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을 보면서도 모른 척해야 했던 이유

별빛 한 줌

by 마들림

환하게 웃고 있는 송아지 한 마리가 어느 아주머니의 손에 이끌려 집안으로 들어온다.

어릴 적, 휘둘리는 소 꼬리에 맞은 기억이 있는 나는 소를 썩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나를 향해 천천히 걸어오는 송아지를 나는 애써 웃으며 끌어안았다.


가슴으로 꾹.


안으면서도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안아줘야 하는 거지?'


내가 꾼 우리 딸 태몽이다.


분만실에서 딸을 처음 품에 안았을 때 기쁘면서도 이상하게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 딸도 이런 힘든 시간을 겪게 되겠지?'


고3이 된 내 딸은

여전히 나에게 가장 소중한 아이지만, 조금은 감당하기 벅찬 순간들도 있었다.


초등학교 6학년 졸업식 이후

우리 딸은 굉장히 힘든 시간들을 어떻게든 버텨내려고 애써왔다.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윌리엄 셰익스피어-


이 철학적인 사고가 내 딸의 소중한 학창 시절을 무섭게 먹어버렸다.


모든 화살이 나를 향해 날아와 내 몸 여기저기 꽂혔지만 전혀 개의치 않았다.

힘들어하는 딸을 지켜보면서 아무것도 모르는 것처럼 행동해야 하는 것이 더 마음 아팠다.

아이는 자신의 상황을 엄마가 조금이라도 아는 것을 끝까지 거부했으니까.


감정은 늘 움직이고 모양이 바뀌는 구름 같다.


시간이 지나 어른이 되어 자신의 학창 시절을 떠올렸을 때, 엄마에게 상처를 줬다는 죄책감으로 또다시 힘들어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한번 더 나를 괴롭혔다.


딸이 부르면 언제든 어디든 가려고 했다.

어떻게든 딸의 그림자 역할이라도 하려고 애쓴 노력 덕분일까?


버스를 타도 옆자리조차 내어주지 않던 아이가 조금씩 조금씩 숨을 고르기 시작했다.

단짝 친구도 만들고 무엇보다 학교 급식을 먹기 시작했다.


딸의 어두운 터널 속에서 별빛 한 줌 보이기 시작한 것만으로도 감사하다.

그렇게 한 걸음 한 걸음 내딛다 보면 주변은 어느새 밝아져 있음이다.

오늘

퇴근하고 들어온 나에게

자신이 개발한 비법소스로 만든 막국수라며 나를 앉혀 먹인다.


막국수가 목에 자꾸만 걸리더니

이젠 국수가 어른어른거린다.


너무 맛있어서

최대한 천천히

오랜 시간

먹고 싶었다.






행복한 시간도

힘든 시간도

결국 지나가고

다시 또 온다.


작가의 이전글새벽에 건너온 아들의 속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