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이 되자 어머니는 아버지의 생일날을 챙기기 시작하셨다.
어디선가 '돌아가신 뒤 맞는 첫 번째 생일에는 상을 차려야 한다'는 말을 들으시고는, 혼자서 장을 보러 다니셨다. 좋은 소고기를 사기 위해 시외까지 5일장을 다녀오셨다는 어머니는 무거운 장바구니를 들고 다섯 번이나 갈아타셨다는 푸념을 늘어놓으셨다. 그렇게 시장과 마트를 오가며 가장 좋은 배와 사과를 고르시고, 살아생전에는 한 번도 사드리지 못했던 가장 굵은 딸기까지 사다 놓으셨다.
그러다 생일을 앞두고 계단에서 넘어지셔서 콧잔등에 퍼렇게 멍이 들었다.
“아이고, 재수가 없어서 그런지 계단에서 엎어지기까지 했네. 그래도 앞니 안 깨진 게 다행이다.”
아무렇지 않게 하시는 말이었지만, 그 말끝이 무거운 엄마의 마음을 대변하는 듯했다.
그날 새벽, 나는 꿈에서 오랜만에 아버지를 만났다. 1년짜리 교육을 마친 아버지의 수료식에 어머니와 함께 참석한 꿈이었다. 허겁지겁 택시에서 내려 행사장으로 올라가는 계단에서, 평소 아버지가 즐겨 입던 옷가지가 벗어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식장에 들어서자 단정한 차림의 아버지가 우리를 반갑게 맞아주셨다.
팔순이 넘은 나이에 교육을 모두 마치신 것이 대단하다며 칭찬해 드리니, 아버지는 환하게 웃으셨다.
축하 공연이 시작되고 하얀 얼굴에 고깔모자를 쓴 연주자가 피리를 불기 시작했다. 이내 커튼 뒤에서 여러 명의 연주자들이 줄지어 등장해 흥겹게 연주를 이어갔다. 뒤늦게 도착한 작은 오빠네는 예쁜 꽃을 들고 있었다. 어느 순간 아버지를 돌아보니, 돌쟁이 손녀를 안고 기분 좋게 공연을 즐기고 계셨다.
마치 천국에 도착한 뒤의 적응 수련을 모두 마친 사람처럼, 아버지의 얼굴은 유난히 편안해 보였다.
다음 날 아침, 어머니께 전화를 드렸다.
“엄마! 어제 다친 데는 괜찮아?”
갑작스러운 사고에 많이 놀라셨을 엄마를 위로하기 위해 어젯밤 꿈 이야기를 길게 전해드렸다.
“엄마, 아빠가 천국에 잘 가신 게 분명해. 어젯밤 꿈에 엄마랑 수료식까지 다녀왔어.”
어머니는 연신 신기하다며 맞장구를 치셨고, 잠시 목소리가 한결 가벼워졌다.
아버지 생신인 일요일, 다친 얼굴이 부끄럽다며 교회에 가지 않겠다는 어머니를 모시고 함께 교회에 갔다. 예배를 마치고 나오는 길에 친한 목사님을 만나, 어머니가 아침부터 차려놓고 나온 아버지의 생일상 이야기를 전했다.
“미우나 고우나 함께하신 세월이 많아서 오늘을 그냥 넘기기 힘드셨나 봐요. 이미 천국에서 더 좋은 음식 드시고 계실 텐데, 차려놓으셔도 내려와 드실 수는 없으니 아버지 생일상은 올해까지만 차리세요.”
목사님의 따뜻한 위로의 말에 어머니는 식은땀인지 눈물인지 모를 것을 연신 닦으시며 조용히 웃으셨다.
같은 날 오후, 나는 헛헛한 어머니의 마음을 달래기 위해 아이들과 함께 겨울 바다에 가자고 제안했다.
아버지가 살아 계실 때 자주 찾던 곳이라, 어머니는 걷는 내내 추억을 하나씩 꺼내놓으셨다.
“그때는 힘들어서 제대로 걷지도 못하시고, 여기 앉아 계셨는데….”
나는 일부러 익숙한 길을 벗어나 조금 떨어진 곳의 새로운 해안가로 차를 돌렸다.
어머니도 손자들과 함께 낯선 바다를 바라보며 한껏 기분이 풀리신 듯했다.
“맨날 와도 이런 데가 있는 줄 몰랐네. 올여름에는 여기서 보내면 좋겠네.”
저녁이 되어 온 가족이 모였다.
일주일 내내 어머니가 조용히 차린 아버지의 생일상을 맛있게 먹고, 생일 케이크를 마주했다.
우리는 주인 없는 생일 케이크를 두고, 축하 노래까지 불렀다.
“어머니! 아버지 대리인이시니까 초를 끄세요.”
며느리들의 장난스런 이야기에 어머니는 후~ 하고 초를 끄시며 한마디 하셨다.
“아이고, 내년부터는 생일상 안 차릴란다.”
그제서야 아버지가 천국에서 잘 지내고 계시다는 확신이 드셨는지 어머니는 환하게 웃으셨다.
우리도 천국에 가신 아버지 덕분에, 오랜만에 서로의 안부를 묻고 웃으며 그렇게 충만한 하루를 잘~~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