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중요한 일이 있어서 가야 해요.
이혼 후 10년 #18
13년 만에 본 압박 면접을 호되게 당하고 서울로 올라오는 길에 나도 모르게 서러움에 눈물을 흘렸다.
그래도 결과는 " 합격"이었다.
오랫동안 함께 한 가족 같은 동료들과 아쉬운 작별을 했다.
"미안하지만 회사가 좀 어려워서... 퇴직금으로 회사주주가 되면 어때?
갑작스러운 퇴사에 미안한 마음도 컸기에 대표님에게 그러겠다고 했다.
눈이 펑펑 쏟아지던 날...
내 차가 터질 만큼 필요한 짐을 가득 싣고 나 홀로 이사를 했다. 처음 해보는 장거리 운전에 눈까지 도로에 얼어붙어 차가 헛돌기도 했다. 통행료를 내기 위해 내밀었던 내 손을 순간 망각하고 창문을 올려 다칠 정도로 정신없이 내려왔다.
새로운 나의 일자리가 있는 도시는 온통 흰 눈으로 둘러 쌓여있었다. 어디가 어딘지 구분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근무지가 워낙 광활한 덕에 공연장과 사무실만 오고 가는데 족히 20분은 걸렸다.
낯선 직원들과 서먹한 첫 주를 보내고 드디어 아이들을 보러 가는 날이 왔다.
"어... 어... 알았어..."
끝도 없는 친오빠와의 통화를 겨우 끊고 휴게소로 막 들어서려는데 뒤에서 강한 충격이 느껴졌다.
뒤따라오던 25톤 트럭이 내 차의 후미를 박은 것이었다.
뒤 범퍼는 수습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지만 그래도 나는 차에서 몸을 내려 움직일 수 있었다.
심한 충격을 받았기에 당장 입원을 해야 했지만 인근에는 가능한 병원이 없었다. 결국 보험사직원의 도움으로 나는 다시 KTX를 타고 직장이 있는 도시로 와서 입원을 해야 했다.
'이제 큰 사고를 겪어도 마음 편히 전화할 곳이 없구나'
이제는 정말 혼자라는 것을 다시 한번 실감했다.
밤을 새워 혼자 짐을 실으면서... 환송해 주는 이가 아무도 없던 서울을 떠나오면서... 그리고 내 생애 첫 교통사고를 겪으면서... 앞으로 내가 감당해야 하는 모든 일들이 만만치 않다는 것을 실감했다,
하지만 나는 괜찮다. 언제나 그랬듯이 그냥 주저앉아 울지 않을 것이다.
병실에 있는 동안에도 나는 당장 다음 주 월요일에 전 직원들 앞에서 해야 하는 신입직원 PT를 준비하는데 몰두했다.
낯선 병실에서 겨우 이틀을 함께 보낸 어르신들이 정겨운 사투리로 말을 걸어왔다.
"아이고... 아가씨! 그 몸을 하고 새벽부터 어딜 가는겨? 아직 퇴원하면 안 돼야!"
"제가 입사한 지 얼마 안 돼서요... 오늘 중요한 일이 있어서 가야 해요!"
그렇게 나는 월요일 이른 새벽에 다시 옷을 차려입고 출근길로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