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급의 대가

by 누구니

얼마 전, 겸임교수 겸직에 동의했던 대표이사는 경영팀장이 찾아와 이사장의 허가를 받고, 위원회의 승인을 받아야한다는 복잡한 겸직 허가 과정을 듣자 입장을 바꾸었다.

선출직의 왼팔쯤 되는 대표이사는 이사장에게 직접 가서 팀장의 겸직 허가를 받아올 자신이 없어 보였다.

대신 직원을 시켜 지난해 나의 토요일 근무표를 뽑게 했다.

업무 특성상 토요일 근무가 많은 팀장에게는 공식적으로 외부 겸직을 허가할 수 없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나는 분명 주5일제 회사에 다니고 있다.

그러나 토요일 시간외 근무가 상시적으로 이루어지는 관리자이기 때문에 겸직을 허가할 수 없다는 설명은 쉽게 납득되지 않았다.

지난해 임산부 직원과 결혼을 앞둔 직원이 있어 주말이나 야간 행사를 나 혼자 감당해야 할 때가 많았다.

그런 상황을 안타까워하기는커녕, 앞으로도 계속 그 역할을 해야 할 사람이기 때문에 다른 일은 허가할 수 없다는 말이 더 갑갑하게 다가왔다.

“행사장에서 누군가 다치기라도 하면 당장 병원에 달려가 책임을 져야 하는데, 외진 학교에서 강의하다가 어떻게 5분 만에 뛰어오겠느냐?”

“중대재해처벌법 대상이 되는 상황이면 담당 팀장이 어디 있었느냐고 추궁받을 텐데, 그걸 알면서 어떻게 이사장한테 허락을 해달라고 얘기를 하겠느냐?”

경영팀장과 대표이사는 매년 수백건의 공연과 행사를 감당해온 내가 지난 5년간 한번도 겪지 않았던 최악의 상황들을 나열하며 겸직 불가를 말했다.


두 명이 동시에 나를 겁박하듯 몰아가는 상황에서 나는 더 이상 설 자리를 찾기 어려웠다.

이런 사정을 대학에 전하자, 나에게 겸임교수를 제안했던 학과장은 직접 대표이사를 찾아뵙고 허락을 구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대표이사는 학과장을 만나는 것 자체를 거부했다.


오늘은 우리 시에서 가장 똑똑하다고 소문난 공무원에게 자문을 구했다.

이사장이 아니라 대표이사의 허가만 받으면 된다는 내부 규정을 들고 다시 대표이사를 찾아갔다.

잠시 의아해하던 대표이사는 경영팀장을 불러 다시 절차를 확인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대표이사가 승인하면 된다는 규정과 이사장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는 정관의 내용이 달라 여전히 이사장의 허락을 받아야한다며, 여전히 허락할 수 없다고 했다.

결국 나는 무급으로 하면 괜찮겠느냐?고 물었다.

팀장은 무급이라도 겸직 허가를 받아야한다는 어제의 입장과는 달리, '무급이면 조용히 취미생활하는 걸로 하면 않되겠냐?'며 대표이사와 경영팀장은 미적찌근한 묵시적 동의를 해주었다.

학교에 다시 확인하니, 학과장은 겸임교수는 교육부에 명단이 보고되는 공식적인 직위라 무급으로 맡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했다.

결론적으로 지금의 상황에서는 내가 겸임교수를 하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었다.

대신 다음에 연속적이지 않은 특강이나 다른 형태로 강의를 해주면 좋겠다며, 오히려 나를 위로했다.


전화를 끊고 나니 괜히 서글퍼졌다.

공무원 급여에서 5%나 부족한 그 월급 때문에, 내 인생 전부가 저당 잡힌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정녕 이곳에서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없는 것일까.

지역을 위한다는 공공기관의 사명에도 불구하고, “대학에서 사람을 왜 빼가려고 호시탐탐 노리느냐”는 대표이사의 옹졸한 말이 자꾸 귓가에 맴돌았다.


‘정말 이곳에는 비전이 없구나’라는 생각이 들자,

공공문화기관이라는 간판 아래 주말이고 야간이고 직원들의 노동을 당연시 하는 곳...

직원들의 역량을 키울 생각은 없으면서, 매년 젊은 직원들이 이기적인 이유로 줄퇴사를 한다며 한탄만 하는 회사...

‘차라리 찬바람을 맞더라도 회사를 그만둘까?’ 하는 마음이 불쑥 올라왔다.


그러다 다시 마음을 다잡았다.

지혜롭게 이곳에 머물면서 박사 과정을 밟고, 스스로를 무장하고 나가는 것도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나마 이번 일의 소득이 있다면,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분명히 알게 되었다는 점이다.

‘그래... 이곳에 있는 동안 내 인생을 가장 값지게 만들어보자’ 며 애써 삐뚤어진 마음을 다잡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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