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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arO May 07. 2022

아빠의 승진

hearO에게 전하는 세번째 편지 _소방관 '아버지' 이야기  


아빠가 승진했어요.      

아빠는 전라북도에 있는 세 개의 면을 관장하는 안전센터의 센터장이 되었어요.
20여 년을 근무한 아빠 또래 직원들에게는 당연한 일일 수도 있지만, 아빠의 승진은 제게 특별했습니다.      


3 , 갑자기 아빠는 내근직 발령을 받았어요.
화재감식 자격증을 취득해서 화재조사관으로 일하게 되었습니다. 기억  아빠는 항상 3교대 근무로 비교적 자유롭게 시간을 썼습니다. 초등학생 시절 학교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면, 아빠는 항상 컴퓨터를 하거나 소파에 누워서 TV 보고 계셨어요. 심지어 고등학생 때는 평일 낮에 학부모 상담에 오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아빠가 갑자기 내근직에 지원한다니, 아침 일찍 일어나 매일 출근하는 아빠의 모습이  그려지지 않았어요.

     

걱정과는 다르게 아빠는 성공적으로 직장인의 삶에 적응한 것 같았어요. 
매일 아침 출근해서 퇴근해서 가족들과 함께 둘러앉아 시간을 보내는, 평범한 일상이었죠. 당시 대학생이었던 저는 방학 때 고향 집으로 내려가 며칠을 지내곤 했어요. 여느 대학생이 그렇듯 휴대폰을 하다가 밤을 지새우기 일쑤였는데, 해가 다 뜨기 전에 거실에서 인기척이 들렸습니다. 아빠였어요. 그땐 아빠가 그저 일찍 일어난 줄로만 알았지만, 시간이 흐르고 난 뒤에야 아빠가 불면증을 앓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매일 저녁 소주 한 병을 너끈히 비워내고 해가 뜨기도 전에 일어나는 게 불면증이 아니면 뭐겠어요.
     

시간이 흘러 취업준비생이 되었어요. 저는 공기업에 가기 위해 컴퓨터활용능력시험, 한국사능력시험, 한국어능력시험 같은 자격증을 공부했습니다. 아빠가 화재조사관으로 일한 지 1년이 조금 넘었던 때였어요. 어느 날, 아빠가 저보다 먼저 컴퓨터활용능력을 취득했습니다. 컴활을 시작으로 아빠는 승진에 도움이 된다며 차례차례 여러 자격증을 따기 시작했어요.

  
저는 아빠가 대체 언제 잠을 자는지 궁금했어요.
매일 저녁 만취할 만큼의 소주를 마시고, 새벽에 일어나서 공부하는 아빠가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어요.  

    

그런 아빠의 취미는 농사랍니다. 전문 농사꾼은 아니지만, 이것저것 도전을 시도해요.

복분자, 단호박, 매실, 블루베리가 아빠의 선택을 받았어요.

  
품 안에 한 아름 수확을 거둬들일 만큼 성공한 농사꾼은 아닌 것 같지만, 가장 최근에 가꾼 블루베리밭은 꽤 잘 되었어요. 처음 몇 년간은 가족, 지인들과 나누어 먹을 정도였지만, 해가 갈수록 풍년이 들었어요. 


거기에는 아빠의 땀과 노력이 구 할이었습니다. 거의 매일 출근하기 전, 밭에 나가 가지치기를 하거나 거름을 주었습니다. 물론 퇴근 후에는 소주의 힘을 빌려 고단한 몸을 누이는 생활의 반복이었습니다.      


“대체 아빠는 잠을 언제 자는 거야?”     


아빠에게 항상 갖는 의문이었어요. 그리고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얼마 지나지 않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아빠가 출근한 어느 점심, 엄마는 밥을 먹으며 제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빠 부서 옮길 거래. 화재조사관으로 일하면서 불에 탄 시체를 많이 봤대.”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았어요. 저는 그저 아빠가 일 욕심 많은 사람인 줄로만 알았어요. 

태생이 한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는 성격이라 그렇게 바쁘게 살아가는 줄로만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게 아니라 머릿속에 어떤 지식이든 집어넣지 않으면, 농사일로 몸을 고되게 하지 않으면, 술의 힘을 빌리지 않으면 잠이 들지 못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제게 아빠의 승진은 특별합니다. 자리에 대한 욕심이나 돈에 대한 욕망이 아니었어요.

그저 매일을 살아가기 위한 노력으로 지금 아빠의 삶까지 도달했다는 걸 이제야 깨달았습니다.      


아빠의 승진 소식에 여기저기서 축하 메시지와 꽃바구니가 도착했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아빠에게 축하보다는, “그동안 고생 많았어!”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그저 아빠를 한번 꽉 안아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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