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위와 사랑의 관계에 대하여
"내 그대를 생각함은 항상 그대가 앉아 있는 배경에서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일 것이나 언젠가 그대가 한없이 괴로움 속을 헤매일 때에 오랫동안 전해 오던 그 사소함으로 그대를 불러 보리라."
내가 사랑하고 즐겨 읽는 시 중 하나인 <즐거운 편지>의 일부분이다(이 시는 황동규 시인의 작품인데, 아버님이 무려!!! 황순원 작가님이시다. 내가 한국 소설 중에서 제일로 꼽는 <소나기> 쓰는 그 황순원 작가님!).
아날로그 감성으로 가득한 나는 만년필과 연필을 좋아할 뿐만 아니라 편지 쓰기를 무척이나 선호한다. 왜냐하면 편지에는 그 사람을 "생각함"이 필요하고 이 "사소함"이 즐거운 기억을 되살려주고 "괴로움"에서 벗어나게 해주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편지를 쓰는 행동은 대상에 대한 깊은 사유를 전제로 하기 때문에 대상을 제대로 알고 있지 않으면, 대상에 대한 마음이 어느 정도 무르익지 않으면 쓰기 힘들다. 즉, 관계의 정도가 그대로 편지에 반영된다.
또한 편지를 쓰면서 그 사람과의 기억을 곱씹고 하고 싶은 말을 다듬고 손으로 정성스럽게 써 내려가다보면 여러 기억과 상념, 감정이 어우어져 애정이 더욱 깊어진다. 특히 손으로 쓰는 편지는 메일이나 카톡에 비해 신체적인 에너지 소모가 크다. 손으로 쓰기 때문에 느리고 느린 만큼 생각도 깊어진다. 몸과 마음을 다해 쓰기 때문에 그래서 더욱 정성을 담게 되고 내가 누군가를 위해 희생 - 혹은 헌신 - 한다는 느낌이 다른 수단에 비해 더 강하게 든다.
보통 우리는 마음이 깊어져서 행동으로 표현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때로는 그 행동 자체가 마음을 더 깊게 한다. 편지를 쓰는 행동 뿐만 아니라 상대방이 좋아하는 일을 하고 도움을 주고 애정어린 말과 표현이 담긴 그 모든 행동이 사랑의 표현이자 사랑을 깊게 하는 역할을 한다. 사랑이 표현으로 완성되듯 표현은 사랑을 더 깊게 만드는 것이다(사랑이란 감정은 모호해서 사랑을 받는 사람이 사랑을 느끼는 건 행위로 직접 표현될 때만 가능하다. 행동으로 표현되지 않은 사랑은 사랑이 아니라고 단언한다. 물론, 서로 생각하는 사랑과 선호하는 사랑의 표현 방식이 달라서 그 불일치 때문에 갈등이 생기기도 한다. 이런 경우에는 게리 채프먼의 <5가지 사랑의 언어>가 도움을 줄 수 있다).
내게는 소중한 물건들이 많이 있지만 그 중에서 가장 소중한 건 어릴 때부터 받았던 편지들이다. 작은 박스 두 개를 가득 채운 편지들은 나와 누군가와의 관계의 산물이자 그 사람과의 추억을 상기시키는 역할을 한다. 여기에는 엄마의 애정이 담긴 편지들 - 엄마는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편지를 자주 써주곤 한다. 아마도 엄마 덕분에 편지 쓰기를 좋아하게 된 거 같다 -, 무뚝뚝한 할아버지의 사랑이 묻어나오는 편지, 내가 가장 신뢰하고 사랑하는 친구가 보내준 편지들, 그리고 그 밖에 나와 시간을 함께 했던 사람들의 편지가 있다(아, 그리고 초등학교 1학년 때 민경이란 여자애가 보낸 편지도 있다. 지금 생각해보면 우정 이상의 그 무언가가 있었던 거 같기도?).
가끔씩 그 편지들을 읽으면서, 그러지 않더라도 그냥 편지 상자를 보는 것만으로도 '나에게는 내가 존재했었던 시간들이 있고 나와 함께한 사람들이 있다'는 생각이 들고 이내 마음이 따듯해진다. 과거에 내가 존재했었음을, 그리고 현재에 내가 존재한다는 것을 확인하는 물건이 편지다.
지금은 예전에 비해 - 내가 초등학생일 때 삐삐가 있었고 고등학생 때 핸드폰을 쓰기 시작했으니 그 전에는 편지를 많이 쓸 수 밖에 없었다 - 적게 쓰지만 여전히 내 마음을 전달하기 위해 편지를 쓴다. 내가 쓴 편지가 그 사람이 "한없이 괴로움 속을 헤매일 때" 도움이 되길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