 엄마의 장애에 대해 단 1도 이해를 못하고 배려를 못하는 것 같기 때문이다. 신호등이 켜지면 느린 걸음의 엄마를 내팽겨치고 혼자 가버리는 게 아빠니까.

언젠가 엄마가 이런 사례를 말해줬다. 청각장애를 가진 여자와 결혼한 남자의 이야기다. 둘이 참 사랑해서 결혼을 했다. 그러다 어느날 남자가 집에 중요한 물건을 두고 갔고, 때마침 집의 열쇠도 두고 갔다. 급한 일이기에 집으로 달려가 벨을 수십번 눌렀지만, 청각장애인 여자는 듣지 못했고, 결국 남자는 담을 넘어 집에 들어와 물건을 찾았다. 그리고 그 남자가 뭘 했는지 아는가? 넘치는 분노를 여자에게 풀었다. 무엇으로? 그토록 사랑해서 결혼한 아내를 때리는 것으로 말이다. 그때부터 남자의 폭력이 시작되었고 결국 그 여자는 자녀들도 뺏긴채 이혼을 당했다. 그리고 그 남자는 “건강한” 여자를 만나 결혼했다는, 다소 끔찍하지만 엄연한 현실의 이야기다. 이런 일은 상당히 많다.


폴 투르니에의 명저 <서로를 이해하기 위하여>를 읽다보면 결혼이 왜 중요하고 결혼 생활이 왜 그렇게 망가지는지 여실히 느낄 수 있다. 부부들을 위한 책이지만, 개인적으로는 결혼 전에 읽으면 더 좋을 거 같다. 서로를 위한 이해의 정신, 서로를 존중하고 배려하고 헌신하며, 자신의 선택에 대한 책임을 지고, 포기해야 하는 부분을 명확히 인식하고 기꺼이 포기하는 것이 결혼 안에 포함되어 있다. 따라서 나는 결혼이란 사랑의 종착지도 아니고 단지 사랑한다고 해서 결혼할 수도, 해서도 안된다고 생각한다. 결혼은 사랑 그 이상의 무언가다.


엄마와 아빠는 너무 다르다. 성장 배경도, 집안 배경과 가족 분위기도, 학력도 다르다. 이 차이에 성격 차이까지 더하니 내 어린시절과 지금도 이 두 사람의 갈등은 진행중이다. 정말 사소한 부분에서 조차 다툼과 갈등이 생기고 생겼다. 장보는 습관이나 재정관리, 자녀 양육 등 이 다른 두 사람 밑에서 형과 나는 적잖은 고생을 해야 했고, 이를 통해 나는 결혼이란 무엇인지 고민하게 되었고, 부부란 결국 남남이라는 사실도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서로를 이해하기 위한 노력 없이 부부생활이 지속되기는 어렵다는 것도.


사랑에 빠져 두 눈이 멀고 뇌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할 때, 우리는 비이성적인 판단을 내리게 된다. 물론 나는 사랑의 힘을 믿고, 사랑이 인간을 어떻게 변화시키는 지도 안다. 하지만 그 변화에는 긍정 뿐만 아니라 부정의 방향으로 변화하는 것도 포함된다. 사랑은 한 사람을 살릴 수도 있지만 또한 한 사람을 파멸시킬 수도 있다. 카미유 클로델이 로댕에게 버림받고 어떻게 되었는지 보면 알지 않는가.


그대가 결혼하기로 마음을 먹었다면, 정말 내가 이 사람과 평생을 함께 할 수 있는지 곰곰히 생각해 봐야 한다. 되도록이면 아침에 일어나 마음을 가라앉히고 상대방과 함께할 미래를 떠올려 봐라. 상대방과 나의 차이점을 깊이 생각해보는 것은 반드시 필요하다. 나이차이, 취미, 성격, 집안 분위기, 학력, 습관, 집안의 경제력이나 사회적 지위, 주변 사람들 등등 가급적 모든 차이를 생각해 봐야 한다. 그런 차이점을 쭉 적어보고 이런 차이들이 어떤 문제를 일으킬 지 고심해보라. 예를 들어 당신은 아침형 인간인데 상대방은 저녁형 인간이다. 그러면 당신과 상대방의 수면시간과 그 패턴의 차이에서 오는 고통과 어려움은 필연적이다. 여기에 당신이 아침을 꼭먹어야 하는 사람이라면, 그 아침을 어떻게 할 것인지도 고민의 영역에 들어간다. 이렇게 사소하게만 보이는 차이가 일상생활의 영역에 들어가면 생각할 만한 문제로 부상한다. 문제는 이 상황이 하루 이틀이 아니라 일년, 아니 수십년을 따라 다닌다는 것이다. 여기에 자녀가 태어나면 문제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지지만 이 부분은 나중에 따로 다루기로 하겠다.


