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이 좋았던 건 딱 초등학교 시절이었던 것 같다. 명절 때면 만날 수 있는 사촌들과 왁자지껄 노는 것이 너무 재미있었다. 두둑이 받은 용돈으로 사고 싶은 것도 사고, 밤에는 문구점에서 폭죽을 사서 삼촌한테 라이터를 빌려 폭죽놀이도 했다.
대학에 들어갈 무렵이었나. 시댁에 꿔다 놓은 보리자루처럼 앉아있는 엄마가 안쓰러웠고, 부모님은 명절이면 어김없이 싸웠다. 왜 남자 어른들은 거실에 앉아서 근엄하게 얘기를 하고 여자 어른들만 분주하게 음식준비를 하는 걸까. 왜 나보다 어린 사촌 남동생은 짐짓 진지한 표정을 하고 제사에 참여하고 나는 안방에서 제사가 끝나기를 기다려야 할까. 누가 예쁘니, 누가 공부를 잘하니, 누가 어디에 취직했니 하는 소리는 꼭 주기적으로 들어야 하는 걸까.
명절에 일가친척들이 한 자리에 모이는 그 자리가 바로 내가 이 생각이 맞나? 이 관습이 맞나? 를 처음 의심한 역사적인 장소였다. 물론 내 자아가 꽤 클 때까지 그 간극 동안은 그 모든 풍경과 말들에 상처를 받기도 했다. 자기 아들 딸 잘난 얘기 좀 하지 말고 자기 잘난 얘기 좀 하면 안 되나? 결혼해라, 애 낳아라 라고 하기 전에 그 사람이 어떤 가치관으로 살기 원하는지 물어볼 수는 없는 건가?
살좀쪄라 하면. 제가 이 체형으로 살고 싶어서 일부로 유지하는 거예요. 한다. 결혼 언제 하냐 하면, 지금 삶에 아쉬움이 없어요 한다. 결혼할 계획이 있지만 언제 할지도 모르고 일 년에 한 번 볼까 말까 한 사이에 그렇게 중대한 가치관을 얘기하고 싶지 않다. 침해받는 기분이 든다. (어른께서 잘 살아오신 시간에 존중을 표하지만 내가 그대처럼 살고 싶다고 한적 없는데 왜 수요 없는 충고를 하세요.)
30대 초반에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는 나는, 어느 정도의 타협 어느 정도의 강행 단계랄까. 아빠를 비롯한 남자 어른들은 내가 선택한 남자가 아니다. 그들을 바꾸는 건 내 과제가 아니다. 우리 모두는 완전하지 않고 나도 유교사회에서 자라며 어느 정도의 구태를 갖고 있다. 동시에 우리 아빠는 그런 옛날사람임에 동시에 정말 멋진 남자다. 성실하고 책임감 있고 모범이 되는 어른이다. 다만 내가 선택한 내 남자는 내가 함께하고 싶은 사람이며 그런 인연이 주어진 것에 감사할 따름이다.
누구든 손님이 우리 집에 왔을 때는 더욱이 엄마가 힘들게 일하게 하지 않는다. 엄마가 혼자 싱크대에 서있는 꼴은 절대 못 본다. 누구보고 도와주라 하지 않고 내가 한다. 엄마가 본인이 꼭 하고 싶어 할 때는 옆에 식탁에 같이 앉아있기라도 한다. 내가 옆에 있는 한, 남은 시간 동안 엄마를 외롭게 하는 일은 없을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