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어제 무의식 글쓰기 15분을 하면서 인생에는 의미가 없다, 라는 문장을 썼던 게 아직도 머리에 남아 있다.
2.
누군가에게는 종교가, 자신의 일이, 가족이 인생의 의미일수도 있다.
3.
진리란, 불변하는 절대적인 진리란 극히 드물다고 믿는 회의론자로서 인생이라는 것을 단 하나의 의미로 정의하는 걸 반대한다.
인간은 무의미로 태어나서 의미로 죽는 존재일 뿐, 그 자체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4.
빅터 프랭클의 로고 테라피에서는 인생의 의미는 각자가 정하는 것, 이라고 말한다.
치료자의 의무는 그저 내담자와 나누는 대화 속에서 본인이 알지 못하는, 혹은 알지만 구체화시키지 못했던 인생의 의미에 대해 발견하도록 돕는 것이다.
그리고 내담자 스스로가 발견한, 정의한 인생의 의미대로 살도록 돕는 것 또한 치료자가 해야할 일이다.
5.
"인생에는 의미가 없다."
뒤이어 쓴 문장에는 이렇게 썼다.
"사는 것 자체가 의미다."
6.
인간은 어떤 목적을 가지고 태어나지 않았다.
그 자체로, 존재가 목적이다.
누군가 그랬다. 인간은 태어난 것으로 모든 것을 마쳤다고.
신을 찬양하도록 태어나지도, 국가를 위해 희생하며 충성하기 위해 태어나지도 않았다.
그냥 태어난 것뿐.
7.
인생의 의미를 무언가로 특정하는 순간 생기는 문제는, 스스로 혹은 타인이 그 의미에 충족되지 못할 때 삶의 의미를 잃어버릴 수 있다는 것이다.
의미를 찾다가 의미를 잃어버린다니, 이런 아이러니가 또 있을까.
따라서 나는 그냥 산다는 것 그 자체를 의미라 부르기로 했다.
8.
어쩌면 이런 생각은 내 현실과 맞닿아 있을지도 모르겠다.
아니, 분명 그럴 것이다.
인간의 생각은 자신의 육체와 정신, 상황에서 벗어나기 힘드므로.
9.
최소한의 행위, 어쩌면 객관적으로도 무의미해보이는 내 일상에서 인생의 의미를 찾는다는 건 사막에서 아이스크림을 찾는 것 만큼 무의미하다.
10.
10년전의 나는 많은 계획을 세웠고 고작 2~3년 후에 양극성 장애가 발병할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그때 내가 가지고 있었던 인생의 의미에 지금을 대입한다면?
그때 지금같은 상황이 닥칠거라는 걸 알았다면?
인생무상을 실감하지 않았을까.
11.
요즘 100%가 아닌 삶에 대해 배우고 있다.
열심히 살지 않는 것도 열심히 사는 거라는, 모순된 논리가 핵심이다.
양극성 장애가 모순으로 가득 찬 것처럼, 이 모순을 짊어지고 있는 내 삶 또한 모순으로 가득하다.
이것을 견디는 것이 내가 사는 삶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