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게 작가를 좋아하게 되는 경로는 그의 소설을 읽었을 때다. 헤밍웨이는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를 통해서, 헤르만 헤세는 <데미안>으로, 나쓰메 소세키는 <마음>을 읽고 깊이 매료됐다. 다른 사람들도 비슷할 거라 본다.
그런데 내게 소설을 읽지 않고 마음을 줘버린(?) 작가가 한 명 있으니 그 작가의 이름은 '커트 보니것' 되시겠다. <나라 없는 사람>, <그래, 이 맛에 사는 거지>라는 일종의 산문집 - 전자의 경우 보니것의 회고록이고 후자는 그의 연설을 모아둔 책이다 - 을 읽고 첫 눈에 반했다.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제 5도살장>이 책장에 꽂혀 있긴 하지만 아직 첫 페이지도 넘기지 않았기에 이런 경우는 처음이다.
예전부터 간간이 '보니것'이라는 이름은 들어왔다. 유명 작가임을 얼핏 알고 있었으나 제대로 아는 건 아니었고 '언젠가 읽겠지만, 적어도 지금은 아니야' 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다 우연히 <나라 없는 사람>이라는 제목의 책을 보게 되었고 마침 저자가 보니것이기에 냉큼 질렀다. 사자마자 그날 다 읽었는데 보니것의 글과 거기에 담긴 생각, 감정에 깊이 공감하게 되었다. 제목에 끌렸고, 내용에 빠졌고, 작가에게 사로잡힌 것이다. 무엇이 나를 매혹시켰던 걸까?
요 며칠 동안 감기 기운이 다시 왕성해졌다. 추석 전에 인후염으로 고생했다가 좀 나아졌는데, 날씨가 추워지고 켠디션 조절에 실패했던 것도 있고 결정적으로는 어제 다녀온 부천 때문에 그랬다.
부천은 내가 태어난 곳이다. 거기서 외가와 함께 - 2층 단독 주택 중 1층은 우리 가족이, 2층은 할머니, 할아버지, 외삼촌이 살았다 - 약 10년간 살았다. 고향을 태어난 곳이라고 정의한다면 나에게 부천이 고향이겠지만 내게는 고향이 주는 포근함이나 애틋함, 애수가 없다. 정지용의 <향수>라는 시에서 등장하는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라는 시구에서 느껴지는 그리움이나 백석의 <고향>에 나오는 의원이 주는 따듯함이 없다는 거다.
15번이 넘는 이사를 다니면서 부천에서 10년, 제주도에서 1년, 논산 산골짜기에서 6년, 대전에서 12년을 살았다. 도시와 섬, 산골을 넘나들면서 내가 자연스럽게 터득한 건 '체념'과 '포기'였다. 정든 곳을 떠나면서 이별을 받아들이며 '체념'을 배웠고 잦은 이별을 토대로 인간관계를 비롯해 내가 가질 수 없는 것을 '포기'하는 법을 알게 되었다.
내 생애에서 가장 행복했던 시간을 보냈던 부천 - 경제적으로나 정서적으로나 무엇을 봐도 부족한 게 없었다. 조부모님은 나를 정말 많이 사랑해주셨고 친구들도 많았다 - 을 떠나 제주도에 갔을 때 나는 매일 울면서 일기를 썼다. 낯선 곳이 주는 낯섦과 외지인(뭍사람, 육지 사람 등으로도 불렸다)이기에 보이지 않는 벽들, 아빠의 폭력 - 부천에서도 있었긴 했지만 그때보다 더 심해졌다 - 이 나를 힘들게 했을 뿐만 아니라 제일 참기 힘들었던 것은 조부모님과의 이별이었다. 바쁜 부모님을 대신해 나를 키워주신 조부모님은 그때나 지금이나 부모님 보다 더 부모님 같았고 나는 그 상실감이 쉽게 채워지지 않아 고통스러워 했다. 그래서 학교 가기 전에 공중전화를 붙들고 매일 아침 문안 인사를 드렸다. 이것이 내가 처음 경험했던 이별이었고 내가 해쳐나가야 할 고난의 전주곡이었다.
아빠의 헛된 야망 - 선교사가 되겠다는, 허망하고 현실성 제로의 꿈 - 에 제주도에서 논산으로 이사했을 때 나는 감옥에 갇힌 것 같았다. 1년간 섬이긴 해도 학교에서 바다가 보일 정도로 탁 트인 환경에 있다가 높은 산들로 둘러 쌓인 곳에서 살게 되니 창살 없는 감옥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따듯한 제주도에서 살다가 맞이한 산골의 겨울은 뼈가 시리다 못해 마음까지 꽁꽁 얼려버렸다. 아빠의 폭력은 점점 더 심해졌고 나는 자주 바뀌는 집과 적대적인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감정을 마음의 벽장 속에 숨겨버렸다. 그리고 점차 주위에 대한 관심을 끄기 시작했다. 주변 사람들에게, 그리고 주위 사물들에게.
언제 이별할지 모르는 사람들에게 마음을 주고 관계를 맺는 것은 무의미할 뿐만 아니라 위험하기까지 했다. 그들과의 이별은 가슴 아프다 못해 견디지 못할 슬픔이니까. 사물에 애착을 갖는 것도 그렇다. 다음에 이사갈 장소가 어떨지 모르고 이삿짐을 싸려면 최대한 짐을 줄여야하니까 버릴 때 쉽게 버리려면 애착을 갖지 않는 게 좋다.
