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또 왜 아픈 건데
엄마도 아픈 건 뭐 같이 사는 사람끼리 그럴 수도 있다고 치자.
근데 넌 왜?
고등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과장 조금 보태서 20년째 끊김 없이 만나는 친구가 있다.
생각만 해도 이가 갈리는 처참한 유년기의 잦은 이사로 내게 학창시절, 특히 초등학교, 중학교 친구가 없다.
아마 이 친구가 없었다면 고등학교 친구도 없었을 거고 무엇보다 진작에 난 이 세상에 없었을 거다.
아무튼 이 친구 사람은 요즘 공무원을 그만두고 다시 공무원 학원을 다니고 있다.
첫 시험 보자마자 붙었는데 과도한 업무와 상사의 갑질을 견디지 못해 재시험을 봤다가 또 합격해버렸다.
일반행정으로 한 번 고생했으니 교육행정으로 갔지만... 근무지가 또 시골이었던 탓일까.
이번에는 연고지가 아닌 탓에 겪는 소외감과 바뀐 교장의 지랄에 재시험을 봤으나 떨어지고 만다.
(교장의 지랄이 얼마나 심각한 수준이었냐면, 한 선생님은 교장의 지랄을 견디다 못해 공황장애와 우울증으로 휴직을 하고 말았다고. 그리고 임시로 친구의 자리를 채우러 왔던 사람은 출근 하루 만에 교장과 대판 싸운 뒤 일 못하겠다며 바로 집으로 갔다는 후문이 있다.)
결국 고민 끝에 이번에는 면직을 한 뒤 시험 준비를 하고 있다.
시험을 준비하는 사람에게 좋은 소식도 아니고 아프다는 말을 하는 게 괜찮을까, 라는 생각을 하긴 했는데 뭐 우리 사이가 그런 걸 고민할 사이도 아니고 그냥 코로나 걸렸다고 카톡했다.
근데 이 인간이 답장이 없다.
뭐지? 무슨 일이 생겼나?
약간의 서운함을 뒤로 하고 오늘 낮잠(?)을 자고 일어나니 카톡이 와 있었다.
그럼 그렇지, 위경련으로 고생하다 새벽에 응급실에 갔다고 한다.
약간의 서운함은 더 큰 걱정으로 덮였다.
아마도 스트레스가 원인 같은데 자세한 내막은 모르겠지만 또다시 시험 준비를 하는 게 쉽진 않을 거다.
이번이 4번째 시험이고 2번 합격해봤다고 하지만 인생이 걸려 있는 문제 앞에서 초연할 사람은 없으니까.
아무튼 내가 아픈 것도 괴롭지만 주변 사람까지 아프니 두 배, 세 배로 더 괴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