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은 둥글다
1.
지금도 여전히 심장이 쿵쾅거린다.
도파민 과다로 발생한 두통이 점점 가라앉고 있지만 여전히 머리는 100만 볼트의 불빛이 반짝인다.
2.
나는 축구를 좋아한다.
박지성 선수 때문에 맨유를 좋아하게 됐지만 웃기게도 제대로 맨유 팬질을 시작한 건
맨유의 전성기가 끝나서였다.
래쉬포드가 유로파리그에서 멀티골을 박으며 팀을 위기에서 구해낼 때 쯤?
생각해보니 양극성 장애 발병과 비슷하게 겹친다.
(참, 그때 래쉬포드의 데뷔는 진짜... 난세 영웅 등장이었는데 왜 지금은ㅋㅋㅋㅋ......하....)
3.
퍼거슨 감독 이후로 맨유는 계속 하락중이다.
직접 보진 않았지만 맨유의 전성기를 익히 잘 알고 있는 사람으로써
너무나도 괴로운 시기가 지속되고 있다.
중간에 무느님(무리뉴) 때 2위, 유로파 리그 우승을 하며
반등하나? 싶었지만 응 아니야...
4.
아무튼 올 시즌은 내가 지금까지 본 맨유의 시즌 중 가장 최악이다.
당장 성적이... 14위......
아니다 오늘 비겨서 13위...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조금 과장해서 강등권 싸움중이다.
컵대회는 떨어졌고 유로파와 fa컵이 남았지만
솔직히 지금 스쿼드와 팀 상황으로 보면 희망적이진 않다.
감독은 중간에 바뀌었지, 비싸게 산 선수들은 몸값 1도 못하지...
(그립읍니다 퍼거슨 감독님...)
5.
아무튼 방금 전 끝난 맨유 경기의 상대는 리버풀
지금 프리미어리그의 패황이다.
감독 교체후 리버풀과의 노스웨스트 더비 다음으로 빡센 맨더비, 맨체스터 시티를 잡았던 건 좋았지.
근데 그 이후로 성적이...
그래서 질 거라고 생각했다.
6.
요즘 들어 축구를 보기 시작한 형이 경기에 대해 물어봤다.
"과연 오늘의 맨유는?ㅋㅋㅋ"
내가 답했다.
"과연은 무슨 과연임ㅋㅋㅋㅋ 보나마나 개처발리겠지 ㅋㅋㅋㅋ"
7.
보지말라고, 자기가 보고 알려주겠다는 형의 말에
보면서 욕할거라고 했다.
뭐랄까.
질 거 같으면서도 보는 거.
애증?
8.
축구는 어쩌면 내 삶에서 유일하게 내 감정을 지배하는(?) 존재다.
10년 동안 양극성 장애를 데리고 살면서
나는 내 감정의 상당부분을 잘라내야 했다.
되도록이면 무덤덤하게.
환경도 생활도 일정한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애썼다.
원래도 막 돌아다니는 걸 좋아하진 않았지만,
10년 동안 딱 한 번 여행을 갔다.
9.
그래서 내 삶은 매우 단조롭고 심심한 편이다.
가끔 스스로를 관조하다보면 이런 삶을 어떻게 버티고 사나 싶다.
근데 웃긴 건 스스로는 이게 나름 괜찮다고 느낌다는 거.
아주 재밌진 않지만 그럭저럭 굴러가는 느낌이랄까.
10.
그런 내 삶 속에서 유일하게 내가 열광하는,
화내고 욕하다가 환호하는 게 축구다.
특히 지금처럼 계속 안 좋던 상황에서 만난 리그 1위,
거기에 원수나 다름 없는 팀을 만나 2대2로 비긴 경기?
도파민 과다로 두통이 생기는 건 당연한 게 아닐까.
결과도 결과지만 경기 내용도 진짜 심장을 들었다 놨다 들었다 놨다-
경기 시작 전: 아 어차피 질 거니까 기대하지 말자.
경기 시작: 어? 어어? 아모른직다?
전반 종료: 아직 0:0? 이거 진짜 아모른직다!!!
선제골 : 어?어엄네ㅐㅂㅈ이걸 넣었다고?!!!
동점골: 아...** 결국 먹었네. 아니야 괜찮아. 버-
패널티킥 실점, 역전당함: 티긴 개뿔 또 지겠네 **
동점골: 우아ㅏㅇ지ㅐㅁㄴㅇ;ㅂ 도파민, 도파민이 나와!!!!
경기 종료: 삐빅- 도파민 과다로 두통이 생깁니다
11.
한때 진지하게 팀갈이를 고민했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결국은 그럴 수 없었다.
뭐랄까.
계속 지지부진한 팀이 꼭 나랑 비슷해서?
좋아지는 것 같다가도 귀신같이 나빠지는 양극성 장애랑 너무 닮았다.
한창 엉망인 내 삶이랑 묘하게 겹쳐보이는 맨유를 어떻게 버리겠어.
12.
아무튼,
악천후 속에서 최선을 다해준 선수들이 정말 고맙다.
글로리글로리 맨유나이티드!!!!!
으아아아아아아아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