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7월 6일, 월요일, 한국 시각 오후 8시, 날씨 맑음.
아프리카 남수단 파병 출국까지 정확히 일주일이 남았다.
평생에 한 번 아프리카에 갈 기회가 있을까? 게다가 군인으로서 해외파병이라는 특별한 경험을 하게 되다니.
이 흔치 않은 시간을 기록으로 남기고 싶었다. 그래서 어색함을 무릅쓰고, 일기를 쓰기로 했다. 초등학교 졸업 이후로 한 줄도 써본 적 없지만, 그래도 하루하루 꼬박꼬박 써볼 생각이다.
4월 9일, 한빛부대 5진 파병 대상자 명단이 발표됐다. 그리고 사흘 뒤, 4월 12일 저녁.
나는 인천 부평 소재, 수방사 공병단 157대대로 소집되었다.
그날 밤, 생전 처음 보는 이들과 함께 내무실 첫날을 보냈다. 사복을 입은 채, 계급도 나이도 모른 채 마주 앉았지만 모두가 파병 합격의 기쁨과 ‘아프리카’라는 낯선 땅에 대한 긴장감을 함께 안고 있었다.
다음 날, 우리는 강원도 홍천의 1 야전수송교육단으로 이동했다. 거기서 2주간 주특기 교육을 받았다.
4월 27일, 야수교(야전수송교육단) 교육을 마친 뒤엔 인천 국제평화지원단으로 전속되었다.
그곳에서 약 두 달간 파병을 위한 본격적인 훈련을 받았다.
PKO(평화유지활동) 관련 교육, 남수단의 정치·사회 정세, 현지 문화 이해, 기본 훈련과 주특기 훈련까지…
모든 준비가 하나씩 차곡차곡 쌓여갔다.
훈련은 힘들지 않았다. 힘든 건... 외박 통제였다.
출국을 한 달도 남기지 않은 어느 날,
전국에 메르스(MERS) 바이러스가 퍼지면서 전 장병의 외박과 휴가가 전면 통제되었다.
"파병 가기 전에 가족들 얼굴 많이 봐야 하는데!"
갇힌 듯한 생활이 5주 넘게 이어졌고, 결국 환송식도 가족들 없이 진행됐다.
그 시간 동안 임신한 아내, 두 살 된 아들, 보고 싶은 가족들이 하루도 빠짐없이 그리웠다.
'내가 왜 파병을 가겠다고 했을까. 이렇게까지 가족 모두가 힘들어야 했을까. 지금이라도 포기할까?’
수없이 되뇌었지만, 결국 마음을 다잡았다.
장병들의 사기가 바닥에 닿을 즈음, 단장님의 고민 끝에 주말 면회가 허용되었다.
비록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아내와 아들, 부모님, 장인어른, 장모님, 누나네 가족, 외삼촌, 이모 가족까지
모두 얼굴을 볼 수 있었다. 그 짧은 시간이 이상할 정도로 큰 힘이 되었다.
다시,
떠날 준비가 되었다.
출국까지는 이제 단 7일.
이제 정말 아프리카로 간다.
나는 군인이자 한 아이의 아버지로, 한 여자의 남편으로, 그리고 남수단에 작은 희망 하나 심고 싶은 사람으로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