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7. 14. (화), 남수단 시각 21:25, 날씨 : 맑음 (한국 시각 7.15.(수), 03:25)
2015년 7월 14일, 남수단에서의 첫날밤이다.
별빛이 또렷한 이국의 하늘 아래, 나는 이제야 일기장을 펼친다.
짐을 싸며 가방 깊숙이 넣어둔 탓에, 일요일과 월요일은 한 줄도 적지 못했다.
그만큼 정신없고 낯설고, 또 무사히 이곳에 도착했다는 게 어쩌면 가장 먼저 기록되어야 할 사실이다.
우리는 7월 13일 낮,
국제평화지원단에서 서울공항으로 이동했다.
1 제대는 2주 전 떠났고, 나는 2 제대, 이제야 그 뒤를 이었다.
출발 직전, 아내가 부대에 들렀다. 현역 군인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군복을 입은 채 서로 마주한 그 짧은 시간, 우리는 긴 대화 없이도 많은 것을 나눴다.
그 눈빛 하나로.
서울공항에서 대한항공 전세기를 타고 첫 경유지인 두바이로 향했다.
7월 13일 밤 11시 50분, 두바이 공항 도착.
비행기는 2시간 정도 주유를 한 뒤 다시 하늘로 날아올랐다.
두바이에서 출발해 우간다, 엔테베 국제공항에 도착한 시간은 7월 14일 오전 6시 10분,
드디어 아프리카 대륙의 공기를 느껴본다.
여기서 비행기를 갈아탔다.
타고 간 대한항공 비행기는 너무 커서 남수단에 착륙할 수 없다.
사피르 항공의 작은 비행기로 갈아타고 오전 9시 30분에 출발, 오전 11시, 남수단의 수도, 주바에 도착했다.
하늘에서 내려다본 남수단은 왠지 한국의 시골 같은, 낯설지 않은 풍경이었다.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메르스와 에볼라 검사를 받았고, 대기 중에 ‘마이뇰’을 만났다. 방글라데시에서 파병 온 운전병.
이곳에서 8개월째 병력 수송 임무를 맡고 있다 했다. 서툰 영어와 손짓 발짓으로 그가 한국을 좋아한다고 했다. 왜인지는 끝내 묻지 못했다.
그는 한국어를 몰랐고, 나는 그의 언어를 몰랐기에.
그래도 짧은 만남이 어쩐지 따뜻했다.
그가 떠나고 한 시간쯤 흘렀을까. UN 관계자가 다가와 무전기를 건넸다.
“버스 운전 좀 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예상치 못한 임무였다.
헬기 탑승장까지 UN군들을 수송해야 한다는 말에 나는 얼떨결에 운전대를 잡았다.
길 위에는 다른 피부색의 사람들이 오가고, 길가엔 독수리가 비둘기처럼 흔하게 앉아 있었다.
‘아, 정말 아프리카에 왔구나.’
그때서야 실감이 났다.
운전하면서도 이상하리만큼 기분이 좋았다.
“살면서 내가 아프리카에서 운전하는 날이 올 줄이야.”
그렇게 첫 임무를 마치고, 주바 UN 캠프에 짐을 풀었다.
한빛부대의 주둔지는 이곳이 아닌 ‘보르’.
우리는 며칠간 이곳에서 대기 후 헬기를 타고 다시 이동해야 한다.
UN 트랜싯은 충격이었다. 마치 이재민 대피소 같았다. 아니, 어쩌면 난민촌이라는 표현이 더 가까웠다.
인도, 에티오피아 등 다양한 나라의 군인들이 천막 속 야전침대에 누워 있었다.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열악했다. 그나마 우리는 컨테이너 숙소에 머물 수 있다는 게 안도의 이유가 될 줄은 몰랐다.
씻을 수도 없고, 화장실도 제대로 없는 곳. 그리고 앞으로 3일 동안, 9끼의 전투식량이 기다리고 있었다.
쓸 이야기가 참 많다. 하지만 지금은 다들 자고 있고, 이 조용한 밤을 깨기 싫다. 일단 오늘은 여기까지 써둔다.
남수단에서의 첫날밤.
여보, 강현아, 한빛아.
지금 한국은 새벽 4시가 다 되어 가겠네.
나, 무사히 도착했어.
며칠째 연락이 안 돼 걱정했지?
내일 주바공항에 가서 유심칩 구하면
꼭 연락할게, 사랑해.