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바른 자기이해와 자기 훈육에 대해
"그대의 목표가 고통을 피하고 괴로움에서 도망치는 것이라면,
나는 그대에게 높은 수준의 의식이나
영적 성장을 추구하라는 조언은 하지 않으련다."
- 스캇 펙, <아직도 가야할 길>
심리학 전공자이기도 하고 나를 이해하는 데에 관심이 많기 때문에 졸업 후에도 꾸준히 심리학 서적을 탐독하고 지속적인 상담을 통해 자기 이해를 위해 노력중이다. 최근 심리학의 대중화 덕분에 예전에는 전공자들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애착'이나 '방어기제' 같은 개념들을 들어보거나 아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심리학 자체가 워낙 흥미로운 학문이기도 하고 나처럼 자기 이해를 위해 심리학 서적을 읽는 사람들이 많다. 여기까지는 괜찮다. 책을 통해 자신을 이해하는 건 좋은 일이고 권장할 만하다.
하지만 종종 심리치료와 상담 장면에서도 나타나는 문제가 여기서도 나타난다. 그것은 바로 "나는 이런 과거가 있기 때문에 현재 이런 거야" 라며 깊은 자기연민에 빠지거나 "그렇기 때문에 너는 나를 이해하고 그냥 받아줘야 해"라며 주변 사람들에게 상처 입히는 것을 정당화하는 경우다.
문제가 생겼을 때 그것을 해결하는 방법은 먼저 원인을 알아내고 그에 맞는 해결책을 찾은 뒤 실행하는 것이다. 우리가 심리학 서적을 읽고 상담과 심리치료를 받는 이유는 심리적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과거를 탐색하고 어떻게 하면 더 나은 삶을 살 것인지 그 해결책을 모색한 다음, 실행에 옮겨서 정말로 내 삶을 '변화'시키기 위함이다.
하지만 어느 심리학자가 말했듯 인간의 정신에도 항상성이 있어서 익숙한 상태를 유지하려고 한다. 때문에 변화를 위해 상담실 문을 두드리고 책을 찾아 읽는 사람일지라도 더 나은 삶을 위한 변화에 저항한다. 머리에서 무언가 깨닫고 이해했다고 해서 끝난 것도 문제가 해결되는 것도 삶이 변화하는 것도 아니라는 거다.
이 문제에 대해 비교적 쉬운 어휘로 설명한 책이 바로 스캇 펙의 <아직도 가야할 길>이다. 스캇 펙은 우리에게 성장과 성숙을 위한 끊임없는 자기 훈육과 그 중요성에 대해 역설한다. 변화에 저항하는 인간의 마음은 쉽게 길들일 수 없어서 지속적인 훈련 없이는 불가능하다. 좋은 습관 하나 정착시키는데도 수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데 삶의 중심을 변화시키는 것은 얼마나 어렵겠는가.
스캇 펙은 이 어려움에 대해 분명히 이야기하고 있다.
"성장이란 미지의 것, 결정되지 않은 것, 불안하고, 불확실하고, 성역화되지 않고, 예상할 수 없는 세계로 두려운 발걸음을 내딛는 것이다. 그것은 많은 사람들이 평생 동안 절대로 실행해보지 못하는 도약이다."
어찌보면 거부감이 들수도 있는 말이지만, 실제로 그렇다. 상담을 하러 오는 많은 사람들이 처음 몇 회기 만에 포기한다. 자신의 내면을 드러내길 꺼리고 그 내면을 직시하는 것이 두렵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직시하기는 했으나 그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삶을 변화시키려는 실천을 하기 싫기 때문에 끝끝내 성장하지 못하고 정체되어 버린다. 내가 보기에 성장이 전제되어 있지 않은 과거 탐색과 자기 이해는 무의미하며 오히려 더 해롭다. 앞서 말했듯 지나친 자기연민이나 자신의 생각과 감정, 행동을 정당화하는 도구로 쓰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올바른 자기이해를 바탕으로 성장의 길을 걸으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스캇 펙은 그 방법으로 '자기 훈육'을 제시했는데 이것은 다음의 문장에서 확인할 수 있다.