이렇게 이사하는 횟수가 늘어나고 사는 지역이 바뀌면서 나는 점차 '고향'에 대한 기억과 감정이 희미해짐을 느꼈다. 과거를 추억하는 일은 희망을 주기도 하지만 때로는 큰 슬픔의 이유가 되기도 한다. 과거에 대한 향수가 현재의 비참함을 더 가중시키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대전에서 산 날들이 부천에서 살았던 시간을 넘어서면서부터 부천은 단지 내가 태어난 곳, '출생지'의 의미 이외에는 감흥을 줄 수 없었다. 그나마 정기적으로 가는 이유는 외가가 있기 때문이고, 조부모님이 돌아가신다면 아마 그 발길마저 끊길 것이다.
어제 부천을 다녀오면서 이 생각들은 더욱 공고해졌다. 어린시절 내가 초등학교에 가기 위해 건넜던 횡단보도를 지나가면서도 회상에 잠긴다거나 싱숭생숭한 마음이 들지 않았다. 오히려 고향보다 더 고향 같은 대전에 빨리 가서 쉬고 싶은, 안정감을 느끼고 싶은 생각으로 가득했다. 내게 더 이상 부천은 마음의 안식처가 아니었고 거기서 나는 고향이 아닌 타향에 방문한 느낌을 받았다.
고향의 상실과 잦은 이사로 인한 많은 이별 경험이 쌓이면서 나는 인간 관계에 무심하고 쉽게 마음을 주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 또 다시 마음을 다치고 싶지 않아 사람들과 거리를 두었다. 그리고 예전에 경험했던 배신들을 토대로 마음의 문을 열어도 되는 사람인지 관찰하고 테스트한다. 이런 태도는 비단 사람만이 아니라 사상에도 적용되었다.
어떤 사상에 관심이 생기고 좋아하게 되더라도 끊임없이 질문을 던진다. 믿을 만한 사람인지 시험하는 것처럼 사상도 그런 시험을 하는 거다. 이런 과정을 지속하다보니 회의주의자가 되는 건 금방이었다. 마음을 주지 않고 객관적으로 보려고 하면 그 사상의 결점이나 동의할 수 없는 지점이 늘 발견되었고 그래서 곧 다른 사상에 - 대체로 직전에 관심을 가졌던 사상과 반대되는 사상 - 관심을 기울인다. 어느 한 사상에 정착하면 안정감 - 그 사상을 수용하면서 사고를 단순화시키는데서 얻는 - 과 동질감 - 그 사상을 따르는 사람들과의 유대감 - 을 얻을 수 있겠지만 애당초 인간관계에 대해 회의적인 내게 안정감이나 동질감은 큰 매력이 아니었기에 회의주의자가 되는 건 어쩌면 필연이었을지도. 고향이 단지 출생지의 의미에 그친 다는 것이 내게 이런 영향을 준 것이다.
<나라 없는 사람>. 왜 하필 보니것은 이렇게 제목을 지었을까? 보니것은 제2차 세계대전 때 포로 생활을 하던 중 연합국의 폭격으로 13만명의 민간인이 사망하는 장면을 목격한다. 그 후 그는 대표적인 미국의 반전작가가 되었고 이 책에는 자기가 태어난 나라인 '미국'에 대한 가차없는 비판이 적나라하게 담겨있다. 보니것이 만약 자신이 '미국'이라는 나라에 '속해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면 그런 비판은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책의 제목은 보니것 스스로를 이르는 말이자 넓게 해석하면 작가(혹은 예술가)는 무언가에 얽매이지 않아야 한다는 뜻으로 볼 수 있다. 마치 보니것이 미국인이면서도 자국에 대해 비판적이었던 것처럼(책을 읽다보면 꼭 반미 시위대에서 할 법한 말들도 있다).
내가 책 제목에 끌린 것은 내게 진정한 의미의 고향이 없고 따라서 사람뿐만 아니라 사상에 대해서도 비교적 얽매이지 않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고향이 있다면, 그리고 소속감을 느낀다면 고향과 관련된 무언가에 대해서도 그럴 것이며 이런 과정은 다른 사물, 사람에도 그리고 사고 과정에서도 반복될 가능성이 높다. 어딘가에 소속감을 느끼면 안정감을 얻을 수 있지만 반면에 그 틀안에서 머무르게 될 수 있다. 보니것이 13만명의 사람이 순식간에 소멸하는 경험을 통해 반전작가가, 그리고 '나라 없는 사람'이 되었듯, 나 또한 이사라는 경험을 통해 소속하지 않는 사람, '고향 없는 사람'이 되었다.
고향이 없다는 인식은 내게 소속감의 부재를 가져다 주었지만 반대로 지금 내가 사는 곳에 쉽게 적응하고 거기에 안정감을 부여할 수 있게 해주었다. 고향은 없지만 어디든지 고향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가끔 다른 사람들이 어딘가에 소속되고 거기에 소속된 사람들과 동질감을 느끼는 것이 부러울 때도 있다. 하지만 지금처럼 어느 것에도 얽매이지 않고 사는 것도 좋다.
+감기약에 해롱해롱거리면서 글을 쓰다보니 내가 글을 쓰는 건지, 글이 나를 쓰는 건지 하나도 모르겠다ㅠㅠ
나중에 수정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