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위한 '완벽'인가
완벽주의, 혹은 완벽주의자라는 말을 어떻게 정의하느냐는 각기 다르겠지만 나는 '모든 영역에서 조금도 흠이 없는 상태를 추구하는 것, 혹은 그런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대학생 때 나는 지독한 완벽주의자였다. 나는 내 삶의 모든 영역을 통제하고 싶었고 내가 있는 곳에서 최고가 되고 싶었고, 적어도 내가 생각하는 기준 - 물론 이 기준은 상당히 높았다 - 을 만족시키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10분 단위로 일정을 계획했고 만약 정해진 시간 내에 할 일을 다했을 경우를 대비해 또 다른 할일을 정해두는, 플랜 A 뿐만 아니라 플랜 B, 플랜 C 까지 가지고 있었다.
나름 실행할 능력도 있어서 성과도 상당히 있었다. 살인적인 일정 - 학교 수업, 알바, 운동, 독서, 학생회, 교회 임원, 기타 교회 일 2~3가지 등등 - 속에서 나는 맡은 일 뿐만 아니라 계획한 일들의 대부분 - 8~90% 정도 - 을 완수했고 유능한 사람으로 인정받았다. 그리고 시간 약속 또한 철저히 지켰는데 - 이것은 대인관계에서 좋은 인상을 남기는 것과 시간을 엄수할 때 보여지는 완벽함을 위한 행동이었다 - 5분 일찍이 아니라 최소 10분 이상 일찍 가야 마음이 편했다. 대학생 때 아파서 결석을 한 번 했어도 지각한 적은 없다.
종종 사람들은 내게 '인간미'가 없다고들 했다. 내게는 이 말이 칭찬으로 들렸다. 나에게 '인간미'란 실수, 부적격함, 결함과 동의어였고 나는 완벽한 인간이므로 그런 단어가 없다는 건 내가 탁월하다는 이야기니까.
만약 내가 정말로 완벽하고 탁월한 인간이었다면, 이 모든 일이 자연스럽게 흘러갔을 것이다. 힘들기는 커녕 오히려 즐거웠을거고, 따라서 나는 행복한 사람까지는 아니어도 최소한 즐거운 사람은 될 수 있어야 했다. 하지만, 내 삶은 전혀 그런 단어와는 상관이 없었다.
내 삶은 오로지 완벽함 그 자체를 위한 전력투구와 같았다. 나는 이 완벽함을 지키기 위해 많은 것을 희생했는데, 그 대표적인 것이 바로 건강이다. 완벽주의에 사로잡힌 기간 동안 나는 거의 매일 과민성 대장증후군과 두통으로 고통받았으며 아예 '타이레놀'이나 '펜잘'이 내 가방에 들어있었다. 주기적으로 체했고 늘 긴장하면서 살았다. 타인의 시선과 평가에 예민하게 반응했으며 '나는 누구인가' 보다 '내가 어떻게 보이는가'가 더 중요했다.
한마디로, 내 삶은 삶 자체가 아니라 '완벽함'이라는 이상을 실현하기 위한 도구였다.
앞서 말한 '인간미'에 대한 나의 정의를 바꿔말하면, 내게 '완벽함'이란 '인간으로서 가지는 결함과 부적격함, 실수가 없는 것'이다. 눈치가 빠른 사람이라면 알아차렸을텐데 '결함'과 '부적격함', '실수'라는 단어는 내 자아상, 즉 '정체성'과 깊은 관련이 있다.
제대로 다루지는 않았지만 나는 가정폭력의 생존자 - 예전에는 '희생자'라는 말을 주로 사용하곤 했는데 최근에는 보다 긍정적이고 발전적인 의미가 부여된 '생존자'라는 말는 추세다 - 다. 가정폭력의 주체는 주로 아버지였는데, 신체적 폭력은 물론이고 정서적 경제적 학대 또한 있었다. 어린 시절부터 나는 조그마한 실수에도 고성과 폭언, 폭력을 당해야 했다. 어머니는 비교적 정신적으로나 정서적으로나 건강했기 때문에 이런 아버지의 행동에 대해 항상 문제를 제기했고 그래서 우리 집은 늘 갈등이 끊이지 않았다(이제서야 이혼한 게 정말 기적이라면 기적이다).
