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무엇을', '어떻게'
언젠가부터 '힐링'이라는 말이 등장하더니 하나의 유행처럼 번져나가기 시작했다. 일각에서는 '힐링 산업'이라고 명명할만큼 '힐링'이 사회 전반에 퍼져있고, 인스타그램을 비롯한 여러 SNS에서는 '힐링'이라는 해시태그를 단 게시물을 쉽게 볼 수 있다.
힐링의 사전적 정의(옥스포드 사전)는 "(몸이나 마음의) 치유[치료]"다. 모종의 이유로 다치거나 피로한 몸과 마음을 치유하는 것인데, 우리가 흔히 쓰는 '힐링'의 의미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렇다면, 나는 왜 이 단어가 불편한 걸까?
내가 관찰한 바에 의하면 - SNS와 요즘 인기를 끌고 있는 에세이, 대중심리학 등의 힐링 서적 등 - 지친 일과나 여러가지 일로 받은 스트레스를 휴식을 비롯한 각종 행위를 통해 푸는 과정을 '힐링'이라고 한다. 그런데 내가 볼때 과연 그 일이 '힐링'이라는 말을 붙여야 할 정도인가 라는 의구심이 들 때가 있다. 도대체 '왜' 힐링을 해야하는지에 대한 질문과 이유가 빠져있다는 것이다.
어떤 문제를 해결할 때, 혹은 어떤 연구를 시작할 때 먼저 제기되는 것이 '왜'라는 물음이다. 이 문제는 왜 발생했고, 이 연구는 왜 시작했고... 힐링이 치유의 과정이라면 그 치유가 필요한 이유가 분명해야 하는데 그런 부분을 탐색하는 시간이 없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그저 느낌적으로 '힐링'이 필요해, 정도라고 본다면 너무 과한걸까.
어떤 질병을 치료할 때 그 원인이 무엇인지 알아야 근본적인 치료가 가능하다. 같은 기침이라도 그 원인이 어디에 있느냐에 따라 치료법이 달라진다. 내가 겪고 있는 양극성 장애만 하더라도 사람마다 증상이 각기 다르기 때문에 각자 다른 약물을 쓰고 그 용량도 다르다. 만약 치유가 필요할 정도의 문제를 겪었고 그에 따른 대처가 필요하다면 그 문제가 무엇인지 분명히 알고 거기에 맞는 치료법을 찾아서 실행해야 한다.
하지만 내 생각에 요즘의 '힐링'은 그저 무언가 먹고 마시고 어디론가 놀러가는, 일시적인 '기분전환'에 그친다는 한계가 있다. 물론, '기분전환'이 나쁘다는 게 아니다. 여행이나 식도락을 통해 부정적인 기분을 긍정적인 기분으로 변화시키는 것은 중요하고 또 필요하다. 그러나 그것이 '힐링'이라고 말할 만큼 과연 큰 문제인가라는 의문은 여전히 남는다. 이 단어를 붙이기에는 단어의 무게가 그리 가볍지 않다.
그러니 '힐링'이라고 말하기 전에 '과연 내가 왜 힐링해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져보는 게 좋겠다. 어떤 상황, 어떤 문제가 나로 하여금 힐링이라는 단어를 꺼내게 만들었는지 살펴봐야 한다는 거다.
