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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rgo Jan 13. 2023

내 재벌집 막내아들 돌려줘

K-드라마에 기대한 게 잘못이었을까

원작이 있는 작품을 영화나 드라마로 만드는 건 양날의 검이다. 

우선, 원작이 흥행했다는 전제하에 그 작품의 독자들을 끌어올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만큼 더 엄격한 평가가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원작을 기준으로 평가할 것이고 정말로 잘 만든 게 아니라면 

달라진 내용에 대해 가차없이 비판할테니까.


그런 점에서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은 내 비판을 받기에 충분한 작품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한국 드라마를 안 본 게 10년이 넘어간다.

장르를 불문하고 로맨스를 못 넣으면 죽는 병에 걸렸는지 

전문직을 다룬 드라마에도 로맨스를 집어넣는 것에서부터 

반복되는 클리셰에 지쳤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에 <재벌집 막내아들>을 드라마로 만들었다길래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한국 드라마도 좀 달라지지 않았을까?'라는 

다소 낙관적인 예측, 혹은 기대를 가졌다.

그리고 그 기대는 산산조각이 나다 못해 우주의 먼지가 되어버렸다.


그나마 다행이랄까. 

한 번에 몰아서 봐야겠다고 감상을 미루었던 게 신의 한 수 였다.

오늘 마지막 화를 보는 엄마 옆에서 잠깐 본 것만으로도 짜증이 났는데

처음부터 봤으면 애꿎은 태블릿만 다칠 뻔 했으니까.


엄마 옆에서 잠깐 볼때 원작보다 로맨스 요소가 더 들어간 건, 

아 뭐 그럴수 있지 라고 넘어 갔다.

애초에 없는 인물을 등장시킨 것도 아니고 원작을 읽을 때 

이 부분을 강화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싶었으니까.


문제는 마지막 화에서 터졌다.

한국 말은 끝까지 들어봐야 안다? 

이걸 드라마로 치면 한국 드라마는 끝까지 봐야 안다겠지.

도대체 어떻게 이런 결말이 나오지? 라는 의문이 끊이지 않았다.


마지막 화를 처음부터 다 본 건 아니다.

하지만 원작을 거의 10번 가까이 봤던 사람으로서 대충 감이 있다.

아 이 장면은 어디어디 부분이다 이런 거 말이다.


그랬기 때문에 청문회라는 말을 들었을 때 어? 이게 뭔 소리야 라는 

말이 저절로 나올 수 밖에 없었다.

너무 당황스러워서 같이 고개를 갸웃거리는 엄마 - 원작을 한 번도 본적이 없다 - 를

뒤로 하고 결말을 찾아봤다.

혹시나 내가 잘못 기억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어서 원작도 찾아봤다.


다행히 내 기억은 맞았다.

진도준은 죽지 않고 계속 살아남아 순양그룹을 차지하고 

이전의 자신이 죽은 장소에 가서 스스로를 위로한다. 

절대로 비자금 관련한 사건으로 죽다 살아나지 않았다.

청문회 같은 것도 나가지 않았고 죽은 약혼자를 위해 

고군분투하는 검사 캐릭터도 없었다.


미디어 믹스, OSMU에서 얼마나 원작을 반영할 것인가에 대한 정답은 없다.

하지만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은 선을 넘었다.

애초에 죽은 사람이 다른 사람으로 회귀하는 것부터가 이 작품의 특이점이다.

아무리 웹소설이라도 처음에 회귀나 빙의, 환생을 했다면 

그 설정이 계속 유지되는게 보통이다.

절대로 결말 부분에 아, 이거 꿈이었어 라든지 

알고보니 그게 빙의가 아니라 회귀였다 이런 식으로 끝나지 않는다.

근데 웹소설도 아니고 드라마에서 이렇게 한다고?


판타지에 익숙하지 않은 엄마의 경우, 이 작품의 설정을 쉽게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도 내가 몇 번 설명해주니 어이없어 하면서도 대충 이해하고 넘어갔다.

하지만 마지막화를 보면서 도대체 이게 어떻게 흘러가는 거냐, 라며

드라마를 전부 보지 못한 내게 물어볼 정도로 혼란에 빠졌다.

그러니 원작을 알고 있고, 이 작품을 정말 재밌게 본 독자로서

명작을 누더기로 만들어버린 것에 대해 화가 안 날수가 없다.


웹소설 <재벌집 막내아들>은 주관적인 견해이긴 하지만, 

재벌물 - 재벌을 다룬 웹소설 하위 분야 - 의 모범과 같은 작품이다.

누가 재벌물 좀 추천해줘 라고 물을 때마다 제일 먼저 나오는 작품이기도 하고.

그래서 드라마가 이딴 식으로 스토리를 망친 것이 너무 화가 난다.

드라마만 본 사람들이 원작도 이렇게 형편없다고 오해할까봐 걱정도 된다.

혹시나 원작에 X칠한 드라마를 보고 실망하신 분이 계시다면,

원작은 이런 허접하고 개념을 안드로메다로 보낸 드라마와는 다르다는 점을 

꼭 알려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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