자잘하게 당했던 폭력을 설명하자니 너무 많아서 넘어가고 기억에 남는 몇 가지를 써보면, 초등학교 5학년 무렵 친가에 다녀왔는데 짐을 내리러 빨리 오지 않았다고 각목으로 맞은 일이다. 왼쪽 골반 쪽을 한대 맞았는데 - 겨우 한대라고 할 수 있겠지만, 아버지가 학창 시절에 씨름과 유도 선수로 활약(?)했다는 걸 감안하면 일반적인 성인 남자의 힘은 아득히 뛰어넘는다는 걸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 그날 바로 피멍이 들었고 한 달 동안 절뚝거리며 걸어야 했다(당시에 내가 절뚝이는 걸 본 한 친구는 그 이유를 물었고, 나는 사실대로 말했다. 그때의 친구 얼굴은 매우 놀람과 공포로 가득했고, 그때 본 친구의 표정이 아직도 어렴풋이 기억난다).
다른 하나는 외출한 어머니를 가출로 오인한 아버지에 의해 차 안에서 무자비한 폭행을 당하고 내쫓긴 사건이다. 이 또한 초등학교 5학년 때 일어났던 사건인데 - 그 해에 무슨 마라도 꼈었나 보다 - 어머니가 간 곳으로 인도하라는 아버지의 재촉에 한 번 간 길을 필사적으로 생각해냈지만, 밤이어서 제대로 주변을 인식할 수 없었던 탓에 실패하고 말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거짓말 하는 자식은 필요없다"며 - 솔직히 이게 거짓말인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지만 - 조수석에 앉은 나를 오른손으로 머리 부분을 수십 차례 가격했다. 앞에서 밝혔듯, 운동선수 출신의 성인 남자의 힘은 아이가 감당하기에 벅차다. 나는 그저 "잘못했어요" - 도대체 내가 뭘 잘못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살기 위해서 그랬다 - 를 반복하며 악몽 같은 시간이 지나가길 바랬으나, 진짜는 그 다음이었다. "거짓말하는 자식은 필요없다"는 말이 진심이었는지 나는 집에 오자마자 그길로 가방하나 들고 내쫓겼다. 여름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그 당시 살았던 곳이 산골이라 약간 쌀쌀했다. 버스가 끊긴 - 시골은 상당히 빨리 끊긴다 - 버스정류장에 혼자 서서 울면서 외가에 가야겠다는 막연한 생각 - 돈도 없었으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아마 외가 생각이라도 안했으면 버티지 못했을 것이다 - 을 하던 중 다행히 동네에 친구를 만나러 갔던 형이 나를 발견하고 집으로 데려오면서 내 평생에 트라우마로 남은 하루 - 이 사건 이후로 나는 승용차에 잘 타지 못한다. 상태가 심했을 때는 아버지 차가 아닌 택시 뒷자석에 타도 가슴이 두근거리고 알 수 없는 불안감과 공포감에 사로잡혔다. 버스는 아무렇지도 않다 - 가 끝이 났다(형이 어떻게 아버지를 설득했는지는 아직도 미스테리다. 아버지는 형에게 약한 면모를 보였는데 그건 아마 형이 아기일 때 받게한 안수 - 기도원 원장이 한 짓으로 지금까지 흉터가 보기 싫게 남아 있다 - 자국과 잦은 병치레 때문일지도 모른다. 또는 자신이 장남이라 장남에게 약한 것이거나 내가 외가를 좋아하고 외가 사람들과 많이 닮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어머니도 인정하는 바 아버지는 내게 더 가혹했다. 내가 기억하는 한 - 유아기일 때는 그랬을 수도 있지만 - 형은 신체적인 폭력을 당하지 않았다).
이런 충격적 사건들은 내게 스스로가 어딘가 망가진 인간이라는 인식과 뿌리깊은 수치심을 안겨 주었다. 나는 내가 망가진 인간이라는 것을, 수치로 가득한 인간이라는 것을 감추고 싶었고 그러기 위해 '완벽함'이라는 가면을 썼다. 내가 완벽해지면 완벽해질수록 주변에서는 인정과 칭찬으로 보답했고 그때 비로소 '괜찮은' 사람이 된 듯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그런 느낌이 들때면 공허하고 우울해졌는데, 그건 사람들이 보는 '괜찮은' 사람의 내 모습이 실제로 그런게 아니라 그저 '가면'이라는 걸 은연중에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항상 사람들과 일정 거리를 두고 싶어했는데 그건 사람들이 내 본모습을 알면, 그러니까 망가지고 수치심에 몸부림치는 나를 본다면 떠나갈 것이라는 두려움이 있어서였다.
