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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보라 Nov 28. 2024

#17. 새로운 곳에서 새 출발을 해볼까?

이혼 후 10년 #17

“감독님! 일전에 인터뷰해 주신 내용을 잘 다듬어서 드디어 책이 나왔어요! 한 권 댁으로 보내드릴 테니까 찬찬히 봐주세요~”하고 연락이 왔다.  

일전에 둘째 아이를 출산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공연 관련 전문 서적에 실린다는 인물 인터뷰에 응한 적이 있었다.


잔다르크 같은 이미지로 종횡무진 국내외 굵직한 작품을 해내는 젊은 여성 리더, 이제는 '행복한 결혼 생활 중 맞이한 두 아이의 출산과 함께 그 어렵다는 일과 가정을 잘 꾸려가고 있다'는 내용이 실려 있었다.      

그 책을 보자마자 쥐구멍이라도 숨고 싶었다. 내가 이혼했다는 사실을 알면, 그동안 강의를 통해 만나왔던 학생들과 교수님, 그리고 업계 관계자들이 모두 이렇게 말할 것 같았다.

 

“그럼 그렇지... 이 일을 하면서 정상적인 가정을 이루는 건 불가능이지... 어쩐지 잘난 척한다고 생각했어”

결혼과 일에 실패한 지금의 현실과 업계에서 내가 쌓아 올린 이미지, 그 사이를 실감할 때마다 오만했던 지난 내 생각과 행동들을 후회했다.        


그러던 차에 서울에서 4시간 이상 떨어진 한 도시에 거대한 복합아트센터가 생겼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미 초기 센터 설립을 위해 중앙의 많은 전문예술인들이 대거 참여를 했고, 개관을 앞두고 상당히 많은 직원들을 채용할 것이라고 했다.      


‘차라리 새로운 곳에서 새 출발을 해볼까?’     

복직 후, 동료들로부터 갑자기 회사가 어려워진 이유를 자세히 듣게 되었다. 내가 출산 휴가를 간 사이 외국 스태프들이 요구한 세부 내용들을 제대로 이행하지 못한 탓에 브로드웨이 신작 프로젝트가 다른 회사로 넘어갈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이었다.

물론 현실적으로 진행할 수 없었던 여러 가지 기술적인 문제가 있었겠지만, 중간에서 끝까지 조율하지 못하고 떠나버린 내 책임만 크게 보였다. 그 프로젝트 이후, 회사로 줄을 잇던 작품들의 의뢰가 뚝 끊긴 듯했다.


더 이상 내가 맡을 수 있는 업무도 많지 않은 상황에서 나의 대체 근로자와 나를 함께 끌고 간다는 것은 회사 입장에서 부담스러워 보였다.

인턴시절부터 13년 가까이 몸을 담아 온 직장이었기에 그 부채 의식이 더 크게 다가왔다, 육아휴직 기간 동안 매월 통상임금의 100%를 계속 채워서 보내 주신 대표님께 너무나도 죄송스러웠다.  

그래서 용기를 내어 말을 꺼냈다.      


“대표님... 저 00 도시에 있는 아트센터에 시험을 쳐볼까 합니다”

그렇게 나는 새로운 곳에서 떨리는 새출발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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