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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극성 장애 환자들을 위한 충고 (1)

지극히 개인적인,

by Argo

1.

약물 치료는 가장 중요한 치료일 뿐만 아니라 거의 유일한 치료법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 무엇도 약물치료를 대체할 수 없다. 약물치료와 함께 심리치료를 받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긴 하지만, 이 경우에도 약물치료가 1순위다. 절대 심리치료 단독으로는 양극성 장애를 치료할 수 없다.


2.

원인을 파악하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현재를 잊어버리지 마라. 뭐가 어찌되었건 당신이 현재 양극성 장애 환자라는 것을 기억하라.


3.

무엇보다 먼저 자신이 '환자'라는 사실을 인정하길 바란다. 그것이 당신의 정신 건강에 이로울 뿐만 아니라 양극성 환자로서 살아가는데 큰 도움이 되니까.


4.

양극성 장애 진단이 내려지는 것은 상당히 까다로운 작업이다. 종종 의사들은 우울증이나 조현병 같은 다른 정신질환, 혹은 신체적 질환(갑상선 관련 질환 등)으로 인한 증상을 양극성 장애로 진단을 내리는 경우가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양극성 장애 진단을 위한 정량적인 도구가 없다는 것이다. 뼈가 부러지면 엑스레이로 알아볼 수 있지만, 당신의 뇌가 다친 것은 파악할 수 없다. 따라서 진단이 의심스럽다면 여러 의사에게 가봐라. 하지만 당신이 틀릴 수 있다는 것을, 양극성 장애가 맞을 수 있다는 것 또한 기억하라.


5.

정직하라, 특히 자신에게. 당신의 감정과 생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라. 어쩌면 당신은 우울할지도 모른다. 어쩌면 당신은 자살을 생각할 수도 있고, 어쩌면 당신은 갑작스럽게 화를 내고 싶을지도 모른다. 양극성 장애 환자의 세계는 스스로가 아니면 해석하기 힘든 경우가 많다. 적어도 당신 만큼은 스스로를 최대한 이해하려고 노력하라. 당신의 감정이 파도를 타고 일상이 뒤흔들리는 상황을 온전히 겪고 감당할 사람은 당신이니까.


6.

의사 앞에서는 그 어느 때보다 정직해야 한다. 당신이 조금이라도 나은 삶을 살고 싶다면, 현재의 감정과 최근 생겼던 일들, 증상이나 치료에 유의미한 사항에 대해서는 빠짐없이 말해야 한다. 당신이 의사에게 정직한 만큼만 도움을 받을 수 있다.


7.

약물 치료가 삶의 질을 확연히 떨어뜨리는 것은 맞다. 하지만 그게 아니라면 당신의 삶이 없어질 것이다. 약물 치료를 한다고 해서 재발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당신이 조금이라도 재발을 줄이고 그 고통을 낮추고 싶다면 약물치료를 받아야 한다.


8.

당신의 한계를 받아들여라. 당신은 다른 사람처럼 살 수 없고, 될 수 없다. 양극성 장애 환자로서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할 수 없는지 알아야 한다. 양극성 장애 환자가 된다는 건, 수많은 제약이 있다는 뜻이다.


9.

금주가 최선이지만 안될 경우 마지노선을 정하라. 개인차가 있겠지만 취기를 느끼지 않는 선이 적절하다고 본다.


10.

잘 자라. 수면은 당신의 재발과 삶의 질에 큰 영향을 끼친다.


11.

기분이 불안정한가? 불쑥 화가 나는가? 수면시간을 체크하라. 당신의 수면은 생각보다 중요하고 약물치료 다음으로 절대적이다.


12.

과거의 자신을 잊어라. 지금의 당신은 아마, 확실하게, 지난날의 당신보다 더 못한 존재일 가능성이 높다. 예전에는 당연하게 했던, 할 수 있었던 일이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현재를 과거에 비춰보면 좌절감만 커진다. 아쉬움을 집어삼키고 지금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라.


13.

삶은 스트레스다. 당신은 현재 엉망진창으로 금이 간 유리와 같다. 지금 당장 깨지진 않겠지만 약간의 힘만으로도 파멸적인 결과가 초래될 수 있다. 삶에서 큰 변화를 추구하기보다는 점진적인 변화와 적응에 초점을 맞춰라.


14.

당신이 다 나았다고 느껴진다면, 반드시 의사에게 가서 확인을 받아보라. 아마도 당신은 나은 게 아니라 일시적인 완화 혹은 안정기에 접어든 것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15.

양극성 장애에는 완치란 없다. 이 사실을 받아들이고 기억하라. 종교적 수단이나 민간 요법 따위에 기대지 말고 그저 운명이라고 받아들여라. 당신은 이미 늪에 빠졌고, 빠져 나올 방법은 없으며 그저 줄을 잡고 상반신만 간신히 내놓은 것만으로도 감사히 여겨라.


16.

증상이 괜찮아졌다 해도 약물치료는 계속하라. 양극성 장애 환자가 된다는 것은 약물과 함께 일생을 보낸다는 의미다. 적어도 현재의 의료 수준으로는 그렇다.


17.

긍정적인 사건, 부정적인 사건 모두 양극성 장애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이해하기 어렵겠지만 긍정적인 사건도 일종의 변화고, 이 변화는 곧 당신의 증상이 변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18.

다른 사람이 당신을 이해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마라. 또한 누군가의 이해를 바라지도 마라. 타인이 당신을 조금 알 수는 있겠지만 이해하긴 불가능에 가깝다. 평범한 사람이 겪는 감정적 문제와 양극성 장애 환자가 겪는 감정적 문제는 차원이 다른 문제다. 당신이 타인의 이해를 구하면 구할수록 더 고독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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