"훈육은 괴로움을 견디게 해주는 테크닉이고, 문제가 주는 고통을 겪으면서 끝까지 성공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하는 도구다. 그 과정 중에서 우리는 배우고 성장한다. 우리가 스스로 훈육한다는 것은 고통을 겪고 성장하는 방법을 스스로 가르친다는 의미다."
상담의 종료를 앞두고 상담자가 내담자와 진행하는 과정이 바로 '자기 훈육'의 과정이다. 내담자의 삶에서 진정한 변화와 그로 인해 이전보다 더 풍요로운 삶을 살 수 있도록 실제적인 행동을 하게끔 하는 것이다. 이것에는 부정적인 사고를 바꾸고 자신의 감정의 표현하거나 이전에는 두려워 했던 일에 도전하는 등 여러가지가 있을 수 있다.
"삶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 말고는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없다"고 스캇 펙은 분명히 말한다. 또한 "문제를 해결하기 전, 우리는 먼저 문제에 대한 책임을 인정해야 한다. '그것은 내 문제가 아니야'라고 말하면서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이건 내 문제야. 그리고 그것을 해결하는 건 내게 달렸어.' 그렇게 인정할 때에만 우리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말한다. 우리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그 문제에 대한 책임을 인정하고 거기에 뛰어들 때만 해결할 수 있다. 부정하거나 회피해서는 결코 문제를 해결할 수 없고 자기연민이나 성장이 빠진 자기이해도 그렇다. 왜냐하면 "문제는 부딪쳐서 해결하지 않으면 그대로 남아 영혼의 성장과 발전에 영원히 장애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니 진정으로 자기를 이해하고 싶고 그 이해를 바탕으로 삶을 변화시키고 싶다면 다음과 같은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야 한다.
"삶은 문제의 연속이다. 우리는 이 문제들을 해결하고 싶은 걸까 아니면 그저 불평하고 싶은 걸까?"
혹시나 지금까지 자기 연민이나 현재를 정당화하는 상태에 있었다면 다음과 같은 말을 스스로에게 해주었으면 좋겠다.
'나는 이런 과거가 있어서 지금 이런거야. 하지만 나는 더 나은 삶을 위해 달라지겠어. 그러니 지금부터 성장을 위한 어떠한 댓가도 치르겠어.'
마지막으로 한마디 덧붙이자면, 모든 책이 그렇겠지만 특히 심리학 서적을 읽을 때는 스캇 펙의 이 말을 꼭 명심했으면 한다.
"현명하게 산다는 것은 생각과 행동이 일치하는 삶을 사는 것이다."
심리학은 인간의 마음과 그 작용에 대한 실제적이고 실천적인 학문이다. 만약 지식만 쌓이고 삶이 변하지 않는다면 그 괴리는 당신의 마음을 더 병들게 할 뿐이다. 만약 당신이 '애착'에 대한 책을 읽었다면, 자신의 애착을 돌아보고 혹시 그것이 삶의 문제를 일으키고 있을 때는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그저 애착이 무엇인지 '알고만' 있으면 당신의 지식은 죽은 지식이고 삶을 더 힘들게 할 뿐이다. 미로에서 빠져나갈 방법을 알고 있는데도 그저 빠져나갈 때의 힘듦을 겪기 싫어서 부정적인 결과가 예상되는데도 주저 앉아 있는 것만큼 미련한 일은 없다. 삶의 문제를 부정하거나 회피하면 당장의 고통은 피할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 문제는 지속적인 영향력을 행사해 당신의 삶을 고통으로 채울 것이다.
그러니 지식을 습득하는 것만큼이나 그 실천을 중요시 여겨라. 책의 모든 내용을 실천하기는 어렵겠지만 적어도 하나 이상은 반드시 실행하라. 처음에는 힘들고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모두 아기 때 걸음마를 배우기 위해 수 없이 넘어지고 또 넘어졌다. 넘어진다고 해서 성장을 위한 발걸음을 멈춰서는 안된다. 다시 일어나서 걷다보면 언젠가 성장한 자신을 마주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성장의 여정에서 언젠가 당신과 내가 만날 수 있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