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가 너무 긴 나에겐 한 가지 스트레스가 있다.
하루 종일 사무실에 갇혀 있는 시간들이다.
해야 할 일이 있긴 하지만 그 일을 즐기지도, 함께 하는 이들과의 시간을 즐기지도 못한다.
어떻게 하면 하루를 잘 버틸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 나의 근무시간을 가득 채운다.
이미 이 회사에서 5년을 보낸 덕인지, 업무들은 더 이상 어려울 것도 새로울 것도 없다.
직원들의 갑질 신고로 강제 부서 이동을 당했을 때는 기존의 사업을 갈아 엎고, 새로운 사업을 기획하는 보람이라도 있었지만, 어느 정도 안정기를 접어든 지금은 무료하기만 하다.
내가 그토록 꿈꿔왔던 일도 아니고, 고향에서 애들 키우며 살려고 구한 직장이다보니 더욱 열정을 잃어가는 것 같다. 그나마 외부의 다양한 기관에서 강의나 심사 등을 요청해 와서 새로운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모르던 분야를 배우게 되면 나름의 보람은 있다.
지금의 나에게 문제는 직장 동료들과의 관계다.
몇 년 전 내가 생각지도 못한 일들이 쌓여 부하직원들로부터 갑질신고를 당한 후로는 그 누구와도 1대1로 관계를 맺거나 진심을 터놓을 수가 없게 되었다. 팀장으로 일을 하기 위한 나름의 적당한 선을 긋고, 최소한의 관계는 유지하기 위해 노력을 하고 있는 정도이다. 한달에 한번은 팀 점심을 먹고, 매주 화요일에는 직원들에게 커피메뉴를 받아서 직접 배달해주며 팀회의를 한다. 하지만 딱 그까지...그 외의 식사시간들은 오롯이 혼자 보내며 업무상의 만남이나 팀원들과 대화는 나누지만, 그외의 사적인 자리는 하지 않으려 한다.
그런 기간이 길어서인지 어느 순간부터 소수의 직원들과 따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큰 공포가 되었다. 그들에게 나의 결혼이나 육아 이야기를 가볍게 털어 놓기엔 내 머릿속으로 맞춰야 하는 알리바이들이 너무 많았다. 그래서 점점더 그런 자리를 피하게 되었다. 어쩔 수 없이 연가나 조퇴로 자리를 비워야할 때 집안 얘기를 가끔 언급하기도 하지만, 그때도 여전히 ‘아이’와 ‘부모님’은 내 이야기 속에 등장해도 ‘남편’은 등장하지 않는다.
입사 초기 술자리에서 팀 회식 자리에서 술을 잔뜩 먹은 남자 직원이 나에게 이런 말을 용기있게 던졌다.
“팀장님! 사람들이 팀장님 이혼한 거 아니냐고 하던데요?”
가슴이 콩알만해진 나는 흔들리는 동공을 애써 붙들며 되물었다.
“어쩌다 그런 얘기를 하게 됐어요?”
“아니 그러지 않고서는 저렇게 열심히 일할 수가 없다구요. 애도 있고 가정도 있는 팀장님이 어떻게 맨날 집에도 안가고 저렇게 일만 하냐구요.”
내심 안도의 한심을 내쉬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나는 직원들의 뒷말을 감당할 자신이 없구나...사적인 자리에서 개인적인 이야기를 나누기에는 나에겐 숨겨야 할 약점이 너무 많다’
작년에 간단한 안구수술을 하고 난 후, 천장의 강한 LED조명을 피하기 위해 책 책상 위로 ‘개구리 이파리’같은 가림막을 설치했다. 그 아래에 숨어 있으면 위에서 내리쬐는 조명을 피하는 것은 물론 매번 오른쪽 출입구로 들어오는 많은 직원들과 민원인들의 눈빛을 피할 수 있었다. 그리고 수시로 내 옆으로 다가오는 팀원들과 적당한 거리를 둘 수도 있었다.
물론 단점도 있다. 다른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직원들이 와도 내 앞의 직원들과는 대화를 나누어도, 이파리 뒤의 나에게는 와서 인사를 잘하지 않는다. 그것이 편할 때도 있지만, 가끔은 내가 무시당하는 기분이 들기도 해서 마음이 불편할 때도 있다. 하지만 그 이파리는 시각적으로 나에게 안식처를 제공해주기에 포기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 이파리로도 피할 수 없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옆팀의 말소리였다.
하나로 뚫린 사무실에는 총 3팀이 나란히 있다. 그나마 한 팀은 회의 탁자를 사이에 두고 제법 떨어져 있지만, 내가 갑질 신고로 부서를 옮기기 전에 있던 예전의 팀은 마치 한 몸처럼 붙어있다. 입사 이래 단한번도 그 주위를 벗어날 수 없었던 나에게 이런 근무 환경은 큰 스트레스였다. 옆 팀장의 기분에 따라 우리팀의 분위기도 달라지고, 그들의 흥망성쇄에 따라 우리팀의 사기도 달라지는 것 같았다.
