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번째 편지 _자랑스러운 소방관 동료들에게 전하는 글
타인을 살리기 위해 내 목숨까지 거는 일이 우리의 일입니다.
그렇다면 나를 지키기 위한 일도 결코 소홀히 할 수는 없습니다.
내가 살아야 남도 살릴 수 있으니까요.
일했으면 놀고, 놀았으면 일하는 삶의 적당한 균형을 꼭 찾으시길 바랍니다.
-부산소방특수구조단 팀장-
바쁜 세상입니다.
먹고살려니 바쁘고, 할 일이 많아 바쁩니다. 코로나 때문에 ‘비대면’이라는 말이 생겨 어쩌면 전만큼 움직일 일이 없을 듯도 합니다만, 일은 여전히 많습니다. 아침에 눈을 떠 하루의 일과를 머릿속에 그려봅니다. 이것저것 할 것과 갈 곳이 죽 그려집니다. 그뿐일까요? 일상 중 우연과 인연으로 인해 생기는 이런저런 일이 또 어찌 그리 많은지요. 세상 나만 바쁜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둘러보니 다른 사람들도 별반 다를 거 없이 바빠 보입니다.
사실 ‘일’이라는 건, 일 분 일 초의 여유도 없이 마구잡이로 몰리지는 않습니다.
자세히 보면 그렇게 정신없이 몰아칠 만한 일도 없고요. 다만, 일은 연속성을 지닙니다. 일은 계속해서 이어지기 마련입니다. 그전에 했던 일의 과정과 앞으로 해야 할 일의 결과를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이어지곤 합니다. 특히 직장이라는 곳은 더 그렇습니다. 주로 계획, 추진, 결과, 분석의 틀에서 일은 반복됩니다. 이윤을 추구해야 하는 사기업뿐만 아니라 국가나 지방 단체 같은 공공기관도 크게 다르진 않습니다. 일종의 프로토콜이죠. 목표를 세우고, 그 목표를 이루는데 필요한 재화나 인력, 시간 같은 것을 따져보고, 결과를 예측하는 것이 대략적인 일의 흐름입니다.
소방관의 일만을 보겠습니다.
사람들은 사고가 난 후 출동을 가는 모습을 떠올릴 것입니다. 불이 나면 불을 끄고, 물에 빠지면 구해주며, 심장이 멈추면 다시 살리기 위해 응급처치를 하는 소방관들의 업무환경은 누구나 상상하는 그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이런 일은 앞서 말한 ‘일’과는 사뭇 다릅니다. 계획될 수도 없고, 결과를 예측하기도 어렵습니다. 그래서 소방관이 일에 대해 받는 스트레스는 더 심한 편입니다.
불시에 들이닥치는 출동 지령과 현장 상황을 전달하는 무전 소리…. 소방관은 달리는 소방차 안에서 알 수 없는 상황에 대비해야 합니다. 긴장, 흥분, 위축, 침착 같은 갖가지 감정이 교차합니다. 부디 아무도 다치거나 죽지 않는 결과를 만들어내기 위해 움직입니다. 그간 배우거나 익힌 기술이 발현될 수도 있고, 경험과 기억이 본능적으로 행동으로 나오기도 합니다. 자연적으로 몸은 위험에 맞설 태세를 갖추고, 가지고 있는 모든 힘과 지혜를 발휘합니다. 그곳이 어떤 사고 현장이든 말입니다. 대충은 없습니다.
무사히 일을 마치면 몸과 마음은 녹아내리듯 축 늘어집니다.
소방관의 몸과 마음은 가끔 심각한 번아웃에 젖어 들기도 합니다. 쉽지 않은 일입니다.
출동이 아니라면 어떨까요?
소방이라는 조직 역시 여느 ‘직장’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분기 단위, 월 단위, 주 단위로 업무계획이 작성되고 계획에 따라 움직입니다. 결과를 도출해서 보고하는 것은 물론, 그 결과를 분석해야 합니다. 크게 보자면 이렇습니다만, 작게는 또 무수히 많은 행정업무가 발생합니다. 담당 부서가 있다 하더라도 작은 단위 조직인 안전센터 혹은 구조대에서 처리하는 이러한 행정업무는 셀 수 없이 많습니다. 소방관 역시 일에서 받는 스트레스가 대한민국 어느 직장인들과 견주어도 절대 작지 않을 겁니다. 여기서 특이한 점 하나, 현장 업무와 행정업무를 함께 수행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다른 일보다 어렵다고 말하려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일이 이렇다 보니 소방관에게 더욱 중요한 것이 삶과 일의 균형입니다.