'왜'라는 질문 다음에는 '무엇을' 힐링할 것인지 정해야 한다. 예를 들어 '내가 요즘 직장 생활하면서 스트레스도 많이 받고 야근하느라 잠도 제대로 못잤어. 그래서 힐링이 필요해'라고 결론을 내렸다면, 여기에는 '스트레스'라는 심리적인 부분과 '잠'이라는 육체적인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직장 생활에서 받은 스트레스가 무엇인지 살펴보고 그것에 맞는 해결책을 선택하고 실행하거나 육체적인 휴식을 취해줌으로써 당면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만약 정신적인 스트레스 때문에 힐링이 필요한데 그저 먹는 것이나 자는 것 만으로 - 물론 이 두가지 모두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완화시켜주는 역할을 하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다 - 해결하려고 하면 되지도 않을 뿐더러 오히려 상황을 악화시킬 수 있다. 나름 힐링이라고 뭔가 하긴 했는데 뒤돌아서면 공허하고 더 막막한 느낌이 드는 이유 중 하나가 이런 경우다. '무엇을'에 대한 정의가 명확하지 않기 때문에 제대로 된 치료법을 사용하지 못했고 그래서 문제는 해결되지 않은 채 남아 지속적으로 악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어떻게'는, 어떤 이유에서 발생한 문제에 대해 그 문제의 어느 부분(무엇)을 해결하려고 할 때 무슨 방법을 쓸 것인가에 해당한다. 대다수의 문제에는 하나의 해결책이 있지 않다. 가지고 있는 자원 - 시간, 돈, 주변 환경, 조력자 등 - 이나 원인의 다양성 등 여러 요인에 의해 다양한 해결책이 있는 경우가 많으며 선택에 따라 결과도 다르다.
앞에서 다룬 '내가 요즘 직장 생활하면서 스트레스도 많이 받고 야근하느라 잠도 제대로 못잤어. 그래서 힐링이 필요해' 라는 예에 적용해보면, '스트레스'가 업무적인 건지, 아니면 대인관계에 대한 건지 구분하여 각각에 맞는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업무적인 부분 중에 능력 부족으로 인한 것인지 아니면 적성에 맞지 않아서 그런건지 등등 여러 이유가 있을 것이다. 능력 부족이라면 계발해야 하고, 적성에 맞지 않는다면 다른 업무를 하거나 직종 변경 - 이게 쉽지 않겠지만 - 을 고려해야 한다.
대인관계라면 문제가 생기는 원인이 구조적인 문제인지 혹은 각 개인의 문제 - 성격 차이나 기타 여러 심리적 문제 등 - 인지 파악해서 구조의 문제라면 구조의 변화를 위해 노력하거나 개인의 문제라면 개인 수준에서의 변화를 추구해야 한다. '왜', '무엇을' 힐링할 것인지 찾는 것도 쉽지 않지만 '어떻게' 힐링할 것인지를 찾는 과정도 만만치 않게 힘들다(어쩌면 이게 제일 힘들지도 모른다).
삶의 여정 가운데서 그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주저 앉았을 때 위로와 기분전환이 필요한 건 사실이다. 그런 시간은 다음 발걸음을 위한 충전의 순간이다. 하지만 그저 위로와 기분전환을 위한 힐링은 갈증이 날 때 마시는 탄산음료와 같다. 마실 때는 기분이 상쾌해지고 시원하지만 조금 있으면 더한 갈증을 느끼게 되는 상황에 처한다. 힐링 또한 제대로 하지 않으면 다람쥐가 쳇바퀴 돌리듯 해결되지 않은 문제로 인해 고통받고 그 고통을 위해 힐링하는 과정을 반복할 뿐이다.
어느 유대인 랍비는 스트레스 상황은 곧 변화해야 한다는 신호라고 이야기 했다. 스트레스를 받는 다는 건 무언가가 불편하고 괴로움을 준다는 말이고 그것은 어떤 방식으로든 변화하고 변화를 주어야 한다는 뜻이다. 발에 맞지 않는 신발을 신고서 계속 아프다고만 하거나 잠깐 벗고 있다가 다시 신는다면 지속적인 고통을 피할 수 없다. 해결책은 신발을 벗고 맨발로 다니든지, 아니면 발에 맞는 신발로 갈아 신는 것이다.
이처럼 힐링이 진정한 의미의 '힐링'이 되려면 나에게 지금 '왜' 힐링이 필요한지 그래서 '무엇을' 힐링할 것인지, 그리고 '어떻게' 힐링할 것인지 살펴보고 실천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