특히 당신이 장애인 이거나 혹은 장애인과 결혼하기로 마음을 먹었다면 더 신중해야 하고 깊이 고민해야 한다. 당신이 상대방의 장애를 충분히 이해하고 경험하고 공감했는지, 혹은 상대방이 그러했는지 면밀히 검토해봐야 한다. 결혼전에 동거를 최소한 한달 정도 해보는 걸 추천한다. 일상생활에서 그 장애가 어떻게 드러나는지 경험해 보지 않고 단지 생각만으로 괜찮을 거 같다고 결론을 내리는 건 매우 무지하고 멍청한 짓이다. 당신의 이해를 돕기 위해 내 사례를 이야기 하자면, 엄마는 소아마비로 다리 한쪽이 5cm가 짧다. 이말은 뭐냐면 균형 잡기가 어렵다는 것이고, 따라서 눈이 오거나 길이 미끄러울 때는 외출이 어렵다는 뜻이다. 그래서 외출할 때는 항상 보호자의 동행이 필요하고, 집에서 일할 때도 어려움이 있다는 것이다. 무거운 물건을 드는 것도 어렵고, 심지어 세탁기에서 빨래는 꺼내는 것도 남들에 비해 매우 어렵다. 생활하는데 남들에 비해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고 다른 사람에 비해 쉽게 지치기도 한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보통 사람에 비해 노화도 더 빠르다.

당신에게는 쉽고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 그 사람에게는 매우 어렵거나 불가능한 일일 수 있다. 당신은 아무렇지 않게 말하거나 한 행동이 그 사람에게는 심각한 상처로 남을 수 있다. 결혼 생활이 파탄나는 건 엄청 큰 문제가 있어서 그런다기 보다 작은 문제들이 쌓이고 쌓여서 결정적인 사건으로 인해 빵 터지는 경우가 많다. 배우자의 지속적인 비난이나 배려 없음 같은 것들이 쌓이고 쌓이다가 임계점에 이르렀을 때 이혼하게 되는 것이다. 주로 남자들이 이런 말을 잘하는데, 배우자가 이혼을 요구할 때 자기가 도대체 무슨 잘못을 했길래 이혼해야하는지 모르겠다고 한다. 당신이 간과하거나 깊이 생각하지 않았던 문제가 당신의 결혼생활에 큰 걸림돌로 등장할 수 있다. 당신이 인격적으로 성숙하고 상대방을 이해하고자 하는, 사랑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다면 그 걸림돌을 디딤돌로 바꿀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대게 그런 경우는 드물다. 지금처럼 이혼이 과거에 비해 쉬운 세상에서 당신은 이혼이라는 하나의 관문에 들어서기 전에 현명한 판단을 내려야 할 것이다. 결혼이 행복으로 가는 문이 될지, 아니면 지옥으로 가는 급행열차가 될 것인지는 당신의 선택에 달렸다.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고, 그에 따른 책임을 지는 것으로 완성된다. 당신이 결혼을 선택하고, 그 사람과 평생 사랑하겠다고 다짐한 건 당신의 의지다. 그리고 그 결과에 따른 책임도 져야 한다. <자유로부터의 도피> 라는 책의 제목처럼, 인간은 자유와 함께 따라오는 책임의 무게를 견디기 어려워한다. 당신은 자유와 함께 책임을 져야 할 의무가 있다. 책임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겠다면, 결혼은 꿈도 꾸지 마라. 혹시라도 지금 결혼을 했다면, 자녀가 생기기 전에 이혼하길 권한다. 간혹 소원해진 부부생활의 해결책으로 자녀를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웃기는 소리 하지 말고 그냥 속시원히 이혼하길 바란다. 자녀는 당신들의 문제의 해결책이 아니다. 당신들의 어려움과 문제를 고스란히 자녀에게 물려주려고 하지 말고 당신들이 싼 똥은 당신들이 치워라.


이런 글을 싸지르는 나도 가끔은 외롭고 결혼에 대한 일말의 낭만에 미련을 버리지 못해 누군가를 만나고 싶고 적당한 사람과 결혼하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이건 최선이 아니라는 생각에 얼른 치워버린다. 태어나서 만난 가족은 내가 선택할 수 없지만, 결혼으로 만들어지는 가족은 내가 선택할 수 있다. 그런데 그런 가족을 엉망으로 만들 필요는 없지 않는가? 나는 그리 평탄하지 않은 가정사를 가진 사람이기에 더 나은 가정을 만들고 싶은 열망이 있다. 그러니 그대도 나와 같은 생각이라면 진지하고 엄격한 자세로 결혼을 대하길 바란다. 사회를 건강하게 하는 방법은 여러가지지만, 그 중에 우리가 가장 쉽게 할 수 있는 건 건강한 가정을 만드는 일이다. 어쩌다보니 사회의 건강함 이라는 말 까지 나왔는데, 어쨋든 결혼은 매우 중요하고 엄연한 현실이라는 걸 명심했으면 좋겠다.


그럼 20000!

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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