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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rgo Dec 14. 2023

MZ는 죄가 없다

당신들이 만든 MZ, 악으로 깡으로 버티세요

한 농부가 있었다.

그는 대대로 물려받은 제법 큰 땅을 가지고 있었는데 입지는 그럭저럭 괜찮았지만 돌도 많고 당장 밭으로 만들기에는 문제가 많았다.

농부는 때로는 땀을, 때로는 눈물을 흘려가며 땅에 가득했던 돌을 농작물로 바꾸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그도 자신의 조상들처럼 이 땅을 자식에게 물려주고는, 내가 이렇게 잘 만들어놨으니 자식은 힘들지 않게 잘 살겠지 싶었다.


하지만 어느날 밭에 가보니 가득했던 농작물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잡초와 흙바닥이 더 많이 보였다.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인가 화를 내니 자식이 하는 말이, 나는 당신이 하던대로 했는데 결과가 이런 걸 어쩌냐고 나는 더이상 방법이 없다며 울먹였다.

언듯 보기에도 자식은 자신이 한대로 따라하긴 한 것 같았다.

결국 농부는 일일이 돌아다니며 자세히 살펴보았다.

그리고 문제가 무엇인지 어렴풋이 깨닫게 되었다.


일단 첫 번째는 비료였다.

자신이 이 밭을 개척한 뒤에는 비료를 살 돈이 없어서, 그리고 나중에는 굳이 비료 없이도 농작물이 잘 자라서 사용하지 않았다. 

자식에게 물려줄 때 소출이 조금 줄어든 걸 알았지만 그냥 그 시기에 태풍도 있고 가뭄도 있어서 그런거라 넘겼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소출이 점점 줄기 시작한 이유는 지력이 다해서였다.

자신이 농사를 짓는 동안 서서히 약해지던 지력이 자식 대에 이르러서는 완전히 고갈 상태가 되버린 것이다.


두 번째는 경험이었다.

자신이 밭에 혼신의 힘을 다하느라 자식에게는 제대로 된 농사법을 가르쳐 주지 못했다. 

어쩌다 한 두마디 해주기는 했지만 자신도 어차피 누가 가르쳐줘서 그런게 아니니 어련히 알아서 하겠지 싶었다.

하지만 그가 간과한 것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새로 쌓아올리는 것과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이미 망가진 것을 복구하는 것은 다르다는 것이었다. 

자신은 밭을 새로 만들면서 시행착오 끝에 경험을 쌓았고 좋은 농부가 될 수 있었다.

하지만 자식은 달랐다.

자신이 가르쳐주지도 않았고 제대로 된 경험을 쌓을 기회도 없었다. 

언제쯤 비가 오는지, 그리고 비가 오면 어떻게 해야하는지, 어느 정도 간격으로 농작물을 심어야 하는지 등 농부로서 갖춰야했던 기본적인 지식도 부족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자신이 농사 지을 때와 달리 농부들의 숫자가 많아진 것도 문제였다.

너도 나도 농사를 짓기 시작하면서 필연적으로 가격이 떨어졌고 수입이 줄게 되자 농사하는데 기본적으로 들어가는 비용이 적을 수밖에 없었다.

이외에도 자잘한 문제들이 겹치고 겹쳐 지금에 이르렀다.

어느 정도 상황을 파악한 농부는 작금의 상황이 결국은 자신이 만들어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자신이 비료를 뿌려서 지력을 보존했다면, 자식에게 충분한 경험을 쌓도록 했다면, 경쟁자들이 생겨도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줬다면 이런 상황까지는 오지 않았을텐데.

농부는 때늦은 후회를 했지만 그도 자식과 마찬가지로 현 상황을 바꿀만한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저 서로를 마주보며 한숨만 푹 내쉴 뿐이었다.




MZ라는 말이 너무 자주 들린다.

그게 긍정적인 뉘앙스라면 괜찮겠지만 반대라서 문제다.

내가 MZ 세대에 속해있기 때문에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MZ 세대를 비판 혹은 비난하는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다.

우리는 죄가 없다고.

왜냐고?

그건 우리가 이 사회를 만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MZ 세대는 대체로 현재 2~30대에 해당한다.

이 말은 우리가 사회를 만들기보다는 이제 사회에 막 발을 들였거나 적응해나가는 중이라는 것이다.

당장 내가 겪었던 입시 제도는 누가 만들었을까.

기성 세대가 만들었다.

입시 제도 하에서 우리는 협동보다는 경쟁에 눈을 떴다.

학교에서 누군가의 이름을 말할 때 

"아, 걔는 반/전교에서 몇 등이지?"

"쟤가 1등한다는 그 애야?"

라고, '등수'로 사람을 구분하는데 익숙해졌다. 

모두가 경쟁자인 상황에서 협동심이 키워질 수 있을까?

우리는 서로를 등수로 판단하고 부모는 우리를 대학으로 판단했다.

부모들은 자식이 좋은 대학에 가는 것이 전부인 것처럼 우리를 키웠다.

자식이 좋은 대학을 갈수만 있다면 위장 전입, 대리 시험 같은 불법과 편법을 넘나드는 부모들도 적지 않았다.

