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Hubris

241231

끄적끄적

by Argo

1.

그냥 생각났어, 정확하진 않지만, 기형도의 시가 말이야.

내가 한때 정말 좋아했던, 지금은 시를 읽지 않지만

그땐 정말 많이 읽고 필사했던 그 때, 내 마음에 콕 박혀버린 시가

왜 떠오른 건지는 모르겠어.


2.

내가 기억한 부분은

-어리석게도 기록할 것이 많았구나 였는데

대충 기형도의 시인 건 알았는데

처음에는 입속의 검은 잎이라고 생각했다가

질투는 나의 힘인 걸 알았을때의 느낌.

마치 골인 줄 알았는데 골대 옆 그물에 맞는 느낌이랄까.


3.

아무튼 시 전문을 쓰자니 그건 좀 그렇고

이 시를 내가 좋아했던 건 이 구절 때문이었어.

[나의 생은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

단 한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


4.

오늘은 유독 시를 떠올렸던 것 같아.

기형도의 시보다 더 먼저 떠올렸던 건,

보들레르의 <취하라>.

인생에 의미가 없고 행복이 환상에 불과하다면, 인간은,

인간이라는 종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에 대해 고민하던 순간이었지.

IMG_5940.JPEG 전문 찾다가 필사된 거 보고 나도 해보고 싶어서 갑자기 써봄. 근데 손이 굳어서 예전처럼 안써짐


5.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이라는 제목의 책이 있지.

여러 번 읽었고 인상 깊었던 책.

참을 수 없는 건 존재일까, 아니면 그 존재의 가벼움일까.

자신 만의 룰을 가지고 있던 남자,

섹스는 해도 함께 시간을 보내지 않는 원칙을 가지고 있던 그 사람이

어쩌다 보니 그걸 어기게 되고

그것이 사랑인지 아닌지도 모르면서 어디론가 끌려가듯

자신의 인생을 내던지게 되는 과정.

기억이 맞다면 프라하의 봄?이었나 그 사건과 연관이 있었던 거 같기도 하고.

역사와 개인의 교차점, 그리고 사랑이나 삶을 뛰어넘는,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하는 책이었던 거로 기억해.


6.

모든 생물은 생존을 위해 투쟁하고,

생물의 진화란 결국 종의 다양성을 유지 혹은 증대함으로써 생존하는 것을 의미한다-

요즘 진화에 대해 공부하다가 문득 든 생각.

종교적인 집안에서 엄격한 종교교육을 받고 인생에는 목적이 있다,

신이 각자에게 부여한 소명이 있다 이런 식의 말에 익숙해져 있다가

무신론자가 된 이후에 깨닫게 된 건 인생에는 의미가 없다.

그렇다면 왜 인간은 인생에 의미가 있다고,

혹은 인생에는 의미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걸까.


7.

어쩌면 나는 이 또한 종의 생존을 위한 인간만의 방식이 아닐까 싶어.

인간이라는 종, 현생 인류는 현재 존재하는 모든 종보다 뛰어나.

인간과 비슷하거나 맥락상 동일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 종은 여럿 있어.

하지만 인간같이 일정 문명을 이루고 역사를 기록하고 문화를 만들며

인간이라는, 자신 스스로에 대해 생각하는 종은 인류가 유일하지 않을까.


8.

인간은 본질적으로 경쟁, 투쟁하는 종이야.

왜냐고?

당장 내가, 그리고 네가 태어난 것 자체가 그 투쟁의 결과니까.

무수히 많은 정자 중에서 하나의 정자가 다른 경쟁자들을 이기고

하나의 난자와 수정해서 탄생한게 우리니까.


9.

어쩌면 우리는 태어남과 동시에 죽음을 향한 레이스를 하는게 아닐까 싶어.

극단적으로는 죽기 위해 산다고 해야할까.


10.

벌써 한해의 마지막 날이네.

작년에 이어 올해도 엄마가 한동안 입원했고

지금은 퇴원했지만 당분간은 또 간병 생활을 해야해.

두번째라 생각보다 막 감정적으로 힘들진 않더라.

이번에는 원래 가지고 있던 소아마비 장애로 인해 입원한 거라 그랬을지도?

그, 막연하게 이런 일로 입원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거든.

몇 년전부터 소아마비 장애 때문에 병원에 가는 일이 많아졌을때 예상했어.

집에 혼자 있으면서 아, 이렇게 하다가 보면 누군가의 죽음을 경험하고 혼자가 된다는 생각을 했어.

슬프다거나 그런 게 아니라 그냥 이게 자연스러운 거다 라는, 그런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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