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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SP 매우 예민한 사람

by 시안

나는 늘 나를 이해해 보려는 시도를 해왔다. 그래서 정신적 과잉활동인? 내향적인 사람? 직관이 발달한 사람? 여러 가지 카테고리에 나를 조금씩 끼워 맞출 수 있었는데 어? 이건 정말 나와 근접하다.라고 할만한 카테고리를 찾았다. 1995년 미국의 심리학자 일레인 아론 박사가 도입한 개념으로 HSP(Highly Sensitive Person) 매우 예민한 사람이다. 아론에 따르면 인구의 15~20%가 이렇게 예민한 기질을 가지고 있다고 하니 공감하는 분들이 꽤 많을 것 같다. 아래는 일레인 박사가 만든 HSP 테스트인데, 14개 이상의 질문에 해당된다면 HSP기질일 확률이 높다고 한다.






HSP 테스트


1. 강한 감각 자극에 쉽게 압도된다.

2. 주변 분위기의 미묘한 변화를 잘 감지하는 편이다.

3. 타인의 기분에 내 기분도 쉽게 바뀐다.

4. 고통에 유독 민감한 편이다.

5. 카페인에 남들보다 민감하게 반응한다.

6. 바쁜 날들이 지속되면 모든 자극을 피할 수 있는 나만의 공간에서 틀어박혀 지내고 싶다.

7. 단기간에 많은 일이 몰리게 되면 극도로 예민해지거나 혼란에 빠진다.

8. 환한 빛, 자극적인 냄새, 까슬까슬한 재질, 사이렌 소리와 같은 소음 등에 쉽게 압도된다.

9. 내면의 정신세계가 풍부하고 복잡하다.

10. 소음을 유독 견디지 못한다.

11. 미술이나 음악 등 예술에 깊이 동화되는 편이다.

12. 때때로 신경이 너무 날카로워져 혼자 떨어져 있어야 할 때가 있다.

13. 굉장히 양심적이다.

14. 별 것 아닌 일에도 쉽게 깜짝 놀란다.

15. 주변에서 너무 많은 일이 한꺼번에 일어나면 마음이 왠지 모르게 불편해지고 신경이 날카로워진다.

16. 누군가 불쾌함을 느낄 때, 어떻게 하면 그 불편감을 줄여줄 수 있을지 금방 알아챈다.

17. 사람들이 나에게 동시에 여러 가지 일을 시키면 매우 혼란스럽다.

18. 실수하거나 깜빡하지 않으려 신경을 많이 쓴다.

19. 많은 일이 한꺼번에 벌어지고 있을 때 신경이 과도하게 각성되고 마음이 불편해진다.

20. 폭력적이거나 보면 화가 나는 영화나 텔레비전 방송은 잘 보지 않는다.

21. 배가 고프면 집중력이 떨어지고 금방 예민해진다.

22. 생활에 변화가 일어나면 크게 당황한다.

23. 섬세한 향이나 냄새, 편안한 소리, 음악을 좋아한다.

24. 평소에 불편하거나 동요될만한 상황은 미리 피하려 최선을 다한다.

25. 큰 소음이나 혼란스러운 상황 같은 강렬한 자극에 쉽게 지치고 괴로워진다.

26. 누군가와 경쟁하거나 누가 지켜보고 있으면 긴장해서 평소의 실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27. 어린 시절, 부모나 교사에게 '예민하다'거나 '소극적'이라는 소리를 자주 들었다.




나는 23개가 해당되는데, HSP 기질을 가진 사람들 중에서도 극도로 예민한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내가 나를 매우 예민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것은 친한 친구, 직장동료, 지인, 오며 가며 만나는 사람들 대부분 나를 쿨하거나 편한 성격이라고 말해왔기 때문이다. 주로 내가 편안해하는 사람들과 어울렸기 때문에 나의 예민한 모습을 드러낼 일이 없었고, 내가 모든 방면에서 예민하기 때문에 무의식 중에 타인 역시 다방면으로 배려해 왔기 때문이다. 나의 예민함이 장점이 되기도 해서 감정이나 분위기를 잘 파악하기 때문에 사회생활을 하며 어렵지 않게 사람들과 친화적으로 지냈던 것 같다. 오직 나와 아주 가까운 부모님과 남자친구만이 내가 꽤나 예민한 사람이란 걸 알고 있었다.




또 10대 후반에서 20대 후반까지 꽤 긴 시간을 우울감을 기반으로 살아왔기에 내가 여러 가지 상황에 쉽게 취약해지는 것이 '우울해서'라고 생각했다. 계속 취약해지니 그냥 포기하고 계속 낮은 기분상태로 머물러있기로 작정한 것이 그맘때였다. 그리고 한국 사회에서 누가 '나 예민해요.'라고 인정하고 싶겠는가. 하지만 좋고 싫고의 문제가 아니라 나를 더 잘 이해하고 그를 토대로 더 잘 살아가기 위해서 HSP에 대해 파악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이해한다면 해결할 수도 있지 않을까.



