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세번째 편지_소방관의 영원한 두 가지 명제
언제나 양립될 수 없는 두 개의 키워드가 있습니다.
초등학교에서 배운 ‘반대말’ 개념을 생각하면 쉽습니다.
‘높다’의 반대말은 ‘낮다’, ‘빠르다’의 반대말은 ‘느리다’, ‘크다’의 반대말은 ‘작다’와 같이
두 개의 낱말은 서로 상호배타적으로 결코 나란히 둘 수 없는 것이지요.
소방관에게도 나란히 놓을 수 없는 두 개의 키워드가 있습니다.
바로 ‘신속’과 ‘안전’입니다.
소방관의 업무에 있어 ‘신속하면서 안전하게’라는 말은 마치 도달하기 어려운, 높은 산처럼 느껴집니다.
소방차를 운전해서 화재 현장에 가는 것만 해도 그렇습니다.
최대한 신속하게 가려면 수차례 교통신호를 위반해야 하고, 그러자면 사고의 확률이 높아지며, 결과적으로 안전과 거리가 멀어지게 됩니다. 반대로 안전하게 가기 위해서는 ‘신속’이라는 요소를 일찌감치 제쳐 놓을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의 마음과는 다르게 많은 사람은 ‘적어도 소방관이라면’ 안전하고도 신속하게
소방 업무를 수행하길 바랍니다. 당장 우리의 상관들, 지휘관들이 그렇고, 신고자들이 그렇습니다.
언론인들도 마찬가지지요.
소방관의 진정한 어려움은 두 개의 모순된 단어에서 기인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불이 난 화재 현장이나 사람 목숨이 위태로운 구조 현장처럼 생사의 촌각을 다투는 구급현장에서 우리는 그야말로 ‘신속하게’ 움직여야만 합니다. 현장으로 누구보다 빨리 도달해야 하고, 현장에서 발생한 문제를 누구보다 빨리 해결해야 합니다. 그렇지만, 그런 상황 속에서 정작 자신의 안전을 지키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더 심각하고 급박한 상황일수록 소방관의 안전은 더더욱 담보되지 못하는 현실입니다.
이런 현실 속에서 우리 사회는 늘 ‘신속하면서도 안전하기를’ 소방관에게 요구하곤 합니다.
2017년, 부산에서의 일이었습니다.
당시 근무하던 북부 소방서는 부산에서 불이 가장 많이 나고, 사건 사고가 가장 많이 발생한다고 소문난 곳이었습니다. 북부 소방서의 관할은 주로 공장지대였는데, 부산 사상구와 북구를 합친 규모라 부산에서 가장 넓은 관할 영역이었습니다. 게다가 화학공장과 스티로폼 공장, 폐기물 야적장, 신발 생산업체 등이 즐비해 하루건너 하루 화재가 발생할 정도였으니 말 다 한 셈이지요. 겨울철이면 수시로 대형화재가 발생했습니다. 건물은 모두 불타고 엿가락처럼 휜 건물 철근 아래에서 날밤을 꼬박 지새우기도 부지기수였습니다.
당연한 얘기겠지만, 그 시절 우리의 관심사는 ‘어떻게 하면 화재 현장에 빨리 가서 화재를 빨리 진압하느냐’의 문제였습니다. 신고를 받은 후 빨리 출동하면 연기만 나고 있을 때 간단히 진압할 수 있는 화재 사례가, 여차하는 사이 불이 완전히 돌아 건물 전체로 연소 확대가 되고, 이튿날이 되어도 완전히 꺼지지 않는 경우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결국 차가 막혀서 화재 현장에 신속하게 도착하지 못할 때 이런 사례로 이어지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소방차를 운전하는 대원은 머릿속에 지도를 넣어다니며 최단시간에 도착할 수 있는 최단경로를 연구하곤 했습니다. 우리 화재진압대원들도 ‘어떻게 하면 차 안에서 빠르게 소방복으로 환복한 후, 공기호흡기를 멘 뒤 화재가 발생한 화점까지 호스를 빨리 끌고갈 수 있을까’를 연구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동료들과 식사를 마치고 체력 단련 겸 탁구를 치던 오후 2시쯤이었습니다.
막 스카이서브를 넣으려고 공을 높이 던져 올린 순간 비상벨이 울렸습니다.
화재 출동, 화재 출동, **화학공장 화재
방송을 더 들을 여지도 없이 손에 쥐고 있떤 탁구채를 집어던졌습니다. 아래층 차고로 내려가 소방차로 올라타면서, 오늘은 부디 불이 돌지 않은 상태에서 화재 현장에 도착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랐습니다.
