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히 행복하게 살지 못했던 사랑에 대해서
[드라이브 마이카]로 유명한 일본의 유명한 영화감독 하마구치 류스케의 영화 [아사코]를 봤다. 플롯이 흔한 것 같아서 크게 기대하지 않았고 하마구치 류스케의 영화를 하나 더 보고 싶어서 봤는데 꽤 재미있었다. 표면적으로는 사랑이야기를 하고 있고 들여다보면 동일본대지진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어느 쪽으로 보더라도 흥미 있는 영화였다.
※ 여기서부터 스포일러 있어요.
여주인공 아사코는 유약하고 수동적인 성격으로 나온다. 과도하게 얌전하다. 그녀의 청초한 미모만으로도 서사가 되지만 그렇다고 해도 너무 캐릭터가 없다. 그러한 아사코가 영화 중반을 넘어서 떠나는 바쿠의 차를 향해 두 손을 힘차게 흔들며 과거에 미쳐 하지 못했던 이별을 고하는 모습부터 아사코가 드러나기 시작한다.
남주인공 료헤이는 좋은 의미로 현실감이 없다. 이렇게 완벽한 사람이 있다고?라는 생각이 들어 극이 진행됨에 따라 흑화 될까 봐 불안해하면서 봤다. 끝까지 최고로 멋진 모습을 보여준다. 아사코와 아사코의 친구가 사진전을 보러 갔는데 입장 마감시간을 넘겨 입장을 하지 못하고 관계자와 실랑이를 벌이고 있자 지나가던 료헤이가 재치와 겸손을 발휘해 입장을 도와준다. 극후반 아사코의 배신 이후 아사코에게는 고양이 진탄을 버렸다고 말하지만 영화 내내 료헤이를 지켜본 관객은 료헤이가 고양이를 버렸을 리 없다는 걸 알고 있다. 결국 고양이를 찾아 헤매는 아사코에게 고양이를 건네주며 아사코도 집으로 들여보내준다.
그리고 바쿠. 히가시데 마시히로가 1인 2역을 연기한다. 남자들에게 평생 잊히지 않는 첫사랑 포지션이 있듯 여자들에게도 스쳐 지나가는 것만으로도 손끝 말초신경까지 활성화되는 핫가이에 대한 로망이 있다. 여자주인공들은 어쩐지 서브남주의 헌신적인 노력에도 핫가이를 선택하고 만다. 아사코와 료헤이는 친구들에게 결혼을 발표하고 축하받는다. 그 자리 료헤이와 똑같은 얼굴을 한 연예인으로 성공한 바쿠가 갑자기 등장한다. 아사코에게 손을 내미는 바쿠. 아사코는 너무도 확실하게 그 손을 덥석 잡고 자리를 떠난다. 영화를 보면서도 두 눈을 의심하는 장면이다. 이게 말이 돼? 료헤이와 함께한 5년의 시간은? 그러면서도 동시에 도파민이 터지고 영화는 갑자기 심리 스릴러로 장르를 달리한다.
어쩐지 한눈에 본능이 끌리는 사람과의 관계는 지속하기 어려운 것 같다. 그랬기에 폭발적으로 설레던 그 감정만 남아 다른 사람은 도무지 그 사람을 이길 재간이 없다. 왜 그럴 수밖에 없나 생각해 보면 강한 끌림은 사랑을 시작하기에는 충분하지만 사랑을 지속하기에는 필요한 것이 더 많기에. 사랑을 지속하다 보면 누구와 함께하더라도 얼마간의 권태, 미래에 대한 압박 등 여러 현실적인 어려움이 찾아오게 된다. 하지만 아사코는 사랑이 가장 반짝반짝 빛나는 순간 바쿠가 돌연 떠나버렸기에 바쿠를 더 잊기 힘들었을 것이다. 바쿠와 아사코가 헤어지지 않고 평범하게 연애했다면 언젠가 아사코는 바쿠의 제멋대로인 성격에, 바쿠는 아사코의 수동적인 태도에 지쳐 머지않아 헤어졌을지도 모른다. 어린 날 그저 사랑하는 감정만으로 충분했던 때, 사랑했고 이별되었기에 아사코에게 바쿠는 너무도 강렬한 존재로 남았다. 진짜 사랑을 착각하고 내던질 만큼.
일본은 과거만큼 잘 나가지 않고 동일본 대지진은 천문학적 규모의 피해를 남겼다. 아사코는 지진이라는 자연재해가 불가항력이듯 바쿠에게 속절없이 빠져든다. 바쿠는 과거 일본의 영광으로 비유되고 이윽고 아사코는 료헤이를 배신하고 다시 돌아온 바쿠를 선택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바쿠는 지진으로 더러워진 바닷물을 보지 못하고 아사코는 드디어 현실을 직시한다.
료혜이는 강물이 더럽다고 말하고 아사코는 그래도 아름답다고 말한다. 료헤이가 아사코를 영원히 믿지 못하겠다고 하는 말은 지진으로 인한 상흔은 계속된다는 의미로 보이고 아사코의 그래도 아름답다는 말로써 그럼에도 수용하고 나아가자는 태도를 보여준다. 일본인들은 자연재해가 언제든 삶의 터전을 쓸어버릴 수 있는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고 많은 작품을 통해 이에 대한 체념에 가까운 수용의 정서를 보여주고 있다.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과거의 영광으로 눈을 돌리지 않고 아픈 현실을 직시하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