그러다 간혹 아니 아르노가 그녀의 소설 <부끄러움>에 쓴 것처럼(1) 내가 경험한 사건들을 조금 이야기하고 속내를 털어놓으면 대게 놀라면서 상상할 수 없다는 표정과 말로 반응했다. 내 겉모습 - 자신감 넘치고 유능하며 밝아보이는 - 을 보면 절대로 그런 경험이 있다는 게 믿기 힘들다는 것이었다. 이런 경험을 몇 차례하면서 나는 내 모습을 더 감추려고 애썼다. 나는 내 행동이 나 자신을 희생시키는, '자기파괴적인 모습'이 있다는 걸 알면서도 끊임없이 나를 밀어붙였다. 내 이미지를 위한 행동이, 나를 위한 행동이 오히려 나 자신을 더 고통스럽게 하는 악순환에 빠져든 것이다.
모든 완벽주의자가 나와 비슷한 경험을 하고 비슷한 이유로 그런 건 아닐 것이다(사람들이 가끔 혼동하는데, 완벽주의와 프로페셔널리즘과는 다르다. 나는 완벽주의를 자신의 '완벽한 자아상'을 지키기 위한 모든 영역에서의 강박적 행동으로 정의한다. 반면에 프로페셔널리즘은 대체로 '직업적인' 영역에 한정된다. 사전에서도 "자기의 직업과 그 기능, 전문 지식에 강한 자부심과 탐구심을 가지며, 사회적 책임을 자각하는 일" 로 정의하고 있다.) 하지만 나 뿐만 아니라 여러 완벽주의자의 모습 속에서 나는 비슷한 심리적 문제를 발견한다. 인정 중독이라든지, 충족되지 못한 사랑이라든지, 어떠한 결핍에 의한 공허감을 채우기 위해 강박적으로 '완벽'을 추구한다. 이 때의 완벽이란 사소한 실수도 용납하지 않으며 자기에게만 엄격한 사람이 있는가하는 반면에 타인에게도 그런 완벽을 요구해 갈등을 일으키는 사람도 있다. 직업적으로, 그리고 사회적으로는 '유능한 인간'이라고 칭찬 받을 수는 있으나 개인적인 삶과 주변의 친밀한 인관관계에서는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다.
지금의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이런 글을 쓴다는 것 자체가 내 완벽주의에서 상당 부분 벗어났음을 암시한다. 나는 내 완벽주의의 시작이 어디였는지 알고 있고 이 완벽주의가 더 이상 나를 자유롭게 하지 못한다는 것도 안다. 그리고 나는 내가 완벽하지 않아도 충분히 유능하며 사랑스럽고 사랑받을만한 존재임을 자각하고 있다. 때문에 나는 더 이상 나를 포장하지 않는다. 부족하면 부족한 모습을 인정하고 기꺼이 주변인에게 드러낸다. 내가 할 수 없는 일에 대해서는 다른 사람의 도움도 받는다(이전에는 어떻게든 나 혼자서 다 해결하려고 했다. 도움을 받는 다는 건 완벽하지 않다는 거니까). 실수에 관대해졌고 삶의 여유를 되찾았다. 타인의 시선과 판단에서 아주 자유롭지는 못해도 이전처럼 내 존재의 판단 기준이 되지는 않는다.
이런 모습은 하루 아침에 일어난 게 아니다. 다년 간의 상담과 심리치료, 그리고 나 스스로 '자기분석'을 꾸준히 해왔기 때문에 얻은 결과다(내가 심리학과에 진학한 이유 중 하나가 나 자신을 치유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나 자신을 이해하고 거기에 더해 아버지를 이해하고 싶었다. 물론 이 문제는 아직 난제로 남아있다). 내 상처와 수치심에 대해 이야기하고 거의 매일 일기를 포함한 글을 쓰고 예술을 통해 내가 경험한 고통스런 기억들과 마주했다. 그런 시간들을 통해 나를 이해하고 과거의 사건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으며 '지금의 나'의 모습 중 부정적인 부분을 개선하기 위해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노력을 했다.
스스로 완벽주의자임을 자각하고 주변에서 그렇다는 인정을 받는데 삶이 불행하다고 느낀다면, 공허함과 우울을 비롯해 각종 신체적인 질병 - 주로 심인성 질환들 - 을 겪고 있다면 한번쯤은 내가 추구하는 '완벽'이 무엇을 위한 것인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이 '완벽'이 어디로부터 왔고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지, 이것이 과연 내 삶을 풍요롭게하고 온전한 한 인간으로서 사는 데 도움이 되는지 고민해야 한다는 말이다.
(1) <훗날 몇몇 사람에게 나는 "내가 열두 살 무렵 아버지가 어머니를 살해하려 했었어요." 라고 말한 적이 있다. 내가 누군가에게 이 말을 털어놓고 싶다는 것은 그 사람에게 깊이 빠져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사람들은 이 말을 듣고는 모두 입을 굳게 다물었다. 나는 내가 실수를 한 것이고, 그들은 이런 것들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