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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arO Nov 24. 2022

소방관이 글을 쓰는 이유

열아홉번째 편지 _ 글에서 나와 만났습니다.

얼마 전 부산의 한 중학교에서 강의했습니다.


몇 해 전부터 해양수산부의 의뢰를 받아 전국의 초, 중학교에 해양안전에 관한 강의를 다녔는데 아마 알음알음 소문이 난 모양입니다. 늘 사람들 앞에 서서 이야기를 늘어놓는다는 건 긴장되는 일입니다. 그래서 선생님께서 부탁한 날짜와 시간이 다가올수록 아이들에게 어떤 도움이 될 만한 이야기를 해줄까 고민하며 강의 준비를 꼼꼼히 했습니다. 강의 날. 학교 강당에 빼곡히 앉은 200여 명의 중학생 앞에서 119구조대원으로서 겪은 수난사고 경험과 아이들이 바다나 강, 계곡 등 물가에서 안전을 스스로 지킬 방법을 전달했습니다.


강의는 무사히 잘 끝나갔으며 늘 그랬듯 저는 강의 끝에 약 10분 정도 아이들과 질의응답 시간을 가졌습니다.     

“소방관으로 일하면서 죽을 뻔한 적이 있나요?”

“아저씨는 왜 소방관이 되었나요?”

“119 아저씨들은 모두 강한 사람들인가요?”     


아이들의 질문은 거침이 없습니다. 여기저기서 번쩍 든 손을 내리지 않고 자기 질문을 받아 주길 기다립니다.

한정된 시간 때문에 다 대답해주진 못하지만, 최대한 성실히 답합니다.

1시간 반 동안의 강의보다 10분의 질문시간이 어쩐지 더 힘듭니다.


아이들의 질문은 매우 신선합니다. 그래서 대답을 잘해야 합니다. 질문의 구체성보다 질문 자체의 참신함이 있기에 저의 대답도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춥니다. 쉽지 않은 일이지요. 강의를 마치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아이들의 질문을 생각하며 대답이 적절했는지 가끔 되뇌어보기도 하는데 더러는 마음에 들지 않지만 그래도 나쁘지 않게 알려준 듯합니다. 이런 아이들의 질문에 밀리지 않고(?) 대답할 수 있는 나름의 이유가 있습니다.

바로 글을 썼기 때문입니다.     


소방관이 되고 나서 언제부터인지 저는 일기를 썼습니다.
작가 제공


특별한 이야기를 쓴 것은 아닙니다. 해마다 지급되는 부산시 공무원 수첩에 그냥 시간 날 때마다 무언가를 적었습니다. 형식도 없고 날짜도 건너뛰기 일쑤였지만, 끄적끄적 제 감정을 써나갔습니다. 시작을 어렴풋이 기억해보니 소방학교 근무 때입니다. 아마 10년 전 같습니다. 교관 생활을 하면서 소방학교 도서를 관리하는 업무도 병행했기에 닥치는 대로 책을 참 많이 읽던 시절이었습니다. 뭐라도 써내는 힘은 아마 그 시절 책을 많이 읽었기에 생긴 거 같네요. 어쨌든 때론 길게, 때론 단어 몇 줄만 나오는 짧은 일기가 내가 쓰기 시작한 글의 시작이었습니다.  

    

딱히 특별한 목적 없는 일기였지만 글은 쓸수록 늘었습니다. 그러다가 목표를 정해 글을 써보았습니다. 평소 읽는 책의 내용이 금방 머릿속에서 사라지는 듯해서 기록을 남기기 위해 서평이라는 것을 써봤습니다. 말이 서평이지 그냥 어설픈 독후감 수준이었습니다. 쓴 글을 블로그에 올려 공유했습니다. 처음으로 내 글을 남에게 보인 것이지요. 내 글을 남에게 내보이는 것에 대한 부끄러움은 없었습니다. 내가 좋아 쓴 글이니 누가 읽어도 그만, 안 읽어도 그만이었거든요. 그냥 저만의 글쓰기 기록쯤으로 여겼습니다. 그러다가 일상을 적어 올리기도 했습니다. 소방관을 일하며 겪는 에피소드도 적어 올렸습니다. 또 그러다가 내 이야기를 써냈습니다.

살아온 이야기, 살아갈 이야기 등등…. 그렇게 블로그는 어느새 수십 편의 글이 모였습니다.      


