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한번째 편지_작은 것부터 시작해서 크게 성장한다
열정과 의지를 품고 시작한 소방관 생활이지만, 처음 겪는 낯선 일들은 어렵기만 합니다.
그렇게 진짜 소방관이 되어 가는 어린 후배들에게 말해주고 싶습니다.
작은 것부터 시작해서 크게 성장한다는 것을 말입니다.
서른한 살에 소방관이 되었습니다.
함께 임용된 동기들과 비교해보면 적은 나이가 아니었어요.
그렇지만 괜찮았고, 자신 있었습니다.
까짓거 못할 거 뭐 있겠느냐고 여겼습니다.
소방관이 되기 전에 몇 번 봤던 소방관 영화 속 주인공의 모습은 멋있기만 했습니다.
나도 그런 소방관이 되겠노라고 다짐했습니다. 그렇게 당당히 소방서 문을 들어섰습니다.
두근거렸지만 열정과 의지라는 것이 몸과 마음을 휘감고 있었기에 괜찮았습니다.
14년 전, 추운 겨울날. 부산진 소방서 구조대 사무실로 갔습니다.
함께 임용된 동기와 허름한 119안전센터 2층으로 올라갔습니다.
올라서는 계단에서부터 퀴퀴한 기름 냄새 같은 게 풍겼습니다. 군대에 갓 입대한 이등병처럼 이리저리 눈치 보며 삐걱거리는 문을 열고 사무실 안을 향해 고개를 빼꼼 들이밀었습니다.
“어? 아무도 없네?”
오래된 책상 몇 개에 허름한 컴퓨터 두어 대가 놓인 초라한 사무실이었습니다.
여기저기 사무용품이 책상 위에 어지럽게 널려 있었고, 가뜩이나 좁은 사무실 한복판에 전기난로 하나가 힘겹게 열을 내고 있었습니다. 적막한 사무실에서 저와 동기는 말도 없이 마냥 두리번거리며 서 있었습니다. 삼십 분 정도 지나자 차량 엔진이 내는 굉음이 귓가에 울렸고, 나무계단을 올라오는 발소리가 들렸습니다.
저와 동기는 바짝 긴장된 표정으로 사무실 안으로 들어오는 주황색 옷의 남자들을 바라봤습니다.
“새로 온 구조대원들?”
얼굴이 새카맣고 키가 큰 사람이 먼저 말을 건넸습니다.
길게 답하지도 못하고 어리바리하며 고개만 주억거렸습니다. 주황색 옷에는 기름때가 잔뜩 묻어 있었고 온몸은 땀에 젖어 있었습니다. 표정은 무뚝뚝했지만,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우리를 반기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모습은 왠지 초라해 보였고 제가 그려왔던 소방관의 모습과는 거리가 있는 모양새였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제 앞을 지날 때마다 무엇인가 불에 탄 냄새가 진동했습니다.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아…. 불을 끄고 온 거구나….
새내기 구조대원의 막내 생활은 쉽지 않았습니다.
아침, 저녁 교대 시간마다 닦고 조이는 장비의 개수만 수십 가지입니다.
구조공작차에 적재된 수백 점의 장비 위치를 외우려니 머리가 아팠습니다. 불만 끄고, 사람만 구하면 될 줄 알았더니 일거리가 이렇게 많을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또 온종일 무슨 행정업무가 그리도 많던지요. 잠시 쉴 틈이라도 생기면 선배가 옥상 훈련장으로 데리고 올라가 로프 구조 훈련을 시킵니다. 저녁을 먹은 뒤 사무실 창밖으로 어둑해진 부산 시내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또 선배가 체력단련실로 같이 가서 운동하자고 팔을 이끕니다.
사회 초년생들이 다 그렇듯 실수도 하고 혼나기도 했습니다.
구조 작업할 때 쓰는 체인톱 휘발유 주입구에 윤활유를 넣기도 했고, 출동 현장에서는 선배들이 가지고 오라는 장비를 찾지 못해 꾸중도 수없이 들었습니다. 처음 하는 일, 모든 게 낯설고 서툴렀습니다.
어디 일이라는 것이 열정과 의지라는 거창한 수식어로 해결되던가요.
마음만 앞서고 머리는 복잡하니 천방지축 막내는 가는 곳마다 사고뭉치였지요.
하루는 승강기에 갇힌 구조 대상자를 꺼내기 위해 출동했습니다.
크게 위험하거나 어려운 출동이 아니었기에 선배는 제게 승강기 열쇠를 건네며 직접 열어보라고 시켰습니다.
그전까지 옆에서 지켜만 보던 저는 이제야 실력을 보여줄 때가 왔다고 속으로 쾌재를 불렀습니다. 굳은 다짐을 하며 현장으로 당당히 걸어갔습니다.
