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네번째 편지_소방관에게 외상이란
소방관은 여러 다양한 위험 현장에 노출됩니다.
현장에서의 경험은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큰 영향을 미쳐 삶을 송두리째 흔들어놓기도 합니다.
소방관으로서 업무를 지속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개인적인 삶에 빨간불이 켜져 위태로운 하루하루를 버티며 살아가기도 합니다.
외상 경험은 스펙트럼이 넓지만, 대부분의 소방관들이 외상을 겪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사건 현장에서의 어떤 경험은 평생 뇌리에 박혀 잊히지 않기도 합니다.
소방공무원인 아버지는 교통사고 현장에 출동을 나간 적이 있습니다.
4중 추돌사고로 인해 중상을 입거나 사망한 사람들을 수습하고 있었습니다. 맨 앞의 사고 차량으로 다가갔는데,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고 합니다. 뒷차량 추돌의 반동으로 운전자가 차량 밖으로 멀리 튕겨 나간 것입니다. 아버지는 운전자를 찾기 위해 주변을 수색했습니다.
그는 꽤 멀리 떨어진 곳에서 이미 사망한 채 발견되었습니다. 시체는 머리가 깨져 하얀 뼈가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었고, 뇌와 척수에서 나온 것 같은 물컹한 액체와 장기들이 흩어져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시체를 수습해야겠다는 생각에 흩어진 유해들을 하나씩 주워 나갔습니다. 그날 아버지가 느꼈던 시각적 그리고 촉각적 경험은 그렇게 평생 잊을 수 없는 무언가로 남았습니다. 지금도 비슷한 장면이나 물체를 보면 그때의 경험이 떠오른다고, 현장의 모습과 느낌 그대로 아주 생생하게 기억에 남는다고 하셨습니다.
그럴 때마다 모든 감각이 곤두세워지고, 무의식적으로 떠오르는 원치 않는 생각들은 정서적으로 불안한 상태를 만듭니다. 현장의 경험이 늘어날수록, 사건 사고를 겪을수록 이러한 외상은 다양한 형태로 겹겹이 쌓여갈 테니, 삶을 유지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소방관은 외상을 극복할 수 없는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소방관이 외상을 겪은 후 나타나는 심리적 성장은 많은 연구에서 관심을 받고 있기도 합니다.
혹자는 소방관이 베테랑으로서 성장하는 과정에 이러한 외상 후 성장이 작용한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외상 후 성장이란, 외상을 경험한 후의 긍정적인 심리적 변화를 뜻하는데, 이는 외상 전 상태로의 회복이 아닌- 외상을 겪은 후의 심리 상태가 긍정적으로 변화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러한 성장은 특히 외상 후에 이를 겪은 개인이 스스로 대처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느끼면서 발생하게 됩니다.
어떻게 하면 외상 후 성장이 가능할까요?
첫 번째로는, 자신의 경험을 말이나 글로 표현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흔히 원치 않는 생각이 떠오를 때면 우리는 이를 고통스러워하거나 회피합니다. 하지만 의식적으로 이 경험을 표출해 반복적으로 노출시킨다면, 불현듯 떠오르는 부정적인 감정과 생각을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주도권이 생기게 됩니다. 조금씩이지만 분명, 단단해지고 있는 것입니다. 특히 무의식적으로 침습해오는 것이 아니라, 의도적으로 외상을 자꾸만 생각하게 된다면 ‘표현’ 은 나의 생각에 대한 통제권을 갖는데 더욱 효과적입니다.
두 번째로는 꾸준한 사회적인 지지를 통해 성장을 촉진할 수 있습니다.
같은 경험을 한 동료나 주변의 가까운 가족들에게 정서적으로 수용 받은 경험을 하게 된다면, 외상을 성장으로 이끄는 데 큰 힘이 됩니다. 함께 경험한 외상일수록 더욱 깊이 공감할 수 있습니다. 외상은 홀로 싸워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이의 공감과 위로라는 상호관계는 변화를 더 빠르게 합니다. 실제로 저는 아버지의 경험을 실제로 듣고 나서부터는 조금씩 아버지를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외상은 인간의 생과 사를 넘나드는 현장에 노출되며 생기는 만큼, 죽음과 같은 존재의 근원을 위협하는 실존적인 물음에 대한 관심을 증가시킵니다. 이는 삶에 대한 방향성이나, 스스로의 중요한 가치관이 무엇인지 점검하고 시간을 의미있게 사용하고자 하는 성찰의 발판이 되기도 합니다.
외상 후의 성장은 쉽지 않습니다.
외상의 완전한 극복이라는 것도 없습니다. 다만 이 과정은 그 자체로 의미를 가집니다.
주변을 돌아보고, 자신을 위한 삶을 보낼 수 있는 힘은 분명 존재할 것입니다.
-작은 고민이라도 괜찮아요, 따뜻한 공감과 실질적인 조언을 비대면으로 받을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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