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점이 실격을 의미하는 건 아닙니다.
<인간 실격>이라는 소설이 있다.
읽을 책 목록에 올린지는 오래 되었지만 아직까지 읽지 못했다. 하지만 이 책의 제목을 떠올릴 때마다 인간이란 무엇인지, 그리고 '실격'이라는 단어에 대해 숙고하게 된다.
한때 성격에 대해 연구한 적이 있다. 어린 시절부터 내가 뭔지 모르겠지만 다른 사람들과 다르다는 느낌을 받았었다. 나는 질문이 많은 아이였고 호기심으로 충만했다. 7살 무렵에 '불'에 관심을 가졌는데 이것의 속성이 무엇일까 고민하다 '혹시 돌에도 불이 붙을까'하는 생각에 집 벽에 라이터로 불을 붙였다가 크게 혼났던 적도 있었다.
할아버지 할머니와 많은 시간을 보낸 탓일까. 나는 다른 아이들보다 일찍 많은 단어를 구사할 수 있었고 책과 기록을 좋아하셨던 할아버지의 영향으로 일찍부터 책에 대해 관심을 가졌다(여기에는 목이 쉴 때까지 책을 읽어줬던 엄마의 공도 있다). 게다가 감수성도 남달라서 어떤 사건이나 사물을 보고, 혹은 그런 것과 연관되는 이미지 때문에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대게 아이들은 인내심이 적고 집중력이 짧다. 하지만 나는 5살 때 개미 관찰 일지를 쓰기 위해 1시간이고 2시간이고 쭈그려 앉아서 개미들을 들여다봤다. 과자 부스러기를 던져 놓고 개미들이 얼마만에 과자를 발견하는지, 그리고 동료들과 함께 그 과자를 해체해서 사라지는지 관찰했다. 관찰을 통해 비가 오기 전에 개미들이 분주히 움직이며 개미굴 입구에 돌을 쌓는다는 것도, 먹이의 근처에 돌을 쌓는다는 것도 그때 알았다. 물론 여느 아이들처럼 장난을 좋아하고 이런 저런 사고도 쳤지만, 내게 다른 아이들과 다른 무언가가 있었다는 건 나뿐만 아니라 엄마도 조금은 알고 있었다.
학령기가 되면서 나의 특이함은 점점 더 두드러졌다. 수업 시간에 질문을 하고 선생님의 질문에 틀리든 맞든 상관없이 대답하는 아이는 대게 나였다. 때때로 내 적극적인 모습은 아이들의 놀림거리가 되기도 했다. 어느 새 나는 '잘난 척 하는 아이가 되어있을 때도 있었고.
키가 자라고 머리가 커지면서 특이함이 결점처럼 여겨지는 경우가 생겼다. 읽어 왔던 책들의 영향으로 그 나이대에 하기 힘든 생각이나 말을 할 때마다 또래 아이들로부터 이해할 수 없는 말을 하는 '이상한 아이' 취급을 받게 된 것이다. 아빠의 방황으로 잦은 이사 - 지금까지 15번 정도의 이사를 다니면서 초등학교는 3번, 중학교는 2번 옮겼다. 불행중 다행으로 고등학교는 한 학교에서 마쳤지만 - 를 다니면서 이런 경향은 더 심해졌고 나는 이내 내 생각을 적극적으로 표현하길 그만두었다. 그 대신 글을 쓰기 시작했고 점점 책과 생각, 글쓰기의 세계로 침잠했다.
대학 진학을 앞두고 한 차례 실패 - 국문과나 문창과를 가려고 했으나 주위의 반대로 가지 못하고 다른 과를 갔다가 그만둔 일을 말한다. 집안 사정이 어려우니 글로는 먹고 살기 힘들다는 말에 끝끝내 내 뜻을 꺾어야 했던 아픈 기억이다 - 를 겪고 고민 끝에 심리학과로 진학했다. 이 학과에 간 이유는 글쓰기 다음으로 내가 관심있었떤 학문이 심리학이었고 어린 시절 잦은 가정 폭력과 여러 외상적 사건으로 인해 엉망진창이 된 나를 돌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나를 '이해'하고 싶었다.
내 바람대로 전공 수업을 들으면서 나는 나 자신을 이해하고 보듬을 수 있었다. 어릴 때부터 두각을 나타냈던 호기심, 감수성은 나의 예민한 내면세계를 짐작할 수 있었던 지표였다. 융의 도움으로 내가 내향적인 사람이며 매우 예민한 감수성을 지니고 있고 이로 인해 때로는 고통을 겪기도 하지만 제대로 사용하기만 한다면 그 무엇보다 훌륭한 자산이 될 수 있음을 알았다.
그때부터 나는 다른 사람들과 굳이 맞추려는 노력을 서서히 그만두기 시작했다. 어떻게든 다른 사람과 같아 보이려고 모임에 참석하고 외향적인 사람처럼 살려고 노력했었다. 물론 그 결과는 심한 탈진과 신체적인 이상 현상 - 피로와 긴장으로 인한 과민성 대장증후군 같은 - 이었고 항상 불편하고 어디론가 도망가고 싶다는 생각에 시달렸었다. 심리학을 배우면서 나를 이해하고 그 이해를 바탕으로 본연의 모습을 되찾는 과정은 내가 결점으로 생각했고 또 어느 정도는 실제로 결점인 것들이 그렇게 큰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그것이 인간 '실격'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걸 깨닫게 해주었다.
