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iris Oct 24. 2015

되돌아 가는 길

잘 못 든 길

길을 잘못 들었던 적이 있었다.  


끝이 뻔히 보이는 길이었다.

처음 길을 나설 때 그 길의 끝이 어떨 거라 예견은 했었지만 나설 당시엔 예견된 결과 보다는 가보고 싶은 마음이 컸더랬다.  아니 가고 싶었다.  걸었다.  아무런 준비도, 각오도, 동행도 없었다.   가고 싶은 마음 하나로 무작정 걸었다. 좋은 날보다는 궂은 날이 많았고, 평지 보다는 경사가  많은 길이었다.


힘든 줄 모르고 걸었다.

동행이 없었으니 가면서 보는 시시콜콜한 꺼리들에 대해 이렇다 할 의견을 나눌 일도 없었다.   

혼자 보고, 듣고, 느끼고,  중얼거렸다.   아름답건 아름답지 않건, 의미가 있건 없건 보이는 모든 것,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처연하게 내 속에 담았다. 가끔은 누구든 잡고 토해내고 싶고 미치도록 동행이 간절하기도 했지만, 내가 그 길을 혼자 걸은 건 지금까지도 잘한 일이라 생각한다.

긴 시간을 걷다가 문득 내 안에서 돌아 가야 할 것 같다고 했다.  그때 돌아가야 했을까?  못 들은 척 했다.   

멈칫했지만 다시 걷고 있었다. 고되고 힘들어 심신이 지쳐있음을 자각했지만  내 몸이 아닌 양 치부하며

걷게 했다.  심신이 지치기 시작하면서 나를 원망하기 시작했다.  


"알면서 왜 나선 건지, 짓무르고 까지면서도 미련스럽게 왜 멈추지 않은 건지."

원망 끝엔 항상 눈물이 났고, 그렇게 우울한 시간이 길어질수록 자학의 빈도가

잦아졌다.  생채기가 났다.  


돌아가야 한다.   돌아가야 했다.

끝도 없는 터널 길에 들고서야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 터널 끝에는 더 이상 길이 없을 것만 같았다.  

더럭 겁이 났다.   왔던 길을 돌아보니 아득했다. 어떻게 온 건지 무엇을 본 건지 기억 조차 없었다.   

울었다, 며칠을 주저앉아 꺽꺽 대며 울었다.  

여기가 끝인 건가?  내가 예견한 끝은 이게 아닌데... 한참을 울고 나니 또 미련이 남았다.  다시 갈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나는 작아져 있었다.


방향을 돌렸다.  가슴에 구멍이 난 마냥 휘이휘이 바람이 불었다.  세지도 않은 바람이건만 살을 에이는 듯 아팠다. 달랐다.  왔던 길을 돌아서 가고 있는데, 달라져 있었다.  지나왔던 모든 것들이, 어쩌면 나까지도.   

한참을 돌아 가야 했다.   그리고 또 한참을  추슬러야 했다.  그리고  원래 내가 가길에 다시  들었다.  

예전 같지 않았다.  아니 예전 같을 수 없었다.

뭘로도 못 메워질 마음의 천공은 바람이 불  때마다 휘이휘이 소리를 냈고, 그렇게 바람이 올 때마다 신열이 났다.  이러다 잊히겠지.  잠깐 갔던 길인걸.  

물리적인 시간은 되돌릴 수 없고, 기억을  완전히 잊는 것도 불가능할 테지.


힘든 길이었지만 후회는 하지 않았다.  내가 여태껏 가보지 않은 길이었고, 다시 가보지 못할 길일 수도 있으니. 그래도 그 길에서 수십 번 기쁘기도 했으니까.   그걸로 됐다.  


"길을 잘못 들었다. 괜찮다, 돌아가면 된다.  

시간이야 좀 걸리겠지만. "




 ㅣ iris

사진 ㅣ iris

매거진의 이전글 길 잃은 사랑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