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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arO Jun 09. 2022

모세의 기적

열 번째 이야기 _ 지금도 일어나는 조그마한 기적들

가톨릭 성경에는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모세가 손을 위로 번쩍 치켜올리자 홍해가 반으로 쩍, 하고 갈라졌다는 믿지 못할 얘기.
이집트의 파라오 전차부대에 꼼짝없이 잡혀 죽을뻔한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탈출한 이스라엘 군중은 가히 기적과도 같은 일을 경험하며 무사히 홍해를 빠져나왔고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습니다.

후대에 이르러 이 이야기는 출애굽기에 전해져 지금까지 사람들에게 ‘모세의 기적’이라는 이름으로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습니다. 모세의 기적은 우리나라에서 한참 떨어진 낯선 지역, 북아프리카나 중동 어디쯤의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제게 모세의 기적은 그다지 먼 이야기가 아닙니다.
소방관으로 일하며 경험했던, 감사한 체험의 이야기였습니다.   



몇 달 전 일이었습니다.

야간 근무 출근 전, 교대 시간에 짐을 넣고 있었습니다.
어느덧 센터 주위로 땅거미가 내려앉기 시작했습니다.  

낮과 밤, 그 사이 저녁 시간대에 옷을 갈아입는 시간이었지요.


소방서 교대점검 _ 전북소방본부


저는 등지게와 방화복을 펌프차에 실었고, 나머지 안전 헬멧을 막 실으려던 참이었습니다.
    

“화재 출동, 화재 출동”     


도로에 주행 중인 자동차 보닛 위에서 연기가 발생한다고 했습니다.
다른 팀과 담소를 나누며 교대를 준비하던 센터에는 출동벨이 울림과 동시에 순간 부산한 바람이 일었습니다.

주임님은 재빨리 출동 지령서가 담긴 태블릿을 챙겼고, 저는 업무용 폰과 무전기를 챙겼습니다. 선임 반장님과 팀장님, 그리고 저까지 모두 탑승한 뒤에 펌프차는 사이렌을 힘차게 울리며 현장으로 달려갔습니다.


자동차 화재는 보통 도로에서 발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도로에서 발생하는 화재는 현장으로 접근하는 게 여간 쉽지 않습니다. 아파트 같은 공동주택에서 화재가 발생했을 때보다 접근이 어렵습니다. 도로에는 언제나 차가 쌩쌩 달리는데, 화재가 발생한 그 순간부터 교통체증이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꽉 막힌 도로는 접근도 쉽지 않을뿐더러, 교통체증으로 현장에 늦게 도착할수록 현장 활동의 어려움은 배가 됩니다. 그야말로 악순환의 반복인 겁니다.

 만약 도로가 넓어 차를 정차시킬 만한 충분한 공간이 확보된다면 운전자가 갓길에 차를 대고 후속 조치를 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번 현장의 경우에는 해당하지 않는 것만 같았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사고 현장은 폭이 좁은 2차선 도로였습니다. 사고가 난 차선은 먹통이 되었고, 설상가상으로 병목현상마저 발생해 교통이 혼잡해졌습니다. 더구나 화재가 발생한 시간은 퇴근 시간이었습니다.

주임님은 사이렌을 울리며 달리고 있었습니다.

퇴근시간 도로 차량화재 _ SBS 뉴스 갈무리
일순간 거짓말처럼 차량들이 서행하기 시작했습니다.

뒤에서 오는 펌프차를 피해 서로 2차선으로 차선을 변경했고, 우리가 질주하는 1차선을 막힘없이 뚫어주기 시작했습니다. 현장에 가까워지자 급기야 차량들이 양방향으로 비켜주기 시작했습니다.


깜빡이는 차량 전조등은 마치 따뜻한 반딧불 같았습니다.

차디찬 현장이었지만 그 순간의 도로는 따뜻했습니다.


우리는 얼마 지나지 않아 현장에 도착할 수 있었고, 선임 반장님과 저는 내리자마자 호스를 전개했습니다.
불길은 보이지 않았지만, 보닛 틈 사이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습니다. 무리하게 보닛을 열지 않고 엔진룸 틈 사이를 조금 벌려 주수했습니다. 달아오른 엔진룸에 시원한 물이 닿자 이내 연기가 사그라들었습니다.

상황은 일단락되었습니다. 현장 안전 확인을 마치고 팀장님의 지시에 따라 호스를 접었습니다. 호스를 정리하는 틈 사이로 경찰들이 현장을 정리하고 있었습니다. 차량들은 이리저리 움직이는 경찰의 손끝을 따라서 질서정연하게 현장을 빠져나갔습니다. 돌아오는 펌프차에 오른 저는 가만히 직전의 상황을 떠올렸습니다.

고맙고, 또 고맙고, 감사했습니다.      


며칠 전 제가 경험한 일 말고도 주임님에게서 들었던 얘기가 있습니다. 주임님이 몇 년 전 구급차 기관원으로 근무했을 때의 일이었다고 합니다. 차들로 꽉 막힌 도로에서 모든 차가 썰물 빠지듯 빠져나가고, 구급차가 그사이를 유유히 미끄러지듯 주행했을 때 주임님은 이름 모를 저릿함을 느꼈다고 합니다.

얼마 전에는 화단에 불이 났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하던 도중 경찰차를 만났는데, 우리 앞으로 앞질러 가며 길을 터준 적도 있었습니다. 경찰차도 고마웠고, 기꺼이 길을 양보해준 다른 운전자들에게도 깊이 감사했습니다.  운전자 본인에게는 아무 일도 아닐 수 있지만, 소방관으로서 그 모습을 보면 감사한 마음이 듭니다.      



촌각을 다투는 화재 현장은 1분의 차이로도 많은 상황이 달라집니다.
불꽃색이 노란색에서 붉은색으로, 연기 색이 흰색에서 컴컴하고 짙은 검정으로 변합니다.
화재 성상이 최성기로 넘어간다는 건, 모든 상황이 악화했다는 의미를 나타냅니다.
그래서 1분은 짧은 시간일지 몰라도, 우리에게는 너무나도 소중한 시간입니다. 현장으로 향하는 길에 일일이 창문을 열어 감사함을 전달할 수는 없었지만, 기꺼이 마련해준 소중한 일 초 일 초가 사무치게 감사했습니다.

기적이 뭐 별거겠나요.
이 조그마한 행동이 기적이고, 선뜻 길을 만들어주는 한 분 한 분의 시민이 바로 영웅입니다. 한국판 ‘모세의 기적’은 전설 속 이야기가 아닌, 지금 이 순간에도 심심찮게 일어나고 있는 우리의 이야기입니다.

본 칼럼은 원저작자의 동의를 받고 편집되었습니다, 공유는 브런치 '공유하기' 기능을 이용해주세요

Copyright 2022. 임하늘 All rights reserved.

*경찰 싸이카 길터주기_출처 : 안깨남 유투브

https://www.youtube.com/watch?v=4EBo7DDlru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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