3.jpg 유튜브 놀면서 배우는 심리학

유튜브 놀면서 배우는 심리학 '초예민한 사람들이(HSP) 가진 세 가지 특징'의 최재훈 대표의 말을 빌리자면 HSP 기질을 가진 사람들을 굉장히 성능 좋은 안테나로 비유한다고. 보통 사람들의 안테나는 어느 정도 이상의 자극만 잡히기 마련인데 HSP들의 안테나는 성능이 굉장히 뛰어나서 보통 안테나들에서는 잡히지 않는 그런 미묘한 사소한 자극들까지도 다 잡혀버린다고.



나의 경우 청각에 가장 예민한데 층간소음같이 통제하거나 예상할 수 없는 소음의 경우 정말 이성을 잃을 정도로 고통받는다. 조명이 너무 밝아도 힘이 든데 이를테면 어떤 화장실 조명이 너무 밝으면 사용하기 힘들고, 어두운 계열의 옷을 계속 입으면 기분이 내려가기도 한다. 그래서 한때는 내가 강박증인가 생각했는데 매우 예민하다가 더 잘 맞는 것 같다. 좀 더 깊게 가면 공간이나 사람들의 분위기를 읽는 것을 넘어 공기의 분위기를 읽는다. 저 멀리 누군가가 앉아있는 것 만으로 그 사람이 아무 행동을 안 했음에도 그 사람에 대해 느끼곤 한다. 어떤 신기나 감 같은 것이 아니라 예민해서 그렇다.



예민한 사람들은 내 의지와 무관하게 필요하든 필요하지 않든, 중요하든 중요하지 않든,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방대한 정보를 시시각각 빨아들인다. 부정적인 사람이 옆에 있으면 같이 우울해지기 쉽다. 그러니 금방금방 에너지가 바닥나 쉽게 피곤해진다. 그래서 이러한 자극을 최소화하려는 노력을 함으로써 스트레스를 줄이고 에너지를 보전해야 한다. 코로나가 잠잠해진 이후에도 마스크를 계속 착용하는 것이 더 편하다 하시는 분들처럼 아마 나를 포함한 많은 예민한 사람들이 무의식 중에 자극을 줄이기 위한 노력을 해왔을 것이다.



오히려 내가 극도로 예민한 사람인 걸 인식하자 우울감이 줄었다. 내가 우울함을 느꼈던 많은 경우에 어떤 과자극 상태에 노출될 때 그랬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예민하게 느끼는 부분을 파악하고 감정적으로 반응하지 않고 건조하고 신속하게 대처하니 우울감에 빠지는 빈도가 줄었다.



예를 들어 나는 층간소음에 강도에 따라 대처할 수 있는 방법들이 단계별로 있다. 통제할 수 있으면 스트레스는 줄어든다. 그리고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 가능하면 모든 자극을 차단하고 잠시 있으면 스트레스가 내려간다. 집에서는 방으로 들어가 조명을 끄고 귀마개를 하고 이불 속에 들어가 잠시 있는다. 승무원일 때는 기내에서 화장실 체크를 하면서 화장실에서 1,2분 정도 잠시 눈을 감고 숨을 골랐다. 굉장히 잘 죽는 화초를 키운다고 생각하면 될 거다. 이런 나로 사는 게 피곤하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당장 내일부터 극도의 예민함을 거둬준다고 해도 거절할 것이다. 왜냐하면 긍정적인 감정 역시 예민하게 느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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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어빵을 먹으려고 삼삼오오 모여있는 사람들을 보면 어쩐지 귀여워서 웃음이 난다. 엄마가 너는 뭐든 걸 귀여워하는 것 같다고 할 정도다. 6년 넘게 만나고 있는 남자친구를 쳐다만 봐도 여전히 사랑스럽고, 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걸어오는 길에 샀다며 딸기 한 팩이랑 초콜릿 세 개를 줬는데 그게 너무 기뻤다. 다 먹어치운 지 오래이나 아직도 생각하면 기쁘다. 왜냐면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과일이 딸기고 내가 제일 좋아하는 간식이 초콜릿인데 친구가 우연히 그 조합으로 사준게 기뻤다. 마트에 가서 언제든 내가 살 수도 있는 거지만 아무튼 그거랑 다르다! 이렇듯 매우 예민한 사람은 오감에 육감까지 예민하고 열려있어 나 같은 경우는 특히 예술, 음식, 공간이 깔끔하고 미적일 때, 스스로 단정하고 청결할 때 등등 수시로 큰 기쁨을 느낀다. 예민한 사람들이 자신의 특성을 이해하고 외부자극을 조절함으로써 보다 건강한 정신으로 잘 살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또한 모든 것은 양면이 있듯 예민함이 저주가 아닌 신의 선물로 인식해 더 풍요로운 삶을 누렸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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