소방차는 육중한 몸을 이끌고 고막을 강타하는 사이렌 소리를 울리며 달렸습니다. 하지만 왕복 8차선 도로에서 운전자들의 양보를 받기란 쉽지 않았습니다. 빠르게 달리는 차와 충돌이라도 한다면, 현장에 채 가기도 전에 우리의 작업은 거기서 끝나고 마는 것이므로 최대한 교통신호를 지킬 수밖에 없었습니다.
겨우 신호가 바뀌고, 소방차는 다시 출발했습니다.
오후 2시, 공장에 사람들이 있을 시간이었습니다.
그렇기에 신고도 빨랐을 테고, 혹시 공장 직원들이 초기진화를 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상황이었습니다.
아직 불이 완전히 돌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았습니다. 만일 그렇다면 우리에게 승산이 있는 것이었지요.
화재 초기라면, 얼른 호스를 깔아 화점에 물을 쏘기만 하면 됩니다.
그렇게 하면 불은 쉽사리 꺼질 수 있을 터였습니다.
그러나 마지막 모퉁이를 도는 순간, 이런 기대는 산산조각이 났습니다.
눈앞에 거대한 불길이 한 작은 공장을 집어삼키고 있었습니다. 공장 안에는 가스통이나 위험물이 있는지 연신 ‘쾅, 쾅’하고 터지는 소리도 났습니다. 화학공장이라 그런지 화재가 발생하고 채 몇 분이 되지 않아 건물 전체로 연소 확대가 된 모양이었습니다. 그리고 공장 입구 양쪽으로 어디선가 수많은 사람이 나와서 그야말로 ‘불구경’을 하고 있었습니다. 휴대전화를 꺼내 화재가 발생한 공장과 우리 소방차를 번갈아 촬영하고 있는 사람들도 보였습니다. 우리를 긴장하게 만드는 광경이었습니다. 그야말로 ‘신속’과 ‘안전’, 두 마리 토끼를 한 번에 잡아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우리는 소방차에서 내리자마자 호스를 전개하기 시작했습니다.
공장이 내뿜는 뜨거운 열기 탓에 화점에 다가서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공장 전방 5M
65mm의 대량호스를 멈췄습니다. 이 이상으로 들어가면 뜨거운 열기에 화상을 입을 것만 같았습니다.
“방수 개시!”
팀장님이 무전기에 대고 고함을 쳤습니다.
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소방차에서 거대한 물줄기가 소방호스를 타고 나오는 것이 보였습니다.
저와 팀장님은 뒷다리에 힘을 잔뜩 주고 버텼습니다. 65mm 대량호스의 수압은 상당히 셌기 때문입니다.
건장한 성인 남성 두 명이서 버티기가 힘들 정도입니다.
자칫 중심을 잃어 소방호스를 놓치기라도 한다면, 강력한 수압으로 날뛰는 관창에 맞아 부상을 당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일 마지막에서 호스를 잡고 있어야 할 막내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아, 이런…”
입에서 낮은 탄식이 흘러나왔습니다.
소방서에 들어온 지 이제 6개월밖에 되지 않은 막내 대원이 멋모르고 작은 45mm 호스를 하나 들고 있었습니다. 막내는 혼자서 불이 난 공장 안으로 진입했습니다. 항상 2인 1조로 행동하라고 귀에 못 박히도록 일러 왔건만, 대량 관창은 어차피 팀장님과 제가 잡고 있으니 혼자 안으로 진입해서 불을 꺼야겠다고 생각한 모양이었습니다.
소방관의 2인 1조 행동 원칙은 소방관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금과옥조였습니다.
단독으로 행동할 경우, 위험한 순간이 닥쳤을 때 구해줄 사람이 없기에 반드시 2인 1조로 진입에서부터 철수까지 함께하는 것이었습니다. 막내는 기본 중의 기본도 알지 못한 채 당당하게 불 속으로 걸어 들어갔습니다. 그렇게 그 불속으로 들어가면, 막내의 안전은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다시 돌아오라고 고함을 쳐봤자 화재 현장의 각종 소음으로 들리지도 않을 터였습니다.
저는 막내의 뒤를 따라 들어가 그를 끄집어내 오려고 발을 뗐습니다.
순간 막 물이 차오르는 호스를 보았습니다.
만약 여기서 제가 빠졌다가는 팀장님 혼자 대량호스의 압력을 버틸 수 없을 게 뻔했습니다.
그렇다고 여기 그대로 있자니 막내가 위험했습니다.
그야말로 선택의 기로였습니다.
어쩔 수 없이 대량 관창으로 막내를 겨누었습니다.
