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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에게 짜증 안내는 법

by 시안

엄마에게 쉽게 짜증을 내고 또 후회했던 시기가 있었다. 내가 짜증을 낼 때 엄마는 너 말버릇이 그게 뭐니? 하지 않고 멋쩍게 웃었기에 죄책감을 느끼기도 했다. 엄마도 딸을 끝없이 봐준다. 부모님이 일주일 정도 해외여행을 다녀왔을 때 엄마가 키우는 화초가 몇 개 죽었다. 물도 제때 잘 주고 낮동안 햇빛도 쐬라고 블라인드도 항상 걷어두었는데 아무래도 화초도 어찌나 섬세한지 나의 사무적인 태도를 알아차렸나 보다. (어휴 왜 이렇게 많아. 귀찮아 죽겠네..) 아무튼 엄마한테 화초가 죽어서 어쩌냐고 하자 엄마가 신경도 쓰지 말라고 괜찮다고 했다. 엄마는 화초를 정말 사랑하고 정성으로 기른다. 하지만 내가 조금이라도 속상한 것과 비할 건 아닌 거다.



관광안내사라는 일을 한 적이 있다. 시내 주요 관광지에 배치되어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통역 및 관광서비스를 제공하는 일이었다. 그 당시 겨울이 참 추웠다. 영하 20도를 내려가는 날도 있었다. 휴게시간을 갖고 교대로 일하지만 엄청나게 추운 것은 마찬가지였다. 새벽같이 일어나서 나가야 했는데 엄마가 그보다 먼저 일어나 신발에 핫팩을 붙여놓았다. 내가 별로 소용없다고 해도 없는 거보다 낫다면서 계속 붙여놓았다.



엄마는 내가 나가면 맨날 어디냐고 언제 오냐고 한다. 그 말을 평생을 물어봤다. 어디냐고 언제 오냐고. 안 들어온 날도 없는데도 평생 물어봤다. 그러다 문득 생각했다. 지구상에 내가 언제 들어오는지 이토록 관심 갖는 사람이 우리 엄마 아빠 말고 또 있을까. 내가 아침 먹었는지를 평생을 관심 갖는 사람이 또 있을까.



그래서 나는 엄마에게 짜증을 내지 않으려고 정-말 노력한다. 엄마가 짜증을 나게 한다고 하면 그건 당연한 거다. 자식과 부모 간의 세대차이는 서로를 얼마간 이해할 수 없음이 당연하고 서로에게 상식과 비상식이 다르며 가치관에 차이가 있다. 엄마의 행동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고 해도 짜증 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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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가지 팁을 드리자면 부모님을 모시고 해외여행을 갈 때는 나도 가끔 짜증이 난다. 혼자서 통역하고 길 찾고 택시 부르고 주문하고 돈 내고 이런저런 돌발상황을 조율하고.. 동시에 이제 부모님은 덥고 춥고 짜고 달고 힘들고 돈 아까워하기 때문에. 하지만 30년 뒤 우리의 체력을 상상해 보자. 따라다녀 주시는 것 자체가 대단한 게 아닐까. 아무튼 그럴 때는 나도 궁극의 정신력을 모으는데 여행지에서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속으로 '내가 엄마한테 짜증을 내면 사람이 아니다.'라고 세 번 복창한다. 진지하고 단호하게 한다. (ㅋㅋㅋ) 그러고 나면 도무지 짜증이 올라와도 낼 수가 없는 거다.



어디서 봤던 얘긴데 아무리 대단한 사랑을 하더라도 나를 그렇게 빛나는 눈으로 봐줄 사람은 세상에 단 한 사람 밖에 없다고. 어쩌면 오늘이 부모님과 함께할 마지막 날일수도 있다. 부모님과 함께할 시간은 내가 살아갈 날 보다 훨씬 짧을 것이고 그 이후에 우리는 부모님을 그리워하며 얼마간 후회하며 지내게 될 것이다. 이 사실을 기억하니 엄마에게 짜증 낼 수 없다. 어떻게 하면 엄마에게 더 잘해줄까 어떻게 하면 엄마가 더 편할까 그 궁리를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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