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당신 인생의 주인은 오직 당신뿐이다.
이혼 후 10년 #8
결국 나는 예전에 만났던 변호사 중 내 이야기를 가장 잘 이해해 줬던 변호사를 찾아 이혼 소송을 의뢰했다.
내 결혼 생활 기간 동안 겪은 내 고통과 불합리함을 증명할 사진과 문자, 정황들을 수십 장의 소장으로 정리하면서 많이 아파했다.
몇 년 제대로 살아보지도 못했는데, 이렇게 헤어져야 할 이유가 많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제가 소장을 작성한 게 언제인데, 도대체 왜 이렇게 오래 걸리는 거예요?”
내가 소장에 쓸 사유만 빨리 작성하면 일사천리로 소송이 진행될 줄 알고, 며칠 밤을 새워 작성했는데... 생각보다 절차는 오래 걸렸다.
소장을 완성하는 것부터, 같은 공간에 살고 있는 남편에게 소장을 전달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어렵게 소장이 전달된 후에도 그의 답변서를 받기까지는 또 한참의 시간이 걸렸다.
그렇게 몇 개월이 지나던 어느 날, 퇴근 후 집에 도착해 보니 우편물 통지서가 붙어 있었다.
발신자는 <서울가정법원>, 원고인 남편이 피고인 내 앞으로 보낸 이혼청구서였다.
남편은 오히려 적반하장으로 이 결혼의 파탄 사유가 모두 나 때문이라고 주장한 진술서를 써놓았던 것이다.
우리는 수개월 동안 서로의 감정 쓰레기를 담은 소장과 답변서, 증거서류들을 주고받으며 감정의 생채기를 내는데 열중했다.
그러는 사이, 아들은 제법 말도 통하고, 데리고 나갈 수 있을 만큼 자라 있었다.
주말 근무를 해야 하는 날이면 나는 아들을 챙겨서 극장으로 갔다. 함께 일하는 국내외 스태프들이 유아동반관람실에서 혼자 놀고 있는 아들을 함께 돌봐줬다.
나는 밤새 남편과 싸운 날에도, 이혼 준비로 몸과 마음이 지쳐 있을 때도, 아이를 맡길 곳이 없을 때도... 나는 커리어를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법원으로부터 이혼조정기일이 잡혔다는 통보를 받았다. 어려운 과정 끝에 만난 조정위원들이 양측의 입장을 듣고는 가족상담센터를 통해 부부 갈등을 해결하기 위한 상담을 권유했다.
주거지 근처의 OO가족지원센터를 찾아 여러 차례 상담을 받았지만, 서로 거부감을 느끼던 탓에 함께 하는 상담보다는 개별 상담이 이루어졌다. 각자의 생각이 너무 달라 상담을 해도 우리가 해결해야 할 깊은 문제는 여전히 풀리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제로 받게 된 상담에서 얻은 수확은 아무런 노력 없이 헤어지는 것보다는 제대로 된 상담을 받으면 관계를 회복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이 생긴 것이다.
남편과 나는 열심히 인터넷을 뒤져서 부부 솔루션으로 유명하다는 정신과 의사를 찾았다. 각자의 성향과 심리 평가 및 정신과적 진단을 위해 종합 심리 검사를 진행했고, 수십만 원이 든 심리검사 결과지를 받은 후에야 본격적인 의사와의 상담이 이루어졌다.
시간당 책정되는 상담료의 압박 속에서 속사포처럼 쏟아낸 나의 말을 다 들은 의사가 한마디 던졌다.
“왜 XXX님의 인생의 주도권을 자신이 아닌 시어머니나 남편에게 내어줬습니까?”
내가 이 결혼을 지속할 수 없다고 느끼는 이유 중 80% 이상이 그들의 역할을 당신이 가진 인생의 권한보다 과도하게 내어줘서 쉽게 휘둘리고 상처받은 것이라 했다.
“그들은 당신과 인생을 함께 하는 동반자일 뿐이지, 주인이 아닙니다.”
그 말 한마디에 내 모든 고민이 일순간 사라지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수십만 원의 병원비를 결제한 영수증을 받아 든 나는 “저게 해결책라면 나도 의사를 할 수 있겠다.”라며 남편에게 투덜거렸다.
‘다름을 틀림이라고 착각하는 탓에 타인을 쉽게 이해하지도 수용하지도 못한다’라는 것... 그래서 많은 부부들이 작은 충돌에도 쉽게 이혼을 결정한다고 얘기했다.
우리 부부의 문제가 다른 부부들보다 더 심각하진 않다는 사실에 위로를 받으며 우리는 오랜만 함께 웃었다.
제대로 된 상담을 마무리하려면 소송비용만큼 나올 것 같다며 농담을 주고받기도 했다.
결국 우리는 소송을 관두기로 하고 다시 잘 살아보기로 마음먹었다.
서로의 보낸 소장에 각자의 불만은 충분히 나와있었고, 서로의 요구사항을 듣고 협상하기로 했다.
그렇게 우리는 다시 귀여운 아들을 둔 행복한 가족이 되어보기로 마음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