능숙하게 승강기 열쇠를 꺼내서 열쇠 구멍에 욱여넣었습니다. 있는 힘껏 열쇠를 돌린 후, 손끝으로 전해지는 감각을 알아차리려 노력했습니다. 승강기 자물쇠를 열쇠로 돌리면 닫힌 승강기는 수동으로 열려야 했습니다.
그런데 승강기는 꿈쩍도 하지 않았습니다.
당황하며 손을 다시 움직였습니다. 몇 번을 돌렸는데도 열리지 않더군요. 옆에서 지켜보는 선배의 눈초리가 매서웠습니다. 등줄기에 식은땀이 흐르더니 이마에도 땀이 송골송골 맺혔습니다. 보다 못한 선배가 제 손에 들린 열쇠를 슬그머니 뺏어가더니 한 번에 열더라고요. 갇혀 있던 구조 대상자는 승강기 문을 늦게 열었다며 짜증을 냈습니다. 쥐구멍이라도 찾아가 숨고 싶었습니다.
선배들은 쉽게 여는 승강기 문을 한 번에 열지 못한 게 부끄럽고 화만 났습니다.
“이까짓게 뭐라고…. 제길….”
잘하지 못했다는 자책이 화로 변해 부아가 치밀었습니다. 돌아오는 공작차 안에서 혼자 씩씩거렸습니다. 선배는 가타부타 말이 없었습니다. 팀장님은 알 수 없는 미소만 짓고 있었습니다. 사무실로 돌아와 구조일지를 작성할 때까지도 화가 가시지 않았습니다. 밖에 나와 얼굴을 식히고 있자니 선배가 슬그머니 나와서 말을 걸었습니다.
“그게…. 처음엔 다 그렇다. 가끔 맞추기가 까다로울 때도 있어.
오늘은 연습했다, 생각하고 다음부터는 잘해봐”
선배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저를 달랬습니다.
다정한 선배의 말투에도 괜히 심술이 났습니다. 영화처럼 구조 현장에서 프로답게 일해도 모자랄 판에 그깟 승강기 문 하나 제대로 못 연 제 자신이 미웠습니다. 괜히 혼자 씩씩거리는 저를 선배는 한참을 어르고 달랬습니다. UDT 출신에 누구보다 강하다고 생각하며 시작한 소방관 생활이었는데, 모양새가 영 좋지 못한 것 같아 부끄럽기만 했습니다.
이제는 10년도 훌쩍 지났지만 선명한 기억으로 남아있는 일입니다. 돌이켜보면 별것도 아닌 일로 혼자 속앓이를 한 것 같아 괜히 민망해집니다. 어쩌면 서툴고 어설픈 게 당연한 시절이었습니다. 마음만 앞섰고, 잘하고 싶다는 욕심만 가득했던 때였습니다. 영화 속 주인공처럼 멋있는 소방관의 모습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경험이 쌓이면서, 그게 다가 아니란 것도 곧 알게 되었습니다.
소방관의 현실은 영화보다 더 영화 같지만, 화려함과는 다소 거리가 있습니다.
현장에는 삶과 죽음이 오고 갔습니다. 새내기 소방관의 눈에는 선배들의 모습이 영화 속 주인공보다 더 처절했습니다. 아무리 분투해도 능숙하지 않던 천둥벌거숭이 막내 구조대원이 진짜 현장에 온몸으로 부딪혀가며 서서히 진짜 소방관으로 거듭나게 되었습니다.
그 시절의 저는 벌써 대단한 무언가가 된 것인 양 여겼던 것입니다. 열정이라는 포장지로 둘러싸인 ‘겉멋’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중요한 건, ‘내가 하는 일이 어떤 일인가’에 대해서 아는 일이었습니다. 아무리 단단한 육체를 가졌더라도, 아무리 젊고 세련된 새내기 소방관이라 하더라도 말입니다.
가장 먼저 할 일은 ‘가야 할 길이 어떤 길인가를 아는 것’이었습니다.
기름때가 찌든 주황색 옷을 입은, 배가 툭 튀어나온 선배들에게서 그들이 그동안 무수히 겪은 현장의 기억을 배워나가야 했습니다.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었습니다. 아마 소방이 아닌 다른 조직, 다른 사회도 마찬가지겠지요.
경계 밖에 있는 자는 경계 안에 복잡하게 얽혀있는 것들을 보기 어렵기 마련입니다. 만사가 그렇습니다. 실수하고, 깨지고, 나자빠지며, 그렇게 배워나가야 비로소 성장할 수 있습니다.
오래되고 사소한 출동의 기억이지만 한참 뒤에야 깨달았습니다. 산속의 작은 샘물이 냇가로 통하고 강물이 되어 바다로 향한다는 것을 말입니다. 흐르고 흐르며, 굽이치고 떨어지는 과정이 있어야 함을 알았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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