블로그에 글을 올리는 동안 특별한 경험도 했네요. 친구의 추천으로 인터넷 신문사에 글을 기고하기도 했습니다. 보수를 받는 일도 아니었고 유명한 매체에 나를 알리는 일은 더욱 아니었지만 내 글을 칼럼이라는 형식으로 세상에 내보이는 게 참 고맙고 신기했습니다. 어설픈 칼럼니스트라도 뿌듯함도 생겼습니다.


지금 이 글을 ‘HearO’에 올리는 것처럼 말입니다. 뭐가 되었든 글쓰기가 참 신났습니다. 글쓰기를 배운 적도 없고 문창과(문예창작과)나 국문과를 졸업한 것은 더욱 아닙니다. 단언컨대 글쓰기가 진심으로 재미있고 좋았습니다. 낙숫물이 바위를 뚫는다고 하지요. 그런 글을 모아 작년 1월쯤 책 한 권을 출간했습니다. 고맙게도 많은 사람이 봐주었습니다.

저에겐 기적 같은 일이었습니다. 일기로 시작한 글쓰기가 저를 출간 작가로 만들었습니다.      


김강윤 _ 레스큐


글쓰기는 묘합니다. 쓸수록 나의 감정, 기억, 경험이 혼재되어 글로 표현됩니다.

더 신기한 것은, 그런 글이 누군가에게 보이는 글이라기보다 나를 비추는 거울 같습니다. 또 신기하게도 남이 봐서 좋은 글이 아니라 내가 좋아 쓴 글이 되니 내 영혼이 다스려짐을 느꼈습니다. 표현이 좀 이상한가요? 하지만 사실입니다. 지극히 제 경험에 빗대어 보자면 분명 그렇습니다. 소방관으로서 하루를 살다 보면 내 마음을 들여다볼 시간이 많지 않습니다. 출동, 행정업무, 훈련, 민원응대…. 그런데 글을 쓰면 정말 내가 보입니다. 글이 즐거우면 쓰는 동안 같이 웃고, 글이 슬프면 쓰는 동안 글과 함께 웁니다. 그러다 누가 볼까 흠칫하지만 그러한들 내가 쓴 글은 도망가거나 사라지지 않습니다. 지금도 그렇습니다. 목적은 기고지만 글은 순전히 나를 위해 씁니다. 이기적인 마음이 아닙니다. 감추지 않고 정말 하고 싶은 말을 그저 글로 내보일 뿐입니다. 공감되지 않을 수도 있고 혼자 웅얼거리는 말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괜찮습니다. 두루 인정받지 못해도 내가 쓴 글은 그 자체로 소중합니다.


그래서 전 동료들이 글을 써봤으면 합니다. 내 마음속 감정이 오롯이 투영되는 글을 써보길 권합니다. 제가 써보니 별거 아니란 말은 하지 않겠습니다. 감정 표현에 너무나도 서투른 우리 소방관들에겐 글 쓰는 일이 참 힘든 일이겠다는 걱정도 듭니다. 하지만 뭐라도 써보세요. 일기든 메모든. 연필이나 펜 끝이 종이 위에 사각거리며 굴러가는 감촉을 느껴보길 바랍니다. 그렇게 쓴 글을 보면 학창시절 짝사랑한 누군가를 골목길에서 단둘이 마주치듯 아마 한없이 부끄러울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런 감정이 들었다면 진짜입니다. 진짜 자신을 보게 된 겁니다.   

  

한 때. 모든 것이 어그러져 있던 내 일상에서 내 이야기를 들어 줄 누군가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었습니다. 그때도 글에서 나와 만났습니다. 글을 통해 나의 말을 들었습니다. 이래서 힘들겠구나, 이래서 기분이 좋지 않겠구나 하는 마음을 글로 나타내니 구겨진 일상이 조금은 펴진 듯했습니다. 이렇듯 글은 삶을 치유합니다. 읽어도 좋고 써보면 더 좋은 게 글입니다. 읽는다면 공감이 백 배고, 써 본다면 치유와 성장이 천 배입니다.


내가 글을 쓰는 이유는 그렇습니다. 나를 만납니다. 그리고 다른 이도 만납니다. 그렇게 공감하고 함께 성장합니다. 보잘것없는 내 강의를 듣고 해맑은 눈으로 나에게 질문을 쏟아냈던 어린 학생들에게 그나마 답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나의 기억과 경험을 글로 적어 내 마음에 한구석에 모아 놓았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오늘도 글을 씁니다. 난 소중하기 때문에, 내 기억과 경험도 소중합니다.


부디 많은 동료가 자신의 삶을 써보길 희망합니다.


소방관 상담사에게 고민을 나눠주세요

-작은 고민이라도 괜찮아요, 따뜻한 공감과 전문 상담을 비대면으로 받을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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