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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물치료를 위한 미세팁

별거 아니에요 진짜로

by Argo

올해로 8년째 약물치료를 받고 있다.

처음엔 리튬 계열 약만 조금 먹다가 병원 옮기고 나서 데파코트부터 시작해서 아빌리파이, 알프람, 세로켈, 라믹탈, 웰부트린 등등 이것 저것 섞어서 실험 아닌 실험을 했었다.

지금은 라믹탈과 웰부트린 두 가지로 끝이지만 한 때 최대 7~8종류, 8~9알 정도의 약을 먹었다. 망할 데파코트가 간수치를 상승시키는 바람에 정상화시키기 위한 약도 더해지다 보니 저만큼 먹을 수 밖에 없었다.

한창(?) 먹을 때는 정신과약 + 부작용 완화약까지 먹어야 했으니....

수업 시간에 양극성 장애의 약물치료가 매우 어렵다는 말을 텍스트로 접했을 때는 그런가 보다 했었는데 실제로 경험하니 욕이 저절로 나왔다. 증상이 변할 때마다 약물이 추가되었다가 다시 빠지고, 이 약과 저 약을 조합했는데 부작용이 심해서 바꾼 적이 한 두번이 아니다.

첫 약물치료를 시작하고 지금의 약물로 '고정'될 때까지 걸린 기간은 약 5년. 하루도 빠지지 않고 약물치료에 전념한 결과 얻은 훈장이다.

양극성 장애 환자가 맞는 약물을 찾는데 평균 4년이 걸린다고 하는데 수기를 보면 2,30년 걸린 사람도 있다.


아무튼 8년 차 양극성 장애 약물치료 환자로서 약물치료와 관련된 팁을 풀어보자면,


1. 알람을 해라.

약물 치료 초기에는 한 번만 먹다가 병원 변경 이후부터는 하루에 평균 2번, 많게는 4번까지 약을 먹어야 했다. 약물치료가 힘든 이유는 양극성 장애 특징상 맞는 약물을 찾는 게 어렵다는 것도 있지만, 제 때 약을 먹는 게 쉽지 않는 것도 한 몫한다.

특히 발병한 지 얼마 안 된 상황일 때는 증상에 따라 다르지만 '정신'이 없다. 진짜 말 그대로다. 약 기운 때문에 몽롱하고 하루 종일 잠만 잘 때도 있다보니 제대로 챙겨먹기가 힘든 게 당연. 초반에만 그러는 게 아니라 약물치료하는 내내 약을 깜박하는 건 다반사다.

그래서 나는 시작할 때부터 먹어야 하는 시간에 알람을 해놓고 여기에 맞춰 챙겨먹었다. 지금도 그렇게 하고 있는데 솔직히 말해서 그래도 빼먹을 때가 종종 있다. 조금 이따 먹어야지 하다가 잊어버린다.

그러니 약물 치료를 제대로 하고 싶다면 반드시 알람을 해서 약을 제 때에 정확히 복용하자. 약을 먹는 것도 중요하지만 시간을 지키는 것도 중요하다.


2. 1주일 단위로 약을 구분해서 챙겨 먹어라.

약물 치료를 하다보면 가끔 겪는 고민이 하나 있다. 내가 오늘 혹은 어제 약을 먹었던가?

먹은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고, 그렇다고 또 먹자니 용량 때문에 중복 복용하면 안 되는 경우가 발생하는 것이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1주일 단위로 약을 구분하는 것이다. 비닐 포장된 약인 경우 7개를 각각 나눠놓고, 병원에서 파는 일반의약품처럼 개별 포장된 약의 경우 다이소에서 파는 투약통에 하나씩 잘라서 넣어둔다. 이렇게 해놓으면 중복 복용할 위험을 줄이고 약을 먹었는지 안 먹었는지 고민할 필요도 없다.


3. 개별 포장된 약물로 치료받자.

이건 장기 약물치료 환자들의 경우에 해당되는 말이다. 나처럼 한달 이상의 단위로 약을 처방받는 경우 한달 치 약이 담긴 통으로 주기도 한다. 이럴 경우에 되도록이면 통으로 받지 말고 비닐 포장이나 일반의약품의 포장 같이 개별 포장된 형태로 처방받는 게 좋다.

약물에도 엄연히 유통기한이 있다. 특히 약물은 습기에 노출되기 쉽다. 통에 들어 있는 약의 경우 수시로 열었다 닫았다 하면서 조금씩 습기가 들어가게 되고 뚜껑을 아무리 잘 닫는다고 해도 습기가 안 들어가는 게 아니다.

실제로 예전에 웰부트린을 한 통으로 처방받았던 적이 있었다. 계속 먹는 게 아니어서 먹으라고 할 때만 먹다가 조금 지나서 확인해보니 약과 동거하고 있는 곰팡이를 발견할 수 있었다.

습기도 문제지만 통으로 받으면 2번에서처럼 약물 복용 여부를 확인하기가 어려운 문제가 있다. 그러니 되도록이면 개별 포장된 약을 받는 게 여러모로 좋다.


4. 부작용은 바로 말한다.

부작용은 환자가 약물 치료를 거부하는 가장 큰 원인이다. 맞는 약을 찾는 과정이 어려운 것도 여기에 있다.

같은 약을 먹더라도 환자마자 반응이 제각각이다 보니 환자도 의사도 골치가 아플 수 밖에 없다.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약물치료의 성공 - 맞는 약물을 찾는 것 - 은 어느 정도 운이 따라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운에만 기댈 수는 없다. 약물 치료의 시행착오를 줄이는 방법 중 하나는 약물 치료 도중 발생하는 부작용을 진료 시간에 반드시 말하는 것이다.

모든 병이 그렇지만 특히 정신과는 환자의 자기보고가 매우 중요하다. 의사가 눈으로 확인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환자들이 반드시 기억해야 하는 사실은, 당신이 말하지 않으면 의사는 아무것도 모른다.

양극성 장애의 약물치료는 환자와 의사의 2인 3각 경기와 같다. 따라서 환자가 협조하지 않으면 의사는 제대로 된 처방을 내릴 수 없다. 그러니 약물 치료를 하는 동안 자신의 신체적, 정신적 반응에 대해 면밀하게 보고해야 한다.

정신과 약물의 부작용 중에는 일시적인 것도 있지만 영구 혹은 반영구적인 것도 있다. 대다수의 부작용들은 적응을 하거나 약물 복용을 중단하면 사라진다. 하지만 일부 부작용의 경우 초기에 바로잡지 않으면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불러오는 경우도 있다. 따라서 환자가 이상 현상에 대해 보고하지 않으면 이른바 '골든타임'을 놓치게 되고, 그 결과 생기는 치명적인 부작용은 환자가 짊어질 수 밖에 없다.

보통 환자들이 부작용이나 이상 현상에 대해 제대로 말하지 않는 이유는 약물을 변경함으로 인해 겪어야 할 불편함 때문이다. 하지만 왜 약물 치료를 받는지 기억해야 한다. 지금 당장의 불편함을 피하려다가 평생 불편해질 수 있으니 효과적인 치료를 위해서라도, 그리고 건강을 위해서라도 부작용이 생기면 반드시 이야기 해야 한다. 심상치 않은 부작용인 경우, 다음 진료일을 기다리지 말고 곧바로 병원을 찾는 걸 추천한다.


양극성 장애 치료에 약물치료 만큼 효과적이고 절대적인 치료법은 없다. 그러니 무엇보다 약물치료를 최우선 순위에 두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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