매주 일요일이면 오전에 집 근처 공공도서관에 가는 습관이 있다. 빌렸던 책을 읽거나 서가 사이를 돌아다니면서 즉흥적으로 책을 골라 1~2시간 정도 읽다가 마음에 드는 부분은 필사하기도 하고 때로는 영감을 얻기도 한다.
오늘도 예외는 아니어서 윈스턴 처칠이 쓴 <제2차 세계대전>을 조금 읽었다. 읽었던 부분은 됭케르트 철수 작전에 관련된 내용이었는데 내가 이따금 다시 보는 <다키스트 아워>와 <덩케르크>와 관련된 것이어서 흥미롭게 읽었다. 영화의 내용과 장면들과 연결지으면서 읽는 재미가 쏠쏠했다.
내가 좋아하는 인물 중에 상위권에 꼽히는 사람이 윈스턴 처칠이다. 처칠은 100만 명의 영국인을 대상으로 BBC에서 조사한 설문에서 가장 존경하는 인물 1위이다. 영국인들은, 그리고 나는 왜 윈스턴 처칠을 좋아하는 걸까?
게리 올드먼의 연륜 넘치는 연기를 감상할 수 있는 <다키스트 아워>를 보면 윈스턴 처칠의 인간적인 면모를 알 수 있다. 제2차 세계대전, 나라의 운명을 좌우할 중요한 시기에 수상이 된 처칠은 인간적으로 '완벽한' 사람이 아니었다. 상습 음주에 성격은 종잡을 수 없어서 주변인들은 처칠의 반응에 전전긍긍해야 했다. 예민하고 우울한 정서가 친구였던 그는 - 실제로 처칠은 우울증을 앓았으며 우울증에 대해 블랙독이라고 명명하기도 했다 - 침울해 하고 눈물을 보이기도 하는, 강인한 지도자 상과는 거리가 있는 모습을 보인다.
내가 좋아하는 영화의 장면들이 몇몇 있지만 - 비오는 거리를 차타고 가면서 시민들을 보다가 지하철에 타는 장면, 지하철에서 시민들을 만나는 장면, 각료들에게 연설하고 의회에서 연설하는 장면 등 - 그 중에서 잔잔한 감동을 주는 장면이 있는데 그건 바로 처칠의 아내가 실의에 빠져 있는 처칠에게 말하는 장면이다.
아내는 낙담해서 멍하니 앉아있는 처칠에게 이런 말을 한다.
"하지만 그 마음의 갈등이 지금 당신을 이렇게 단련시킨 거에요.
당신은 불완전하기 때문에 강하고 확신이 없기 때문에 현명한 거에요."
(이 장면을 보면 위대한 인물 곁에는 그 인물을 위대하게 만들어 주는 '조력자'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실제로 윈스턴 처칠에 대한 전기나 관련 글을 보면 그의 아내와 가족이 처칠을 위해 엄청난 희생과 노력을 했다는 걸 알 수 있다)
이러저러한 결점에도 불구하고 처칠은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을 감당해낸다. <다키스트 아워>의 백미라 할 수 있는 의회 연설 장면에서 그는 그간의 고뇌를 바탕으로 역사에 길이 남을 연설을 한다. 그의 책 <제2차 세계대전>에서 나온 일부를 보자.
"설혹 유럽 대부분의 지역과 오랜 전통의 주요 국가들이 게슈타포의 손아귀에 이미 들어갔거나 들어가게 되어 나치 지배의 끔찍한 상황에 빠져들더라도, 우리는 결코 힘없이 주저앉거나 포기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끝까지 나아갑니다. 우리는 프랑스에서 싸울 것입니다. 우리는 자신감과 힘을 점점 키워 하늘에서 싸울 것입니다. 우리는 어떠한 대가를 치르는 한이 있더라도 이 섬을 지킬 것입니다. 우리는 해안에서 싸울 것입니다. 상륙 지점에서도 싸울 것입니다. 들판에서도, 거리에서도 그리고 언덕에서도 싸울 것입니다. 우리는 결코 물러서지 않을 것입니다."
영화의 끝에 처칠의 명언이 나온다.
"SUCCESS IS NOT FINAL, FAILURE IS NOT FATAL.
IT IS THE COURAGE TO CONTINUE THAT COUNTS."
영화에서는 "성공도 실패도 영원하지 않다. 중요한 건 굴복하지 않는 용기다." 로 번역된 이 문장은 처칠이 어떻게 그 많은 결점을 가지고도 존경받는 인물이 되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 된다. 처칠은 약점과 결점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지속해서 나아갔으며 그것들에 굴복하지 않았다.
아들러는 말했다. 인간을 성장시키는 것은 열등감이며 그 열등감을 극복하기 위한 인간의 노력을 통해 앞으로 나아간다고.
결점이 있다고 해서 절망할 필요는 없다. 그 결점이 앞으로 나아가고 성장할 수 있도록 하는 원동력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내가 결점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실제로는 '특별함'일 수 있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