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 꿈이 현실이 되다!
이혼 후 10년 #30
매일 밤 하던 확언 일기에 이렇게 썼다.
“나는 고향에 있는 공공기관에서 취업했다.
”나는 주일마다 드림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고 있다.”
새로운 목표를 정하고, 열심히 해당 시의 홈페이지 일자리 정보란을 틈틈이 살펴보았다.
한 달쯤 지났을 때, 문화예술회관의 7급 임기제 공무원과 지역문화기관의 계약직 팀장 공고를 동시에 보게 되었다.
서울에서 뮤지컬 관련 일을 할 때는 나름 총괄 감독으로 부장급이었지만, 공공기관으로 이직한 후에는 팀장 바로 아래 중간 직급으로 일하고 있는터라 어디에 지원하는 게 더 승률이 높을지 가늠하기 어려웠다.
두 자리 모두 채용 기간에 대한 한계가 있었기에 딱히 미래가 밝다고 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어떤 일을 하고, 어떤 직급으로, 얼마나 질 좋은 자리를 찾느냐보다는 일단 고향으로 돌아오는 것이 시급했기에 확률이 더 높은 쪽을 고민하게 되었다. 예전에 지금의 일자리를 구하기 전에 서울의 한 문화기관에 제일 낮은 직급으로 시험을 봤다가 과한 경력 때문에 고배를 마신 적이 있었기에 더욱 신중해야 했다.
특히 팀장직이 나온 고향의 문화기관은 내가 야외축제를 담당하면서 기관 교류도 하던 곳이라, 이번에 괜히 시험만 봤다가 떨어지기라도 한다면 소문이라도 날까 봐 괜히 걱정이 되었다.
"둘 다 기간이 정해져 있다면, 기왕에 이직할 거면 높은 직급에 도전하는 게 낫지!"
공무원으로 고향에서 일하고 있던 친오빠의 조언에 용기를 내어 결국 두 곳 모두에 응시하기로 했다.
필기시험 때까지 얼마 남지 않은 기간 동안 내 고향의 지역문화와 예술여건 등에 대한 공부를 열심히 했다.
얼마 후, 바람이 매서운 어느 날... 내가 다니던 옛 중학교에서 필기시험을 보게 되었다.
오랜만에 다시 오게 된 학교 정문에서 나도 몰래 감회 젖어 배회하다가 시험 담당 직원들과 마주치게 되었다.
그중에는 예전에 축제 관계자로 우리 회사와 업무 교류를 했던 낯익은 얼굴도 있었다.
민망한 마음에 수줍게 인사를 하고, 얼른 교실로 들어와 앉았다.
"이 나이에 예전에 다니던 중학교에 와서 다시 시험을 보다니..."
약간의 씁쓸한 기분과 함께 옛 추억이 함께 떠올랐다.
시험 시작종이 울리고, 나는 온 신경을 곤두세워 문제를 풀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보는 논술 시험이라 많이 긴장되었지만, 무엇보다 꼭 붙어야 한다는 생각이 더욱 강했다.
8시간씩 버스를 타지 않고, 마음만 먹으면 매일 아이들을 볼 수 있는 기회가 이 시험에 달려 있다고 생각하며 나도 몰래 떨리는 손을 부여잡고 답안지를 채워나갔다.
다행히 필기시험은 무사히 통과했다. 이제 남은 건 면접뿐!
'상업적 공연에서의 기술 업무 경력과 공공기관에서의 기획 경력을 쌓은 내가 이제는 고향으로 돌아와 지역의 문화예술 업무를 하게 되다니!'
아직 합격한 것도 아니었지만, 스스로 변화무쌍했던 나의 지난 날들이 나름 자랑스러웠다.
기본적인 지역문화 용어들과 익숙해지는데 조금 시간이 걸리고, 낯설기도 했다.
하지만, 내가 자란 고향에서 어린 시절에 느꼈던 문화예술에 대한 결핍을 이 일을 통해 조금이나마 해소할 수 있다는 생각에 나도 모를 사명감으로 가슴이 뜨거워졌다.
마침내 면접 당일! 나는 긴장된 마음을 다잡고 면접장에 들어섰다.
화난 표정으로 둘러앉은 면접관들은 나에게 '이직을 하려는 사유가 무엇인지?
내가 이 직무에 적임자인지? '
등등 날카로운 질문들을 쏟아냈다.
"고등학교 이후 긴 시간 동안 서울과 지금의 직장에서 열심히 쌓아온 제 커리어를 이제는 고향의 문화예술을 발전시키는데 쓰고 싶습니다."
모든 질문에 나의 진심을 담아 답하려고 애쓴 덕분인지 면접관들의 얼굴은 점점 밝아지기 시작했다.
며칠 후, 같은 날 두 기관의 합격자 발표가 있었다.
팀장으로 시험 본 기관은 합격 소식이 들려왔지만, 다른 곳은 불합격이었다.
그래도 이제 마음만 먹으면 ' 아이들을 매일 볼 수 있는 가까운 거리에 살 수 있다'는 생각에, 나도 모르게 감사의 눈물이 흘렀다.
어린 시절 그토록 떠나고 싶어 발버둥 쳤던 고향을 이렇게 간절하게 돌아오고 싶을 줄은 미처 몰랐다.
"나는 매일 고향의 공공기관에서 일하며, 매주 드림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고 있다."
이 기도가 이루어지기까지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내가 제대로 기도를 한지 2개월만에 정말 내 꿈이 현실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