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게 원죄라는 걸까
1.
지난 토요일 아침, 나는 정말 오랜만에 느껴보는 극도의 우울과 자살 충동에 휩싸였다.
왜 그런 건지 찾아내지 못했다면, 그리고 때마침 통화할 수 있었던 친구가 아니었다면 지금쯤 영안실에 있었을지도?
2.
알 수 없는 우울과 자살충동은 양극성 장애 특유의 것도 있지만 어떤 경우에는 가장 최근 사건이 배경일 때가 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내 인생에서 벌어진 최악의 사건, 바로 아빠라는 존재다.
3.
6년전 엄마와 아빠는 30년의 결혼 생활에 종지부를 찍었다.
사유는 가정폭력.
그동안 언어폭력과 경제적 파탄, 신체적 폭력(이건 나만 해당된다) 등으로 집안을 늘 시한폭탄으로 만들었던 그 사람.
종교적인 이유에서, 그리고 다른 몇몇 사유로 이혼을 참고 있던 엄마는 결혼 이후 처음 겪은 신체적인 폭력 덕분에(?) 미친 결혼 생활을 끝낼 수 있었다.
4.
이혼 과정에서 나는 아빠와의 인연을 끊었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무죄를 주장하는 문자를 보내는 인간과는 더 이상 상종하고 싶지 않았으니까.
물론 그때 사죄했더라도 결과는 같았을 것 같지만.
5.
인연을 끊은 뒤로 나는 그 사람에 대해 거의 잊고 지냈다.
엄마와 둘이 사는 게 너무 익숙하고 당연해서 처음부터 그 사람이 내 삶에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졌을 정도다.
6.
우리가 그렇게 이야기하고 도와줬음에도 건강보조식품을 때려 부으면서 스스로 악화시킨 고혈압과 당뇨병이 이제는 합병증까지 생겼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자업자득’이라며 고소하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아직도 이유없이 무차별적인 폭력 끝에 내쫓겼던 기억이 생생한데 당신이 행복하길 바라겠어.
이외에도 수시로 신체적 언어적 폭력에 고통받았던 걸 생각하면…
7.
하지만 내심 일말의 불안감은 있었다.
워낙 예상할 수 없는 사고를 치고 다녔던 사람이기에.
간단히 사례를 들어보자면,
-엄마가 시켰다며 사기치고 할아버지에게 수천만원을 대출받게 해서 다단계에 투자했다가 날렸던 일. 이로 인해 엄마는 친가 쪽 사람들과 엄청난 갈등을 겪어야 했다. 이혼할 때 즈음에서야 오해가 풀렸다.
-갑자기 집에 압류 관련 고지가 날라오고 이 사실을 숨긴 채 혼자서 기도원으로 도망감
-백만 원만 있으면 목사 안수 받을 수 있다고 돈 달라며 깽판친 일
-선교사 되겠다고 대뜸 제주도에 있는 C***으로 끌고 간 일
8.
특히나 인연을 끊은 나와 달리 아직까지도 아빠와 연락하고 있는 형이 너무나도 걱정됐다.
나만큼 당하지(?) 않아서 그런걸까.
9.
그리고 내 불안은 최근 현실이 됐다.
형과의 통화 속에서 아빠가 어느 지방에서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아무 생각 없는 형과 달리 나와 엄마는 뭔가 이상하다는 직감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 인간이 있는 곳에는 이전에도 연관되어 집안을 쑥대밭으로 만들어 버린 어느 종교(개신교에서 이단으로 지정)의 큰 시설이 있었다.
우리는 또다시 그 종교에 들어갔다는 것을 확신했다.
10.
누군가는 어떻게 확신할 수 있냐고 물을 것이다.
간단하다.
그 인간은 어디에 있다고 할 때 항상 무슨 일로 거기에 있다고 말한다.
다단계, 혹은 조경, 간병인, 운전 등등 명확한 목적을 이야기하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일반적이지 않은, 떳떳하지 않은, 특히 이단/사이비와 관련된 일은 말하지 않는다.
때문에 나와 엄마는 의심의 여지 없이 확언할 수 있다.
11.
이단 종파에 들어간 거 자체도 예전의 트라우마를 건드리는 일이기에 심리적인 충격이 있었지만 여기에 더해 친가 쪽 부동산 상속을 자신이 아니라 형 보고 하라며 설득한다는 말에 나와 엄마는 말 그대로 ‘꼭지’가 돌아버렸다.
전부터 다른 친척들한테 넘어가지 않게 조치하라고 그렇게 말할 때는 안 듣더니 할아버지가 자기한테는 절대로 못 준다고 하니 이제서야 형을 끌어들이는 작태에 기가 차다 못해 폭발한 것이다.
(사실 친척들이 각자 가져간 땅들과 지금의 집, 남은 땅 모두 사기를 당해 넘어갈 뻔 한 걸 엄마가 갖은 고생 끝에 찾아온 것이다. 물론 배은망덕한 친척들과 아빠는 그 사실을 무시하고 자기들 멋대로 난리 치고 있고.)
+내 몫의 땅 혹은 재산도 상당 부분 있지만 그 어떤 것도 안 받는다고 진작에 말했다. 받는 순간 내가 그토록 혐오하는 그 인간과 연결될 뿐만 아니라 상속 받았다는 이유로 친척들이 같잖은 의무를 부과하려고 달려들 게 뻔하니까. 아빠 만큼은 아니어도 친가 친척들에게 좋은 감정이 그다지 없기도 하고.
12.
어떻게 보면 이단 종파 문제나 땅 문제는 그리 큰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
실제로 단지 이 사건만 놓고 보면 그렇다.
이단 종파에서 뭘 하든 내 알 바가 아니고 땅 문제도 형이 알아서 할 문제라고 치면 된다.
12.
하지만 내가 극도의 우울과 자살 충동을 느낄 수 밖에 없었던 것은, 이혼을 해도, 인연을 끊어도 그 인간이 살아 있는 동안에는 내 삶에 영향을 미칠 거라는 걸 뼈저리게 느꼈기 때문이다.
우리는 전혀 모르고 있던 억대의 빚이 있다는 소식을 알게 된 지난날처럼 어떻게든 받아낸 재산을 늘 그랬듯 빚으로 변신시켜서 우리에게 가져올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그리고 그 곁에서 가장 큰 피해를 입을수도 있는 형에 대한 걱정.
13.
나는 진심으로 당신이 죽었으면 좋겠다.
지금까지 괴롭히고 고통스럽게 한 걸로도 부족해서 얼만큼 더 하려고 그러는 건지 모르겠다.
당신의 자식으로 태어난 게 원죄라면 원죄일까.
언제쯤이면 당신이라는 족쇄에서 해방될 수 있을까.
당신이 죽든 내가 죽든 둘 중에 하나만이 해방의 열쇠가 될 것 같아 절망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