나의 부서 이동 이후에 잠시 내자리를 차지했던 남자 팀장은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갑자기 인사도 없이 퇴사를 당했다. 그 이후, 재주 좋은 인사담당자가 재직하면서 다시 팀장 채용 면접을 보더니 두 직급이나 껑충 뛰어 올라 그 자리에 안게 되었다. 채용 계획 직전까지 인사 업무를 담당했던 그 직원은 실질적인 문화 관련 경력은 없었으나 유사 기관에서 근무한 덕에 퇴사 다음날 팀장으로 재입사를 하게 되었다.
솔직히 그녀가 새로운 팀장으로 채용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나는 몇 주간 허탈감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다.
20년의 경력을 쌓느라 전국의 일터를 돌고 돌며 고군분투했었던 나의 지난 날들이 부정당하는 느낌이 들었다. 그녀는 처음하게 맡게 된 팀장업무를 잘해내기 위해 꽤 애쓰는 듯 했다. 크고 또랑또랑한 목소리덕에 나는 그녀가 직원들과 어떤 업무를 하는지... 집안 사정이 어떤지...오늘은 왜 자리를 비웠는지, 어디로 외근을 가는지...실시간으로 알게 되었다.
무엇보다 내가 듣기 불편한 이야기는 그녀의 "남편"이야기였다.
주말마다 시댁에 가는 일, 시어머니와 해외여행을 다녀온 일, 저녁마다 7살짜리 아들을 데리러 간다는 말까지 직원들과 시시콜콜 사소한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그덕분인지 그녀는 직원들과 끈끈한 관계를 형성하는 듯 했다. 어쩌면 입사 전 인사당담자로 일하면서 모든 직원과 고충상담을 하면서 나름의 라포가 생겨서인지도 모르겠다.
어찌됐든 애를 셋이나 가진 그녀는 인간 관계에 탁월한 능력을 가진 듯 했다.
‘사람의 마음을 읽고 어루만져 주는 일’ '직원들에게 사기를 북돋워주는 일'
그녀는 정말 잘했다.
모든 직원들의 경조사를 챙기는 것도 그리고 위로 어린 말을 건네거나 축하의 말을 하는 것...그리고 이런 모든 일들을 남들에게 티나게 하는 것도 아주 잘했다.
그녀의 장기가 빛을 발할수록 나는 점점 더 의기소침해졌다.
작은 조직 안에서 몇 명 되지도 않는 팀장들...더군다나 같은 사무실 바로 옆자리에서 단둘이 비교 당하는 느낌...급기야 어제는 그녀가 외부강의에서 벌어온 수당으로 직원들에게 일할 때 쓰는 가방을 선물해 주었다.
“내가 아르바이트하는 보람이 이런 거지!”하면서 마치 우리팀원들은 보란 듯이 자기들끼리 감사의 인사를 크게 나누었다.
나는 매 명절마다 직원들에게 선물을 나눌때도 다른 팀장들이 불편할까봐 주차장에서 전달했는데...괜히 지난 날까지 후회가 되었다.
어떤 날에는 회사냉장고에서 이런 말이 적힌 케잌을 발견했다.
“우리팀에 서땡땡 외에 다른 팀장은 없어!”
마치 직원들이 이 케잌을 내 면전에 집어 던진 것처럼 나는 하루종일 더 쪼그라 들었다.
다음날 애써 마음을 넓게 쓰고자 그녀에게 아는 체를 했다.
“어제 무슨 특별한 날이었어요?”
“글쎄요. 어제가 제 생일이었나봐요” 웃음...
아무리 그녀의 이런 장점을 보고 한수 배워야겠다 마음을 다 잡아도 은근히 비교 당하는 이 기분, 실시간 생방송에 신경이 곤두서는 이 마음...사소한 일에 받는 무거운 스트레스 때문에 요즘 내가 편치않다.
속으로 끙끙 앓다가 마침 떠오른 방법이 있었다.
얼마 전 육아휴직제도가 바뀌어서 6학년인 둘째 딸을 핑계 삼는다면 1년 간 육아휴직을 신청할 수 있었다.
그래서 딸에게 물었다.
“엄마가 집에서 매일 같이 있으면서 간식도 챙겨주고 공부도 봐주면 어때?”
한참 골똘히 생각에 잠긴 딸은 조심스레 말을 내뱉었다.
“엄마...다른 집 부모님들은 다 맞벌이하는데 우리 집은 아빠도 집에 있는데 엄마까지 놀면 좀 그렇지 않을까?”
며칠 뒤, 케잌에 나홀로 마음을 다친 날, 다시 나의 유일한 친구인 둘째 딸에게 속상한 마음을 털어놓았다.
"엄마 진짜 육아휴직하면 안돼?"
“그 못생긴 아줌마 때문에 엄마가 왜 회사를 그만둬? 엄마 너무 자의식 과잉 아니야?"
딸의 사뭇 진지한 조언에 놀라면서도 나도 모르게 헛웃음이 났다.
'그 어려운 말의 뜻은 알고 쓰는 건가?'
하지만 딸은 그런 나의 반응에 아랑곳하지 않고 갑자기 나의 등을 툭치면 말했다.
"회사 갈 땐 어깨 쫙! 허리 쫙! 고개 쫙! 당당하게 가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