현장과 사무실에서 지친 삶을 위로하기 위해 무언가를 해야 합니다. 소방관도 잠시 ‘일’을 잊고 여유를 찾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사람들은 이런 것을 ‘일과 삶의 균형(Work-life balance)’이라고 합니다.
취미 생활은 워라밸을 찾기 위한 좋은 돌파구입니다. 소방관의 취미 생활 역시 여느 직장인들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다양한 운동은 대표적인 활동이지요. 운동을 하기 위해 헬스클럽이나 수영장을 찾습니다. 요즘 직원들은 암벽등반, 크로스핏, 스포츠댄스 등 더욱 다양한 운동 거리를 즐깁니다. 개인적으로 워라밸을 맞추기 위한 가장 이상적인 취미 중 하나가 운동이라고 생각합니다. 건강만큼 중요한 것이 어디 있을까요? 소방관의 일은 거의 몸을 쓰는 일이니, 시간을 내어 운동하는 것은 어쩌면 내 삶, 그리고 내 일을 지키는 중요한 취미일 수도 있겠습니다.
그래도 무엇보다 가족과 보내는 시간이 금쪽입니다. 함께 캠핑을 가거나, 여행을 통해 낯선 곳에서 풍광을 즐기며 일을 잊습니다. 코로나 때문에 예전만 못한 것이 아쉽지만, 가족과 함께 먼 곳으로 이동하여 새로운 즐길 거리를 만난다는 것은 늘 설레는 일입니다. 특히 친한 동료의 가족들과 함께한다면 금상첨화입니다. 동료의 가족과 함께 다른 공간, 다른 시간에서 만나 쌓인 유대감은 업무를 하면서 더욱 빛을 발하기도 합니다. 이를 통해 가족들 역시 소방관 아빠, 엄마, 남편, 아내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저는 스쿠버 다이빙을 즐깁니다. 적어도 한 달에 한 번은 깊은 바닷속에 제 몸을 던지곤 하지요. 세상과 단절된 심연의 그곳에서 자유를 느낍니다. 치열한 사고 현장에서의 긴장감도 없고, 밀려드는 업무처리로 골치 아플 일도 없습니다. 푸른 바닷속이 그래서 좋은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바닷속을 나오면 다시 일상은 계속되지만, 그렇게 바닷속에서나마 삶이 치유되는 시간은 무엇보다 소중합니다.
소방관이라고 특별한 워라밸이 있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굳이 한마디 보태자면, 반드시 일과 삶의 균형을 맞추어보자는 것입니다. 간혹 미친 듯이 업무에만 집중하는 동료들을 봅니다만, 솔직히 건강이 걱정됩니다. 대단한 무언가가 아니더라도, 자신의 건강을 위해서 잠시 일을 잊는 시간을 가져보길 바랍니다.
일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내 삶과 내 가족, 그리고 동료를 위해서라도 자신의 심신이 즐거울 수 있는 다른 무언가에 몰입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또 무척이나 힘든 현장에서 겪은 트라우마를 치유하기 위해서라도 그래야만 합니다. 기억의 아픔은 쓰라립니다. 잊으려 하기보다는 잠시 일에서 멀어질 필요가 있습니다. 소방관의 외상 후 스트레스 증후군(PTSD) 해소에도 반드시 균형 잡힌 생활은 필수입니다.
일이 우선인지 내 삶이 우선인지를 굳이 따지고 싶지는 않습니다. 일할 땐 열심히 일하고, 놀 땐 열심히 놀면 그만인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말이야 쉽지 현실적으로는 어렵다고들 말합니다. 그러나 결국 마음먹기 나름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일상은 늘 반복되고, 우리는 일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삶은 끊임없이 이어지는 일의 연속이고, 일은 삶을 지탱하는 중요한 과정입니다. 이 중요한 일을 소홀히 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고 삶의 모든 시간을 일에 집중하는데 쏟을 수도 없습니다. 일과 삶은 달라야 합니다. 삶에 일이 개입되어 구분이 힘들 때 심신은 병들어가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일했으면 놀기도 하자는 겁니다.
어렵지 않습니다. 무엇이든 상관없습니다. 나만 좋으면 될 일입니다. 가족과 함께라면 더 좋습니다. 쉬는 날 동네 한 바퀴라도 돌아보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여유까지는 아니더라도 내 몸과 마음이 다른 곳에 있다는 감정이라면 충분합니다. 그때 다시 반복될 일을 견딜 심신의 체력이 보충되니까요. 타인을 살리기 위해 내 목숨까지 거는 일이 우리의 일입니다. 그렇다면 나를 지키기 위한 일도 결코 소홀히 할 수는 없습니다.
내가 살아야 남도 살릴 수 있으니까요.
일했으면 놀고, 놀았으면 일하는 삶의 적당한 균형을 꼭 찾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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