불속으로 들어가는 막내를 향해 물을 쏘아 열기를 식혀주는
엄호 방수를 한다면 적어도 중상은 피할 수 있을 것이었습니다.
저는 대량 관창으로 공장 안을 향해 물을 쏘면서 70%는 공장을 향해, 30%는 막내를 향해 지원 사격했습니다. 한참을 그러고 있으니 불은 차츰 사그라들었고, 나머지 다른 분대들도 현장에 속속들이 도착했습니다. 공장의 불은 완전히 돌았지만, 공장 규모가 그다지 크지 않아 해가 지기 전에 다른 건물로의 연소 확대를 저지하고 화재를 완전히 진화한 후, 마무리 작업까지 모두 마칠 수 있었습니다.
화재가 다 진압되고 난 후, 막내는 마치 자기가 불을 다 끈 양 득의양양했지만, 결코 웃을 수가 없었습니다.
장갑을 벗고 보니 양손이 모두 화상을 입어 화상 전문 병원에 입원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뒤에서 엄호 방수를 하지 않았더라면 손뿐만 아니라 온몸에 전신화상을 입었을 수도 있었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따끔하게 질책하고 싶었지만, 병문안을 간 병원에서 양손에 붕대를 칭칭 감고 누워있는 막내를 보니 전에 입었던 손가락 부상이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뭐한다고 그리 깊이 들어갔니? 혼자서…”
“사람들 다 쳐다보는데 빨리 끄고 싶어서 그랬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랬습니다.
막내 역시 신속과 안전이라는, 소방관의 영원한 두 가지 명제 앞에서 선택의 기로에 섰던 것이었습니다.
사람들은 몰려들어서 사진을 찍고 있는데 불은 얼른 꺼야할 것 같고, 그러자니 자신의 안전은 생각하지 못한 채 무작정 45mm 호스를 가지고 들어가 불과 정면으로 맞닥뜨린 것이었습니다. 항상 2인 1조로 행동하라는 소방관의 강령을 무시하고서 말입니다.
아무리 불을 신속하게 꺼도 소방관의 인명 피해가 있다면 그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갑니다. 작전 실패지요. 막내의 경험치가 조금 더 쌓였더라면 신속보다는 자신의 안전을 더욱 우선시했을 터였습니다. 급박한 화재 현장에서 그런 것을 판단하기엔 막내는 아직 너무 어렸습니다. 평소에 그런 우선순위에 대해 먼저 교육을 했어야 했는데, 선임으로서 막내 대원이 그런 판단을 하게 했다는 데에서 저의 책임이 가장 컸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저는 막내에게 앞으로는 그러지 말라고 간단하게 주의를 준 뒤, 붕대로 칭칭 감긴 막내의 손을 붙잡고 빨리 쾌유하길 기도하는 것 밖에는 달리 할 수 있는 게 없었습니다.
막내의 병문안을 다녀오는 길, 저는 다시 양립하기 어려운 소방관의 두 명제에 대해 곰곰이 생각했습니다.
신속과 안전, 과연 무엇이 우선일까요?
과거에는 신속에 무게를 실었다면 최근 들어 점차 대원의 안전 쪽으로 무게추가 기우는 느낌이 듭니다.
경기도의 대형창고 화재와 강원도의 대형산불 현장에서도 소방 대원의 안전은 더 중요한 부분으로 다가옵니다. 경제적 손실과 자연의 훼손이 있더라도, 그보다 먼저 소방관의 안전을 우선시해야 한다는 인식이 자리잡아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실제 급박한 화재 현장에 놓이게 되면, 저 역시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습니다.
화재가 발생한 건물 안에 아이가 고립되어있거나 혹은, 수백년 가꾸어 놓은 금강송 군락지로 산불이 번져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소방관은, 소방관인 이상 자신의 안전을 뒤로 하고 자신도 모르게 뛰어들 수밖에 없습니다. 영원한 소방관의 딜레마가 아닐 수 없습니다.
결국 사람이 하는 일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나중에 보니 그 건물 안에는 사람이 없었을 수도 있고, 금강송 군락지로 향하던 불길이 풍향의 변화로 인해 다른 방향으로 번져갈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당시 우리의 선택과 행동이 아무런 의미가 없어질 수도 있습니다. 선택의 순간이 만약 제 앞에 놓이게 된다면, 정확한 판단으로 다른 사람의 생명을 살리고 또 저의 안전도 지킬 수 있기를, 그리하여 현명한 선택을 할 수 있기를.
기도하는 마음으로 오늘도 소방복을 입습니다.
마음속 고민과 무거운 감정을 같은 소방관인 상담사에게 나눠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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