더 큰 문제는 그렇게 대학에 가기만하면 인생이 다 끝나거나 잘 풀리는 게 아니라는 것.

과거와 달리 현재는 '좋은 대학'에 나와도 취직에 실패하는 경우가 많다.

대학 가기 전에는 대학만 가면 된다고 그렇게 배웠는데 막상 대학가보니까 이제는 인생이 걸린 경쟁에서 승리해야 하는 상황이 닥쳤다. 

갈수록 경쟁해야 하는 영역과 대상들이 늘어나면서 '각자도생'이 우리의 신념이 된 게 아닐까.


지금의 각종 정책들?

현재 사회의 대부분의 영역에서 우리가 주도적으로 무언가 만든게 있기나 할까.

농부가 한 해 농사를 망쳤을 때 그것이 천재지변의 영향이 아니라면 최종적으로 책임은 농부에게 있다.

씨를 선택한 것도, 어떤 땅에 심고 어떤 방법으로 키울 것인지, 언제 심고 언제 수확할지도 모두 농부가 결정한다.

이런 상황에서 농사를 망쳐놓고 씨앗 탓을 한다면 너무 양심이 없는 게 아닐까.


자식은 부모를 닮는다고들 한다.

자식의 잘못으로 인해 부모가 욕을 먹는 건 흔히 있는 일이다.

그렇다면 MZ 세대가 잘못했다면, 그래서 부모가 욕을 먹어야 한다면 그 부모는 도대체 누구일까.

그러니까 말하자면, MZ 세대를 욕하는 순간 당신은 - 만약 당신이 기성세대라면 - 스스로의 얼굴에 침 뱉는 것이다. 


출산율이 낮다고 MZ 세대를 탓하지 마라.

결혼을 '안'하고 '못'하는 게 전적으로 우리 탓은 아니니까.

게다가 우리는 이기적인 게 아니라 현명한 거다.

최재천 교수는 현재 MZ 세대의 출산율이 낮은 상황을 진화론적인 관점에서 이렇게 설명했다.

새끼를 기를 수 없는 상황에서 새끼를 낳는 동물은 생존에 유리한 상황을 만들어 낼 수 없다. 

따라서 그럴 때는 종족 번식보다는, 생존하기 위해 내 몸을 키우고 상황이 좋아졌을 때, 새끼를 낳아야 한다고.(1)

당장 학자금 대출 갚을 돈이 없어서 직장이 있어도 제대로 돈을 못 모으는데 어느 세월에 결혼 자금을 마련해서 집을 사고 결혼을 할까.

(지금은 어찌저찌 해결하긴 했는데 대학교 다니면서 등록기간이나 이따금 학자금 대출 확인할 때는 숨이 턱턱 막혔다. 당장 취업도 할까말까인데 언제 이 돈을 갚을까 막막했다.)

물론 가치관의 변화도 출산율 저하의 한가지 원인일 수도 있다. 

하지만 현 MZ 세대에게 중요한 건 결혼이나 출산율이 아니라 '생존' 그 자체다. 

그리고 생존보다 더 중요한 건 없다.


또한 직장 내에서 MZ 세대에 대해 이런 저런 말이 나오는 걸 안다.

물론 현 MZ 세대의 일원으로서 분명히 개념 없고 집단이나 사회에서 지켜야할 규칙을 어기는 사람이 있다는 걸 인정한다.

하지만 과연 그게 전부일까?

수당 없는 야근을 하는 게 잘못된 것이지, 정시 퇴근이 잘못된 것일까.

출근 시간보다 일찍 출근해야 하는 건 본인의 자유가 아닐까.

규칙을 어기는 것은 잘못된 일이지만 만약 그 규칙이 잘못된 것이라면?

기성 세대는 MZ 세대가 어기는 규칙이 있다면 무조건 비난할 게 아니라 혹시나 규칙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닌지, 규칙의 합리성과 정당성에 대해 자문해 볼 필요가 있다. 


내가 할아버지를 제일 존경하는 이유는 한국 전쟁에 학도병으로 참전해서 나라를 지키고, 부상으로 제대한 뒤에는 한 기업에서 사회의 일원으로써 정년 퇴직까지 하셨기 때문이다. 

때문에 나는 현재 한국 사회를 만들어 낸 기성 세대에게 감사하고 또 그들의 공이 크다는 것을 인정한다.

하지만 동시에 그들에게는 현 사회를 만들어 낸 책임도 존재한다.

자신은 좋은 농부가 되었지만 자식은 그렇게 하지 못한 농부처럼, 기성 세대는 사회를 일으켜 세웠지만 세대 농사에는 실패한 게 아닐까.

그리고 자꾸 MZ 세대가 어쩌니 하는데 그럴 시간에 생산적인 해결책이나 찾았으면 싶다.

이미 소를 잃었는데 망가진 외양간이 누구 잘못인지 따지기 보다는 어떻게 하면 수리할 수 있을지를 고민해야 남은 소마저 잃지 않을테니까.





(1) 출처 : https://www.youtube.com/watch?v=grFopgUvTM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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