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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보라 Nov 14. 2024

#7. 남이 만든 우물에 내 인생을 빠뜨리다.


연차를 내고 미리 예약해 둔 변호사 사무실 몇 곳을 돌아다녔다. 사무장이라 불리는 사람들에게 내 결혼의 불합리함을 몇 번이나 털어놓고 나니, 점점 내가 더 어리석게 느껴졌다.

'분명 내 인생이었는데... 어느 순간, 남이 만든 우물에 내 삶을 실수로 빠뜨려 버리고는 빼지도 넣지도 못하게 된 같았다.'

그들과 대화를 나누면 나눌수록 내가 당장 무엇을 어떻게 하는 게 옳은지 혼란스럽기만 했다. 


그 사이 아들은 하루가 다르게 성장해 걸음마를 시작했다. 하지만 이혼에 대한 고민으로 마음이 어지러웠던 나는 그 기쁨을 온전히 누릴 수 없었다.  남들 앞에서 단란한 가족을 연기할 자신이 없어 미리 예약해 놓은 돌잔치를 취소했다. 

아들의 한 번뿐인 첫 생일날... 우리는 간단한 돌상을 차리고 몇 컷의 사진만 남긴 채 나는 공연장으로 남편으로 회사로 아이는 어린이집으로 각자 흩어졌다.  


설상가상으로 서울의 전셋값마저 폭등하면서 우리는 기존보다 더 작은 평수의 집으로 이사해야만 했다. 전세 수요가 몰린 탓에 아파트 내부는 보지도 못하고, 쫓겨가듯 재래시장 초입의 좁은 아파트로 옮겨갔다. 새로운 공간은 이전보다 훨씬 비좁고 불편한 느낌이었다. 집 근처 놀이터에 나가려 해도, 머릿 수가 많은 중국 아이들의 과격한 행동에 밀려 마음 편히 아들을 데리고 나갈 수도 없었다.


그와 나는 오래전부터 함께하는 미래는 포기한 듯, 마치 서로에게 상처를 주기 위해 태어난 이들처럼 행동했다. 주말 출근이 있을 때마다 아이를 누가 돌볼 건인지를 두고 신경전을 벌이고, 각자의 업무 스트레스를 핑계 삼아 끝없는 언쟁과 긴장을 이어갔다.  


"우리 이제 그만하자. 이대로는 더 이상 못살아" 

그는 마치 내 말을 예상이라도 한 듯, 별로 놀라지도 않았다. 대신 그날 이후 그는 세입자처럼 자기만의 방에서만 생활했다. 

집안일이나 아이를 돌보는 일은커녕, 퇴근 후엔 자기 방에 틀어박혀 늦은 밤까지 TV를 보며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우기 일쑤였다. 우연히 그의 방을 볼 때마다, 갖가지 쓰레기와 옷가지가 나뒹구는 방 안 광경에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마치 쓰레기 더미 속에서 살기로 결심한 사람처럼, 한번 들인 물건은 꺼내지 않았고, 청소나 정리 또한 자주 하지 않았다. 


내가 이혼 얘기를 꺼낸 후로... 충돌할 상황이 생기게 되면 아이가 있든 없든 상관없이, 날카로운 말과 물건들이 주고받았다. 과격한 동네 분위기 덕분인지 우리가 밤새 소리를 지르며 싸워도 그 누구 하나 민원을 제기하지 않았다. 그렇게 우리는 부부로서의 모습을 도저히 회복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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